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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글쓰기<1>
의사의 글쓰기<1>
  • 의사신문
  • 승인 2010.03.2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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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시절 나는 공책에 글씨 쓰는 것을 무척 싫어하던 아이였다. 글씨를 워낙 못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글쓰기 자체를 무척 어렵게 생각했었다. 선생님께서 칠판에 적어주신 내용을 필기하지 않아 여러 번 혼나기도 했었다.
 
연필 깎는 것도 귀찮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는 필통에 볼펜만 넣어가지고 다녔다. 다른 아이들이 연필로 열심히 공책에 무언가를 적을 때 나는 볼펜을 쥔 채 무엇을 적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중고생시절 교내 백일장이 열리면 가장 관심 갖던 내용은 글짓기의 주제나 시상내역 보다는 꼭 써야할 원고지 분량이었다.

선생님께 의무적으로 써야할 원고지 분량을 질문 한 다음 원래 써야할 분량에서 원고지 한 두장 정도 적게 마무리 한 후 남는 시간은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뛰어놀았다. 한 두장 적게 써낸다고 해서 혼내지는 않겠지 하는 약은 생각을 한 후 좀 더 편하고 쉬운 쪽으로 판단한 결과였다.

나는 책상에 앉아 글 쓰는 것 보다는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것이 어울리는 아이였다. 그런데 의사가 된 후부터는 글을 써야만 하는 일이 생긴다. 글쓰기 수준이야 학창시절 이후 전혀 발전이 없지만 그래도 그런 수준의 나의 잡글들도 원하는 곳이 생긴다. 아마도 내가 의사란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의사가 된 후 처음 글을 쓴 곳은 나의 직장신문인 성애병원 신문이었다. 입사 후 성애병원 신문 편집부 일을 도와달라고 해서 아무생각 없이 편집부 일을 했다. 그렇다고 편집부 일이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고 그저 신문 만드는 곳에 글을 전달해 주는 과정 정도였다. 직장 신문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성애병원 신문도 지면을 채울 글들이 항상 부족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편집부인 나도 글을 쓰게 되었다. 주로 내가 좋아하던 그림과 여행에 관한 글이었다. 그 후 또 의협신문에서도 글 연재를 부탁해와 5개월 정도 여행에 관한 글을 연재했었다. 더 이상 글 쓸 일이 없겠지 라고 생각했을 때 의사수필동호회인 박달회에 가입하게 되어 1년에 한번 수필집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또 의사신문에 글을 쓰고 있다.

이 모든 글쓰기의 원인은 내가 의사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이과를 선택하고 의대를 다닐 때는 문과 쪽 일인 글쓰기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의사가 된 후, 글쓰기는 무관심하게 무시할 수 있는 그런 분야가 아니었다. 사람의 몸을 고치는 의사에게 사람의 정신세계인 인문학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나 자신에게 거창하게 위로해보지만 아직 글쓰기는 어색하다.

이렇게 어색한 글이나마 부탁하는 곳의 사정은 어떨까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에 좀 더 글을 잘 쓰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글쓰기 실력이 하루아침에 느는 것도 아닌데 좋은 글에 대한 부담에 마음만 무거워진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편하게 쓰려한다. 새로운 글을 창작한다기 보다는 단지 나의 짧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그 정리된 생각들을 공유한다는데 의미를 두려한다. 글을 읽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앞으로 연재될 글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진다.
 
조재범<성애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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