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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100일 정신건강복지법, “취지와 다르게 흘러가”
시행 100일 정신건강복지법, “취지와 다르게 흘러가”
  • 이지선 기자
  • 승인 2017.09.0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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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법조계 “개정해야” vs 국회 “법보다 행정부 제도 설계로 해결가능”

개정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100일을 맞아 실제 법 시행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평가하고 점검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의료계와 법조계에서는 '정신질환자의 인권보호'라는 법 개정 취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추가진단 제도에 대해 우려와 개선의 목소리를 냈다. 반면 국회에서는 법 개정보다는 행정부에서 적정 예산과 인력 지원 등을 통해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은 6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100일 점검, 정신건강 증진체계 강화 국정과제 추진을 위한 정책과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포럼을 개최했다.

앞서 지난 5월 국회는 1995년 처음 제정된 정신보건법을 법률 명칭을 포함, 주요 의제를 반영해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전면 개정했다. 

법은 정신질환자의 범위를 ‘독립적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중대한 제약이 있는 사람’으로 축소 정의하고 동의입원 제도를 신설했다. 특히 비자의적 입원에 대해서 그 기준을 강화해 추가진단 제도를 도입하고 계속입원 심사 주기를 단축했다.  

관련 전문가들은 법 개정 직후부터 현장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추가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봉직의협회 박성혁 학술이사

대한정신건강의학과봉직의협회 박성혁 학술이사는 “정신질환자의 인권보호를 목적으로 도입된 추가진단제도가 취지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면서 “공신력을 가진 독립적인 심사기구가 필요함에도 현재 다수의 민간병원이 동원돼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민간병원이 추가진단 병원 또한 지정할 수 있어 담합, 대가성 청탁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추가진단 제도는 정신건강복지법 제 43조에 의해 환자가 입원해 있는 입원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소견과 서로 다른 의료기관(지정진단의료기관) 소속인 전문의의 소견이 일치해야 2주 이상의 치료입원이 가능한 제도이다.

비자의입원을 교차진단함으로써 입원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관계자들의 이해관계 및 권한 남용 가능성 배제하고 최종적으로는 탈원화와 함께 불필요·부당한 입원을 방지하고자 만들어졌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박 학술이사는 “지정진단의료기관 선별·교육하는 과정이 없어 도덕성을 담보하지 못하며, 실제 인권 관련 법적 문제가 있는 의료기관도 현재 소속돼 업무 보고 있는 실정”이라며 “추가진단이 블라인드로 이뤄지지 않아 누가 주치의의 판단을 뒤집었는지도 확인이 가능하며, 지정진단의료기관이 부족한 일부 지역에서는 매칭된 병원끼리 추가진단을 주고받는 구조여서 '상호견제'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한 다수의 민간병원이 참여하고 있는데도 추가진단 전문의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6월 한 달간 발생한 강제입원 심사건수 2만5991건 중 자체진단은 1만 5276건으로 58.8%를 차지했고, 입원 연장심사 건수 2만 438건 중 자체진단은 1만 4660건으로 71.7%를 기록했다.

전문의 부족으로 동일 병원의 자체진단이 가능하도록 예외 조항을 뒀으나, 오히려 예외로 처리하는 건수가 더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박 학술이사는 “오히려 본말이 전도돼 예외조항 없이는 정상운영이 어려운 상태”라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공적 영역에서 추가진단 전문의의 대대적인 증원이 필요하며 중장기적으로는 선행동의입원제도, 환자의무이송제도, 보호의무자확인제도 등 보완 장치들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호입원 기준에 ‘입원치료가 필요한 정도의 정신질환’과 ‘자타해 위험성’이 모두 포함되면서 치료 접근성이 낮아지는 문제점도 있다. 

박 학술이사는 “자타해 위험성 기준이 느슨하고 애매하게 정의돼 있다”며 “병식이 없는 환자도 자타해 위험성이 생기고 나서야 치료가 가능하다. 초기개입의 실패로 예후가 좋지 못할 가능성이 크며, 모든 위험과 부담은 보호자의 몫이 된다”고 지적했다. 

궁극적으로는 사법적 혹은 준사법적 입원 지향해야 하며 비자의입원 기준을 완화해 정신질환자의 인권과 치료권을 지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 학술이사는 “치료의 시작은 쉽게, 장기 입원을 어렵게 만드는 방향으로 정책이 발전해나가야 한다”며 “치료와 인권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손상된 자기결정능력을 회복해 정신질환자 스스로 자신의 인권을 지킬 수 있도록 돕고 신속히 사회로 복귀 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의료 현장 뿐 아니라 법조계에서도 법 개정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법률사무소 서희 윤동욱 변호사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요건 중 ‘자타해 위험성’이라는 추상적인 요건의 해석이 문제된다고 지적했다.

윤 변호사는 “정신건강보건법령과 그 시행규칙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강제입원에서 입원요건을 재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교차진단의 재검토 필요성도 제기됐다. 현재 171명인 국공립 정신의료기관 소속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수로는 수요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윤 변호사는 "우리나라의 열악한 의료체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교차진단을 도입했고, 그 결과 국가의 사무를 민간이 대신하도록 만들었다"면서 "입원 환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이 가능할지, 형식적인 진단에 대한 민간의 담합이 이루어지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전문가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반면, 국회는 법 개정보다는 행정부의 제대로 된 제도설계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국회입법조사처 이만우 보건복지여성팀장은 “진료 과정에 얼만큼 행정적인 개입을 할 것인지, 법적 책임을 부과할 것인지 고민스럽다”면서 “입법 형태의 개선사항 없다고 본다. 추가진단 문제 등은 행정부에서 제도 설계를 다시 하면 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치료적 접근성을 위해 법안 심사까지 할 필요는 없다. 입원에 있어서는 제도 안에 있는 적합성 평가 위원회 등을 잘 활용하는 형태로 가야하며, 퇴원 문제는 제3자 개입의 형태로 준사법기관의 결정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행정적 제도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차진단 문제에 있어서도 제도 설계를 바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 팀장은 “당장 국공립병원의 전담인력을 늘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정부 지원으로 3자 개입 형태로 인력을 어떻게든 만들고 2차진단 전문의는 2차진단만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해정부의 지침이나 규칙, 필요하다면 령 정도의 수준에서제도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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