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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슈만 〈사육제〉 작품번호 9
로베르트 슈만 〈사육제〉 작품번호 9
  • 의사신문
  • 승인 2017.05.0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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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393〉

■네 개의 음에 숨겨진 낭만적인 의미

〈사육제〉는 작은 무곡들을 모아 놓은 〈나비〉와 같은 그의 초기 작품들에 비해 규모가 훨씬 확장된 일종의 가면무도회 같은 곡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흥청거리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신뿐만 아니라 파가니니, 쇼팽, 그리고 사랑하는 미래의 부인인 클라라 비크까지 여러 음악인들이 등장하며 이들의 화려한 가장무도회가 상상 속에서 펼쳐진다. 특히 슈만은 자신의 잠재된 의식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1인 2역으로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로 각각 등장한다. 이 창조적인 캐릭터는 폭풍과도 같은 열정과 시인으로서의 서정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

원래 슈만이 의도한 제목은 〈카니발: 4개의 음표에 의한 촌극(Fasching: Schw<&25058>nke auf vier Noten)〉이었다. 이 제목은 두 개의 음악적 암호를 내포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ASCH와 SCHA다. 독일 기보법으로 H는 B 내추럴을, 음성학적으로 S나 Es는 Eb을 뜻하는 반면 A플랫은 As로 표기되곤 한다. 결국 ASCH 모티브는 음악적으로 두 개의 다른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하나는 A-Eb-C-B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하게 Ab-C-B다. 글자로 본다면 Asch라는 단어는 당시 슈만의 애인이었던 에르네스티네 폰 프리켄이 태어난 도시의 이름으로 비록 그 순서는 다르지만 슈만은 자신의 이름에도 이 네 개의 알파벳이 들어 있는 것(SCHumAnn)에 대해 기뻐하였을 지도 모른다. `Fasching'이라는 단어 대신 이음동의어인 `Carnaval'이라는 제목을 선택했는데 이 제목에는 ASCH의 글자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제1곡 Pr<&25061>ambule(서주) 앞으로 나올 인물들을 위해 무대를 설정하는 서곡이다. 마지막의 행진곡과 닮아 순환적 구조를 연상시킨다. 이는 슈만이 미완성으로 남긴 슈베르트의 `동경의 왈츠(Sehnsuchtswalzer)' 주제에 의한 변주곡의 기초가 되었다. △제2곡 Pierrot 절뚝거리며 슬퍼하는 듯 익살스럽지만 사색적이고 쓸쓸한 피에로의 모습을 싱커페이션으로 그렸다. △제3곡 Arlequin 사육제에 등장하는 익살스런 인물로 불완전한 발걸음으로 즐겁게 춤을 춘다. △제4곡 Valse noble 슈베르트 곡처럼 부드럽다. △제5곡 Eusebius 내성적이고 명상적인 슈만 자신의 모습이다. △제6곡 Florestan 오이제비우스와는 대조적으로 명랑하며 열정적인 슈만의 또 다른 모습을 그린다. △제7곡. Coquette(아양) 분위기를 전환하는 발랄한 춤곡이다. △제8곡 Réplique(응답) `코케트'에 메아리처럼 답한다. 슈만은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음악적 암호를 의도적으로 적었다. Sphinxes 별도의 번호를 부여하지 않는다. 여덟 개의 낮은 음으로 구성된 일종의 수수께끼로 대부분 연주자들은 연주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카니발의 시작과 슈만의 등장을 통해 스핑크스 앞에서 모차르트 오페라〈마술피리〉처럼 신성한 통과의례를 마친 뒤 클라라와의 행복한 시간을 약속한다. △제9곡 Papillons 피아노곡집 〈나비〉와는 관련이 없이 수수께끼와 같은 의문을 남긴다. △제10곡 ASCH-SCHA Lettres dansantes(춤추는 문자) 본격적인 암시의 대목이 펼쳐진다. 글자들의 춤이 빠르게 진행된다. △제11곡 Chiarina passionate 슈만의 연인 클라라를 이탈리아어로 표현한 곡으로 매우 격정적이다. △제12곡 Chopin Agitato 격렬한 낭만성으로 쇼팽의 환상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제13곡 Estrella Asch 마을에 사는 에르네스티네를 가리킨다. 그녀는 한때 슈만이 사랑했던 여인이다. △제14곡 Reconnaissance(재회) 축제 중 옛 친구를 재회한 기분으로 상당한 기교를 요한다. 한편 클라라와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환희를 표현한 것이다. △제15곡 Pantalon et Colombine 판탈롱은 양말과 바지가 하나로 붙은 옷을 입은 광대이고 콜롱비네는 그의 애인이다. △제16곡 Valse allemande 독일 슈바벤 지방에서 행해지던 춤곡이다. △제17곡 Paganini, intermezzo 사랑의 메신저 역할이자 새로운 분위기로 전환하는 인터메조로 스타카토의 기교로 파가니니를 그려냈다. △제18곡 Aveu(고백) 오이제비우스가 변장한 플로레스탄의 젊은 남녀의 사랑의 속삭임 같은 독백이다. △제19곡 Promenade 풍요로운 빛으로 가득 차 있어 젊은 두 남녀는 춤추듯 꿈길을 산책한다. △제20곡 Pause 휴식보다 대의를 위한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암시하는 혼란스럽고 고조된 분위기다. △제21곡 Marche des Davidsbündler contre les Philistins(필리스틴에 대항하는 다비드동맹 행진곡) `할아버지의 춤(Grossvatertanz)'선율이 전개되면서 다비드 동맹회원들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필리스틴은 보수적이고 속물적인 사람들과 예술장사꾼을 가리키는 총칭으로 이에 대해 자신의 〈음악신보〉를 중심으로 진정한 예술가-평론가 집단인 다비드 동맹이 승리를 거둔다는 돈키호테적인 과대망상과 함께 순수한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결말로 막을 내린다.

■들을 만한 음반
△아르투르 베네데티 미켈란젤리(피아노)(EMI, 1975)
△알프레드 코르토(피아노)(EMI HMV, 1928)
△에프게니 키신(피아노)(RCA, 2002)
△클라우디오 아라우(피아노)(Philips, 1977)
△게르하르트 오피츠(피아노)(RCA, 1992)
△엘리사 데 라로차(피아노)(Decca,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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