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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학은 노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노인의학은 노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의사신문
  • 승인 2017.12.2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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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15〉 
유 형 준 한림의대 내분비내과 교수 시인·수필가

노인의학은 노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생각에 따라 노인의학 정체성의 명징(明澄)과 향후가 결정된다.
태어나서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생명 사이클에 의해 사람은 성숙기에 이르고 지나면 모든 기능이 떨어져 낮아지고 약화되어 결국엔 사망에 이른다. 이 과정 또는 현상에 노화라는 명칭을 주기로 합의하였다면 노화의 수식어가 아무리 만발하더라도 노화는 죽음을 전제로 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정신적 쾌락을 최고의 선으로 주장했던 에피쿠로스처럼 `죽음은 우리와 관계없다. 살아있는 동안에 죽음은 오지 않고 죽음이 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며 죽음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려하지만 죽음은 에피쿠로스의 속내평처럼 두려운 게 사실이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영원히 죽지 않는 특정 족속인 스트룰드브루그도 질병 상태의 연장이라는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주인공에 불과하다고 여겨져 존엄사 운동 전개의 비중 있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지 않은가. 또한 노화의 본질은 생존을 위한 적응의 결과라는 적응론적 주장도 있지만 그렇게 적응하려는 노력 또한 죽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나올 때에 조산부가 필요하다면, 우리를 세상에서 내보낼 때에는 조사부(助死夫)가 필요하다. --- 나는 내 개인적인 은퇴 생활에 알맞은 고요하고 평온한 죽음을 얻는 것으로 만족한다. 죽음은 사회의 역할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한 인물에 관한 일이다.”라는 몽테뉴의 토로는 죽음을 노화는 물론 태어남과도 서로 기대게 하여 삶의 부분들끼리 동등하고 만족스레 어울리게 한다.

일반적으로 질병은 환자에겐 주관적 실체이지만 의사에겐 의학적 상태와 진행과정인 객관적 실체다. 그러나 노인병은 다른 면이 있다. 청장년의 병은 `나는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노인병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노화, 노인병 역시 죽음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피할 수 없으므로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일, 나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인병은 생(生)의 약성(弱性)과 유한성(有限性)을 다시금 깨닫는 올바른 질병관을 환자 그리고 의사 모두에게 어떤 다른 질병보다도 무겁게 짚어준다. 그렇다. `시간을 관리하는 것은 모순이다. 단지 주어진 시간 동안 우리가 행하는 일들이 있을 뿐.' 바로 나, 노인의학도와 노인병 환자 모두에게 서로 닮을 수밖에 없는 `늙고 죽음'을 어차피 세월이 챙기는 순리에 의학적으로 충실할 뿐이다.

그러나, `의학적 충실'이 `노년은 치유할 수 없는 병'이라는 세네카식 피동적 맹종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알 수 있다. 고대문헌에 기록된 노화 이론의 주된 흐름은 `때가 되면 신체는 선천적인 열기와 습기, 그 생명력 또는 프네우마(pneuma, 숨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로 생명과 이성을 갖추고 자기 운동을 하는 물질 또는 세계 영혼이나 신의 정신 따위)를 잃는다'는 개념을 무던히 좇고 있다.

따라서 늙으면 결국 차고 건조해진다고 여겼다. 히포크라테스도 역시 노인은 차고 습하다고 믿었다. 이에 반해 갈레노스는 건조하다고 반박하면서 “질병은 자연에 반대되는 것이고 노년은 자연적 경과로서 나이 들어 죽는 것은 자연적인 것과 똑같아 노년은 질환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물론 노년이 완전하게 건강한 상태는 아니지만 노년에는 그 자체로 고유한 하나의 건강 상태가 있으며 이는 절제하는 생활양식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제시하였다.

당시에 갈레노스는 이를 노인의학이라 부르지 않고 `노인공학술'이라 칭하며 `몸의 온도와 습도를 변화'시키는 가능한 수단을 찾아 목표를 달성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노력은 지속되고 있다.

영국의 버나드 밴 오븐은 “지속되는 노년기를 우리가 너끈히 통제할 수 있다는 점. 인생이라는 여행길은 언젠가 끝날 것이 자명하지만, 그 기간 뿐 아니라 여러 단계로 그 길을 나누는 방식, 안락과 즐거움의 정도는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또한 `노년의 역사'를 저술한 런던대학교 킹스 칼리지 교수인 팻 테인은 “의사는 중년을 연장하며 노쇠기를 늦추거나 축소하려는 열망으로 말미암아 중년기와 그 질병에 집중하는 것을 정당화하려 한다.”고 평하였다.

이와 같은 노인의학적 충실에 필요한 요건을 `노인의학(Geriatric medicine)'의 저자인 카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 있다. “노인의학을 이해하려면 최신 의학 기술 능력, 그 능력을 언제 발휘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분별하는 센스, 그리고 노인 환자를 위한 옹호자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진지하게 감당할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다시 한 번 묻는다. 노인의학이 노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필자의 말투로 답한다.

“늙음이 엄연히 지니는 평범하기도 하고 특별하기도 한 속성들을 아름답게 옹호할 용기와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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