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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의사중 여의사 40% 시대, 인식은 근대 이전 수준”
"젊은 의사중 여의사 40% 시대, 인식은 근대 이전 수준”
  • 이지선 기자
  • 승인 2017.06.0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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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순번제, 전공과·임용 차별, 성추행…“국가에서 관심 가져야”

한국 최초의 여의사가 탄생한지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여의사에 대한 인식은 근대 사회 이전에 머물러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여자의사회 신현영 국제이사는 지난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제7차 여성사박물관 포럼 '여의사, 근대 사회변화의 주체로 서다'에서 이 같이 밝히고 젊은 여의사의 전문직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현영 한국여자의사회 국제이사

신 국제이사는 “한국 여의사 수가 양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보수적인 분위기의 의료계 내에서 여의사가 남성 의사와 동등하게 경쟁하고 공정하게 평가받는 데 있어 현실적으로 어려운 여건들이 산재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여의사 수는 꾸준히 늘어 2014년 기준 2만 4000여명으로 그 비율이 전체 의사의 23.5%에 달한다. 2017 기준으로는 3만 3000여명으로 30%에 육박한다는 조사도 나와 있다. 의대생, 전공의 등 젊은 여의사들은 전체 40% 내외로, 앞으로 그 수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젊은 여의사들이 전문 직업성을 유지하고 의료계 내에서의 역할을 해내기에는 당면한 현실적 어려움이 시기 별로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의대생인 20대 초반, 전공의인 20대 후반~30대 초반, 전문의가 되는 30대 등 수련 기간과 임신과 출산 가능성이 있는 시기가 겹치는데, 이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나 국가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신 이사는 “임신과 출산이 수련 기간 중에 이뤄져야 하는데, 한 번 정도의 출산은 허용하는 분위기지만 5년의 수련기간 중 2회 이상의 출산은 눈치가 보인다. 특히 대체인력 부족한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마저도 임신순번제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임신 준비하는 가임기 여성이 회식자리에서 음주를 강요당해도 당당히 말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또 수련 기간 중 방사선에 노출되기도 하며, 당직이나 근무시간 등 적정 업무강도 기준 역시 과별로 주관적 판단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제도 역시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많다.

신 이사는 “출산휴가가 100% 보장되고 있는지, 육아휴직 제도 존재하는지, 또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조차 되지 않는다”며 “출산 후 업무에 복귀하더라도 근무시간 중 자녀가 응급상황에 놓이더라도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엄마로서의 자괴감마저 든다”고 토로했다.

또 남자 의대생이나 교수로부터의 성추행, 남성 위주인 병원 내에서 당직실 숙소, 샤워실 등 여성 전용 시설 미비 등의 사회적 문제는 물론 과별 남녀정원으로 인해 여성 인기과에서의 역차별문제 역시 존재한다.

실제 2013 한국여자의사회 멘토링에서 여의대생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향후 진로 및 인생계획에서 있어서 가장 우려되는 점으로 '임신 및 육아로 학업이 중단 또는 수련에 집중할 수 없다는 점'과 ‘여자이기 때문에 원하는 과에서 받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걱정’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신 이사는 “최근 이슈가 됐던 서울성모병원의 여의사 복장 지침 등과 같이 아직도 병원 내에 여성 상품화 문제가 남아있다”며 “여성 전공의들이 남성에 비해 우울, 자살충동 경험이 높다는 조사결과도 있듯이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여성은 전문의가 되어서도 상당한 제약에 부딪힌다.

신 이사는 “취업이나 교수 임용, 병원 내 승진 등에서도 불이익을 받으면서도 양육에 대한 책임으로 부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은 남성과 똑같이 일해도 육아와 가사를 더 많이 담당하기 때문에 같은 업적을 내면 여성이 2배로 열심히 했거나 두 배로 유능하다는 말이 있다”며 “여의사의 일과 가정의 양립은 개인의 문제에서 나아가 저출산, 경력단절녀 등 사회적 문제와 연관되기 때문에 국가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임신·출산으로 인한 전공 선택 차별 금지 △출산휴가·육아휴직 의무화 준수 △다산으로 인한 수련 및 근무평가 불이익 배재 △출산휴가로 인한 대체인력 확보 △병원 내외 양질의 육아시설 확보 △탄력적 근무시간제 도입 △전공의 선발·취업·교수임용·승진 과정에서 양성평등 유지 △의대·의료기관 내 성폭력 방지를 위한 교육과 홍보 △의협 등 의료계 내 여성할당제 도입 등을 촉구했다. 

신 이사는 “여의사들이 당면한 현실적 과제에 대한 인식이 객관화되고 공감대를 이루기 위해서 관련 연구와 활동이 선행돼야 하고 양성평등에 대한 지속적인 사회적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며 “일과 가정의 양립, 의료계 내 여성 인권이 존중될 수 있도록 국가적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포럼에는 심재철 국회 부의장, 바른정당 박인숙 의원,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 국민의당 신용현·최도자 의원 등과 함께 추무진 의협 회장,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 박경아 전 세계여자의사회장, 김봉옥 한국여자의사회장 등 의료계 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특히 의료계 여성 인사들을 자리를 끝까지 지켜 눈길을 끌었다.

왼쪽부터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 김봉옥 한국여자의사회장, 바른정당 박인숙 의원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은 “여의사를 비롯해 여성 스스로가 자신들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남성과 같은 성과를 내고도 ‘차라리 남성이 낫다’는 인식이 있다”며 “편견과 선입견을 스스로 깨뜨리고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봉옥 한국여자의사회장은 “병을 찾아서 낫게 하는 직업의식 때문에 자아비판적인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제 여의사들도 진료 현장을 벗어나 여성사, 여성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를 해야 할 것”이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에 기여하는 여의사, 여성을 찾아 역사에 기록될 수 있도록 왕관을 씌어 드리는 일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여의사 출신인 바른정당 박인숙 의원도 "여성사의 큰 축이 여의사"라며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공적을 이룬 여의사 선배님들 덕분에 오늘날 여의사의 지위가 많이 향상됐다. 저 또한 여의사의 헌신과 공적을 알리고 우리 사회에서의 우리가 가지는 역할을 극대화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길여 가천대 총장이 자신이 사용하던 청진기 등 유물을 여성사박물관에 기증했다.

한편, 이날 포럼에서는 이길여 가천대 총장이 자신이 사용하던 청진기 등 유물을 여성사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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