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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촌은 있는가?
장수촌은 있는가?
  • 의사신문
  • 승인 2017.09.1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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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2〉
유형준 한림의대 내분비내과 교수시인·수필가

“사람들은 훨씬 더 오래 일할 것이고 90세에도 자기 계발을 하여야 할 것이다. 또 사람들은 65세에 은퇴하지도, 새로운 생각과 포부를 지닌 신세대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지도 않을 것이다.”

`호모사피엔스' 증후군을 전 세계적으로 몰고 온 문화사가인 유발 하라리는 `호모데우스-미래의 역사'에서 위와 같은 설명을 곁들여 “21세기에 150세까지 살 수 있지 않을까.”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느 누구나 건강할 때엔 죽음이 꽤 먼 미래의 이야기로 생각된다. 또 죽음은 남의 일이고, 자신과는 무관한 것으로 착각하는 수가 많다. 과로하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스트레스를 전진의 당연한 통과의례로 여겨 무리하면, 병도 많이 생기고 빨리 죽는다는 엄연한 사실을 결코 스스로에겐 적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어쩌면 이러한 착각 또는 거부는 오히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또다른 표현이며, 이는 오래 살 수 있다는 장수에 대한 동경이나 호기심과 상당히 가까이 닿아 있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오래 사는 사람, 오래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마을은 흥미와 의학적 연구 차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끌고 있다. 소련의 코카사스, 서부 파키스탄의 카타코담 산중의 훈자, 안데스 산맥의 빌카밤바 등이 대표적인 장수 마을로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곳들은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이름난 장수 마을들이다.

하버드 의대의 알렉산더 리프 교수는 1970년 이 중의 한 곳인 에콰도르의 빌카밤바를 찾았다. 주민들은 스페인어를 썼고, 가톨릭교를 믿고 있었다. 가톨릭교를 믿는 곳이라 세례와 관련된 기록들이 보관되어 있어 그들의 나이는 정확하리라 믿었다. 그곳에서 리프 교수는 미구엘 카르피오라는 121세 남자를 만나 경이를 느꼈다. 그러나 4년 뒤 1974년에 다시 그곳을 방문하여 미구엘 카르피오를 다시 만났을 때에 장수촌 빌카밤바의 나이 매기기 관습에 당황하였다. 1970년에 121세였던 카르피오가 4년 만에 132세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4년 만에 열한 살이나 늘다니?!

리프 교수는 미카엘라 쿠에즈다라는 106세의 여자도 만났다. 성당의 기록에는 1870년 생으로 1974년에 만났는데, 106세라니… 약간 차이가 있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의 가족들의 이름과 나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생겼다. 그녀의 사촌 언니의 이름도 미카엘라 쿠에즈다였던 것이다. 동일한 이름을 자주 쓰는 그들의 관습에 의해 그녀의 나이는 동명의 사촌언니의 나이와 혼동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단편적인 사실로 깊은 회의를 품은 리프 교수의 당황함은 1961년부터 시작된 에콰도르 통계청의 조사로 재확인되었다. 아홉 명이 백 살이라고 주장하는 팔백 십구 명의 빌카밤바 주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0세 이상은 한 명도 없었고, 미구엘 카르피오도 사망할 당시 93세로 공식 판명되었다. 물론 빌카밤바에 사는 육십 세 이상 노인이 전주민의 11.6 퍼센트로 에콰도르의 다른 전원지역보다 4.5 퍼센트 보다 높아 보이나, 빌카밤바의 젊은이들이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나가 일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별로 이상한 연령 분포는 아니었다.

통계조사에 참여하였던 마제스 박사와 포만 박사는 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맺었다.

“빌카밤바 사람들의 나이는 일흔 살까지는 제 나이지만 그 이후는 10 퍼센트 내지 20 퍼센트의 부정확한 보탬이 있다”

그들이 왜 그렇게 나이를 늘려 사용하는지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이유들이 제시되고 있으나 아직 정설이 없다.

리프 교수가 언급했듯이, 문명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곳에서 많은 노동을 하고 척박한 토지에서 겨우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빌카밤바의 환경, 식습관이 인간의 수명을 늘린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어떤 이유를 대도 옛날의 자연 그대로 살던 때보다 우리네 수명은 엄청나게 길어진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역시, 우리네 수명의 길이가 자연히 늘어나는 별천지는 우리의 상상일 뿐이고, 현재의 처지에는 적극적으로 추스리는 데에 그 해답은 있는 것 같다. 장수촌의 고무줄 나이를 단지 하나의 이야깃거리로 여기며, 조사연구를 마치고 나서 토로한 리프 교수의 허전한 회고를 적는다.

“척박한 토지에서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이어가는 문명과 동떨어진 빌카밤바에는 장수의 허상(虛像)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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