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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될까요?
이래도 될까요?
  • 의사신문
  • 승인 2017.09.2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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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미영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만약 아래와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가상현실 1.
오토바이 운전자가 10톤 트럭 운전을 하고 싶단다. 물론 그럴 수 있겠다 싶다. 그럼 특수 운전면허를 취득하면 된다. 그런데 그냥 특수 자동차 면허를 가지고 싶단다. 지나가던 한 국회의원이 측은하다고 오토바이 면허증으로 트럭운전을 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 상정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가 설명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운전면허'가 같은 글자이기 때문이란다.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한다면 아마 “그런 허무맹랑한 한심한 법을 어떻게 만들 수 있냐?” “사람을 몇 명이나 다치게 해야 정신 차릴 것이냐?”는 등등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할 것이 뻔하다.

가상현실 2.
한의사(주: 어느 나라든 전통의학을 다루는 의사를 지칭함)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싶다고 한다. 그럴 수 있겠다 싶다. 그런데 그 의료기기는 법적으로 필요한 공부와 충분한 훈련을 받아야 하고, 면허증을 취득한 자격자인 의사만이 사용할 수 있다. 그럼 의사가 될 수 있는 모든 전문 과정을 거쳐 면허증을 따면 된다. 그런데 적당히 그냥 쓰고 싶단다.

전통의학을 공부한 한의사가 학문적으로 전혀 다른 접근법을 사용하는 현대 의학을 다루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당연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그러나 그 방법이 문제다. `의사'라는 글자가 똑같으니 적당히 의사가 되고 싶단다.

이런 주장을 그럴듯하다고 본 한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여 법제화를 진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아무리 가상의 현실이라고 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른 나라의 제도는 잘 모르니 위의 가상의 현실을 우리나라 의료제도에 대입하여 반론을 펴보기로 하자.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되려면 일단 그 높은 입시관문을 넘어 의과대학에 입학해야 한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남들 잘 때 안자야 하고, 남들 놀 때 못 놀고 공부만 해야 한다. 그리고 나면 6년 동안의 대학시절을 낙제 없이 무사히 졸업을 하고, 의사면허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얼른 보면 한의사와 별 차이 없는 유사한 과정같이 보인다. 그런데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차이점들이 눈에 띤다. 현대 의학을 배우는 의사들은 한의학과 전혀 다른 내용의 교과과정을 밟고 있다.

기본 사용 언어부터 신체에 대한 과학적 접근법 및 해석이 판이하게 다르다.

현대 과학을 기초로 해부학은 물론 모든 필수 기초과학을 배우고, 본과에 올라가 4년간 전 진료 과에 대한 이론을 학습하게 된다. 동시에 수년간 각 과정을 통해 이론을 바탕으로 임상실습이 진행되고, 응급실, 분만실, 마취과정 및 수술, 수많은 의료기기 사용법 및 판독법 등등 혹독한 훈련 과정이 포함되어있다. 의사 면허증을 취득하면 곧바로 인턴 과정을 통해 실제적인 임상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야 진짜의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전문의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레지던트라는 4년의 훈련 학습기간을 자신이 선택한 과에서 더 보내야만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자격증 시험을 볼 수 있고, 전문의 시험을 통과하고 자격증을 취득하여야만 전문의가 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에는 제때 식사는커녕, 잠은 새우잠을, 그것도 거의 못자고 새우는 날이 많아야 되고, 모든 개인사는 다 뒤로 해야 되며, 인간다운 대접이나 삶은 다 포기해야만 한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냐?” “네가 좋아서 하는 것 아니냐?” 라고 할 수도 있다.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이런 길고 어려운 과정을 보내지 않으면 의사는 될 수가 없다. 이게 현실이고 사실이다. 절대 적당히 사람의 생명을 다룰 수 없기에, 어느 과정 하나 적당히 눈가림 식으로 때울 수도 없는 것이 의사가 되는 과정인 것이다. 물론 한의사도 나름의 어려운 과정을 통해 한의사면허증을 받아야 명실공히 한의사가 될 수 있다. 즉 의사건 한의사건 각각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각각 필요한 필수 과정과 자격증 취득을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목숨을 다루는 고도의 현대의학을 전혀 배움이 없이 적당히 면허증을 갖고 싶어 한다면, 이는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정말 무서운 욕심이며, 그 결과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전문의가 된 지 30년이 된 의사일지라도 매일 쓰고 있는 초음파 기기를 대할 때마다 혹시 실수가 없을까 걱정을 하게 되고, 틈틈이 비싼 교육비를 내면서 보수 교육을 받으며 나름 실력을 쌓고자 노력을 해야 한다. `아는 것이 병이고, 모르는 것이 약이다.' 라더니 지금 이 글의 가상현실이 딱 이 속담에 들어맞는 것 같다. 트럭 운전법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10톤 트럭을 몰겠다는 것과 같이 현대 의료기기를 훈련은 커녕 제대로 교육조차 안 받은 사람들이 적당히 마음대로 사용하고 싶다고 한다면, 아무리 `모르면 겁이 없다'고 하지만, 사람의 생명은 절대 함부로 다루어져서는 안 될 가장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한의학이 현대의학보다 열등하거나 뒤떨어진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거꾸로 의사가 한의사가 되고 싶다고 한들 달라질 것은 없다. 반드시 필요한 과정과 자격증을 적법하게 취득하면 된다. 의사가 침을 놓거나 뜸을 뜨기를 꺼리게 되는 것은 한의학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스를 들고 환자를 수술 하는 의사가 어딘들 침을 못 놓겠냐만 서도 이를 꺼리게 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 과학은 늘 지식과 근거를 중심으로 행해지고 발전해 가야 한다. 그 기본인 지식과 근거에 대한 배움과 숙련의 노력 없이 함부로 고도의 과학을 영위하려고 한다면 이는 큰 재앙을 몰고 올 수밖에 없다.

오토바이 운전면허증 소지자가 특수운전면허도 없이 운전대를 잡고 10톤 트럭을 운전하는 곳이 있다면 그 곳은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한 지옥일 것이다. 면허증이나 자격증에 관한 결정은 어떠한 이유라도 머리에 띠를 매고 농성을 한다거나,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전문성을 요구하는, 특히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은 원칙대로 충분한 지식과 훈련을 받은, 그 자격이 공히 인정된 사람들에 의해, 각 분야에 맞게, 전문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단체의 권익이나 각 직역의 이권을 넘어 사람의 목숨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다루는 일에 대한 자격은 어떠한 시시비비도 허락될 수 없이 엄격하고 공정하게 객관적인 방법으로 필수 요건을 갖춘 자에게 자격이 인정되고 부여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 가상의 현실과 같은 비극적인 일들이 혹시라도 이 나라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본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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