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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경이로움과 두려움<46>
임신, 경이로움과 두려움<46>
  • 의사신문
  • 승인 2010.02.24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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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동그란 처녀막이 그대로 있는 소위 말하는 신체적으로 완벽한 처녀였다. 몇 달 후 결혼할 약혼자가 있지만 겁이 나서 성 관계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두통이 심하고 감기 기운이 있어서 내과에 다니다가 생리도 안한다고 내게 진찰 받으러 왔다. 전에도 생리통이 심하여 혹시 이상이 있는지 진찰을 받은 적이 있었고 그 후에도 성 관계는 없다고 했으며 처녀막도 전혀 파열의 흔적이 없었다. 임신을 생각지는 못하고 혹시 다른 이상이 있는지 일단 복부초음파를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궁 내에 임신 낭 비슷한 영상이 보였고 소변 임신반응 검사를 하니 양성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약혼자와 같이 있을 때 몇 번 성 관계를 시도했지만 무섭고 아파서 할 수 없었다는 웃지 못 할 고백을 들었다. 질 입구에 사정한 것이 임신이 된 것이다. 긴 여행 끝에 수정을 시킬 정도로 생명력이 대단한 정자이고 생명의 잉태는 참으로 경이로운 것이었다. 새삼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옛말이 명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그녀는 결혼하고 조금 빠르게 건강한 아기를 출산 했다.

최근에 낙태 수술이 어렵게 되면서 성 관계 후 임신에 대한 두려움과 피임에 대한 상담이 부쩍 늘고 있다. 특히 10대 소녀들이 여성의 생리나 피임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는 무방비 상태에서 성행위를 하고 두려움과 불안에 떠는 것이다. 드문 경우이지만 위와 같은 상황으로도 임신이 될 수 있는데 젊은 사람들이 배란 주기를 이용하거나 질외사정 등으로 피임한다는 것은 실패할 가능성이 너무나 높은 피임법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진찰 받으러 오는 모든 여성들에게 임신을 원치 않는 경우 확실한 피임을 하고 있는지 묻는 것과 피임법을 설명하는 것이 주 업무가 되고 있다. 특히 10대 소녀나 20대 미혼 여성들 대부분이 `오빠가 알아서 피임하겠지요' `여자가 너무 피임에 대해서 잘 알면 경험이 많은 것으로 알지 않을까요?' `저는 주기나 피임 그런 것 몰라요' `오빠가 괜찮다고 했어요' `임신하면 오빠가 책임진다고 했어요' `임신인 것 같은데 무서워서 병원에 못가겠어요' 이런 말들을 하니 여간 걱정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왜곡된 성문화와 성교육의 문제점이 심각한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해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열 올리며 설명하지만 좀 더 적극적이고 확실한 피임법에 대해 대부분 부담을 갖고 있다.

기혼 여성들에게는 피임 실패가 출산율을 올리는 데 일정부분 기여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도 큰 문제이다. 현 상황에서 산부인과 의사의 역할은 확실한 피임을 교육하는 것인데 아직도 대부분 여성들의 사고방식이 불안하다. 그렇다고 임신·출산·낙태에 대한 모든 문제를 해결 능력을 전혀 갖추지 못한 사회에 던져버리는 것도 전문가로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예방 차원이 아니라 닥치고 나서야 해결하려는 안이함으로 가득하다.

얼마 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화학적인 임신을 포함하면 수정이 되어 출산까지 되는 경우는 35%에 불과할 정도로 임신소실율 즉 자연유산율이 높다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여성의 임신 연령이 증가하면서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도 자연유산이 증가하고 있다는 발표가 있었다. 생명의 탄생이 이렇게 경이롭고 어려운 과정인데 젊은 여성들은 임신의 공포에 떨어야 하고 이들이 잉태하는 건강한 아기들은 불행으로 간주되고 있으니 이 엄청난 사회적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난감할 뿐이다.

김숙희<관악구의사회장ㆍ김숙희산부인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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