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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여행<5>
부부여행<5>
  • 의사신문
  • 승인 2010.04.2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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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마지막 주말에 아내와 부산에 갔었다. 사실 아내와 단 둘이서 간 여행은 결혼 후 이번이 처음이다. 일을 핑계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아이들 없이 아내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부산에 도착해 처음 간 곳은 사직운동장이었다. 롯데 자이언츠의 개막전을 꼭 보고 싶어 바닷가에 가려는 아내를 운동장에 먼저 데려갔다. 비교적 약체인 히어로즈와의 경기여서 당연히 이길 것이라 예상했지만 나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역시 롯데였다. 감독은 우승이 목표라고 하였지만 내가 본 롯데는 예전의 롯데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렇지만 사직구장에서만 볼 수 있는 부산 사람들의 정열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한 채 숙소가 있는 해운대로 갔다. 아내도 경기 보다는 부산사람들의 정열을 더욱 재미있어 했다.

숙소인 호텔에서 저녁을 먹은 후 백화점에 갔다. 동양 최대의 백화점이라고 광고를 해서 아내도 가보고 싶어하던 곳이었다. 역시 백화점은 크고 물건도 많았다. 명품이 모여있는 매장에 들어가서 가장 눈에 띄는 여자 가방의 가격을 물어보니 500만원이라고 점원이 말했다. 어이없는 가격에 아내에게 “이런 물건을 마누라에게 사주는 남편은 없을거야”라고 하니 “그럼 누구한테 사주냐”고 질문했다.

“아마 바람피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꼬실 때 사주지 않을까?”라고 말하니 아내는 “최근에 자기의 친구가 이정도 가격의 가방을 남편에게 선물 받았다”며 반론을 폈다. “정상적인 대한민국 남편이라면 절대로 이런 가방을 사줄 일이 없어”라고 끝까지 주장했더니 “하긴 걔 신랑이 바람피다 들키더니 가방을 사주더래”라며 내 의견에 동의를 했다. 정상적인 부부간의 거래에 이런 비싼 가방은 등장할 수 없다는데 합의를 보고 백화점을 나왔다

해운대의 밤거리는 데카당스한 화려함이 있었다. 여성전용 노래방 간판을 보고 아내는 여자들만 이용할 수 있는 노래방이라 안전하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무시하는 눈빛으로 간판 밑에 작은 글씨로 써 있는 `꽃미남 50명 항시 대기'란 글을 가리켰다. 꽃미남 보다는 나처럼 뚱뚱한 아저씨가 더 좋다며 아내는 나를 안심시켰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병원의 간판들도 유심히 보았다. `속 좁은 여자가 아름답다'는 산부인과 간판도 보였고 `가슴 넓은 여자가 아름답다'는 성형외과 간판도 있었다. 관광지답게 메디칼리조트를 표방하는 병원도 있었다. 외국인 환자 유치에 많은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해운대 근처에는 예전에 안보이던 새롭고 큰 병원도 생겼다. 인제대 백병원이었다. 얼마 전 신문 인터뷰 기사를 보니 해운대 백병원도 외국인 환자 유치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 환자도 병원 수익에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니 그럴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한국 의사는 한국인만 진료해서는 먹고 살기 힘든 것이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다음날 아침에는 바닷가를 따라 동백섬까지 산책을 하였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변화하는 부산의 모습이 재미있었고, 아내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더욱 즐거웠다.

조재범<성애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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