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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슈만 피아노협주곡 A단조, 작품번호 54
로베르트 슈만 피아노협주곡 A단조, 작품번호 54
  • 의사신문
  • 승인 2017.05.2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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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395〉

■환상곡풍의 슈만 특유의 협주적 완결체

이 작품은 클라라에 대한 슈만의 열렬한 사랑 고백이다. 제1악장의 오보에가 노래하는 `클라라의 주제'는 가장 달콤한 속삭임이다. 이는 곡 전체에서 다양하게 변형되어 나타난다. 슈만의 정신세계를 대표하는 두 인간형, 행동하는 인간 `플로레스탄'과 꿈꾸는 인간 `오이제비우스'가 끊임없이 대화하며 `클라라의 주제'를 발전시킨다. 당대 최고 여류 피아니스트 클라라의 실력에 걸맞게 뛰어난 테크닉을 요구하면서도 낭만적이고 매력적인 감성으로 가득한 곡이다.

슈만은 클라라와 결혼한 후 작곡영역을 확대하였다. 주로 피아노독주곡과 가곡만 써 온 슈만은 그해부터 두 개의 교향곡을 비롯해 관현악곡과 합창곡까지 그 영역을 넓힌다. 클라라는 “그의 상상력을 피아노에만 가둬 둘 수 없다”고 말했고, 슈만은 이에 화답하여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환상곡 A단조를 작곡했다. 이 곡이 맘에 들었던 클라라는 제대로 된 협주곡으로 개작하길 요구했고, 슈만은 4년 후 1845년 간주곡과 피날레를 덧붙여 협주곡으로 완성했다. 1829년 F단조 협주곡, 1831년에는 F장조 협주곡, 1833년에는 D단조 협주곡을 스케치한 적이 있지만 슈만은 매번 첫 부분만 쓰다가 중단하였고, 1839년 자신의 속내를 고백했다. “훌륭한 독주자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어떤 협주곡도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거라면 쓸 수 있지만….” 이토록 소심했던 슈만이었지만 비로소 피아노협주곡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클라라의 격려 덕분이었다. 슈만은 비르투오소들을 위한 협주곡형식의 자기과시적인 요소를 배재하고 순수음악적인 효과와 구조적인 형식을 추구하기 위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동등한 지위로 부여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베토벤, 모차르트의 고전주의 작품을 의식적으로 계승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만의 낭만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였다.

슈만은 20대 초반 2년 정도 프리드리히 비크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당시 10대 소녀였던 딸 클라라 비크는 `피아노의 신동'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클라라는 13살 때 이미 피아노협주곡을 작곡하는 등 작곡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슈만은 불행히도 손을 다쳐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게 되자 그녀는 16살 때 스스로 자신의 협주곡을 초연했고 또한 슈만의 음악을 대신 연주해서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둘 사이는 자연스레 사랑으로 발전했다. 이후 클라라 아버지의 반대에 맞서 법정투쟁까지 벌인 끝에 결혼에 성공하게 된다. 결혼 직후인 1839년 슈만은 클라라에게 이 같은 편지를 썼다. “우리는 우리 두 사람의 이름으로 많은 작품들을 출판할 것입니다. 후손들은 한마음 한뜻이 된 우리의 작품 중 어느 게 내 것이고 어느 게 당신 것인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두 사람은 함께 작곡을 했고, 함께 일기를 쓸 정도로 행복한 부부였다. 결혼 1년 후 클라라는 남편이 작곡한 환상곡을 1841년 8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초연했다. 낭만시대 최고의 시적 감수성을 가진 작품이라는 걸 알아본 클라라에 의해 1845년 12월 드레스덴에서 초연됐고, 이듬해 라이프치히 신년음악회를 필두로 유럽 전역에서 환호를 받았다.

결혼 생활이 10년을 넘길 무렵, 슈만은 우울증에 시달린 끝에 라인 강에 투신하는 등 불행한 말년으로 치달았다. 클라라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별로 곡을 쓰지 않았다. 슈만이 세상을 떠난 뒤 1856년 런던에서 이 곡을 연주했을 때 별로 좋은 평을 받지 못하자 클라라는 크게 낙담했다. 그녀는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에게 3악장 피날레를 개작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요아힘은 지혜롭게도 이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이 곡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슈만이므로 자신이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클라라는 남편의 손길이 오롯이 남아 있는 원곡대로 이 협주곡을 평생 연주했다. 19세기의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기억되는 클라라 슈만, 그녀에게 이 곡은 슈만의 뜨거운 사랑과 아픈 추억, 그 자체였다.

△제1악장 Allegro affettuoso 원래 독립된 환상곡으로 전통적 협주곡양식을 벗어나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강력하고 리드미컬한 독주 피아노에 의해 인상적인 서주 후 오보에와 클라리넷에 의해 쓸쓸한 `클라라의 주제'가 전곡을 지배한다.

△제2악장 Intermezzo: Andantino grazioso 슈만의 가장 내밀한 부드러운 마음을 들려주는 부분이다. 어린이처럼 단순하고 자연스럽다. 중간부분에 피아노의 반주로 첼로가 노래하는 대목이 특히 아름답다. 첫 주제를 상기시키는 모티브가 나온 뒤 휴식 없이 피날레로 넘어간다.

△제3악장 Allegro vivace 햇빛 찬란한 생기 넘치는 피날레로서 첫 주제는 제1악장 주제를 변형한 것이다. 제2주제는 싱커페이션으로 변형되는 복수 리듬으로 긴 코다에 이어 클라이맥스에 이르렀다가 끝을 맺는다.

■들을 만한 음반
△라두 루푸(피아노), 앙드레 프레빈(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Decca, 1973)
△디누 리파티(피아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EMI, 1948)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피아노), 폰 마타치치(지휘), 몬테카를로 오케스트라(EMI, 1974)
△마리아 조앙 피레스(피아노), 클라우디오 아바도(지휘), 유럽 쳄버 오케스트라(DG, 2000)
△마르타 아르헤리치(피아노),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지휘),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DG,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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