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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E단조 작품번호 125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E단조 작품번호 125
  • 의사신문
  • 승인 2017.03.2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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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390〉

■철권 지배에 대한 자유로운 예술인의 가장 강한 저항

프로코피예프가 파리에 머물던 1933년, 첼리스트 그레고리 피아티고르스키의 영향을 받아 작곡된 첼로협주곡 제1번은 1938년 11월 알렉산더 메릭-파샤예프가 지휘한 USSR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첼리스트 레프 베레조프스키의 연주로 초연됐지만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다. 두 달 동안 첼리스트인 베레조프스키와 함께 이 신작을 리허설했던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테르는 “베레조프스키는 너무 감상적으로만 이 작품을 해석하려고만 해서 도대체 이 작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실망스러운 초연 이후 프로코피예프는 여러 차례에 걸쳐 수정하긴 했지만 이 작품에 대해 완전히 흥미를 잃고 말았다.

9년 뒤 그는 모스크바음악원 소강당에서 열린 한 연주회에서 20살밖에 되지 않은 젊은 첼리스트가 피아노 반주만으로 작곡가조차 애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자신의 첼로협주곡 연주를 지켜본 것이다. 순간 번뜩이는 영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음을 깨달은 프로코피예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곡을 개정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는 무대 뒤로 자신에게 동기부여해준 젊은 첼리스트를 찾아가 작품을 개정하겠다는 계획을 말하면서 초연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1947년 12월 이 두 음악가의 대화는 새로운 개작의 시작인 동시에 20세기 첼로협주곡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그날 프로코피예프를 감동시킨 젊은 첼리스트는 바로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였다. 

그 후 프로코피예프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억울하게 스파이 혐의를 받은 그의 첫 부인 리나가 1948년 2월 체포되어 노동자수용소에 보내져 20년형을 선고받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문화담당 인민위원 안드레이 주다노프가 중앙인민회의에서 작곡가들을 맹렬히 비난하는 자리에서조차 그는 자신의 오페라 〈전쟁과 평화〉를 지휘한 지휘자와 유쾌한 음악대화를 나누었을 정도로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자신의 분노를 음악으로 녹여내려는 듯 1930년대에 작곡한 교향곡 제4번과 피아노소나타 제5번, 그리고 실패했던 첼로협주곡을 개작하는 작업에 몰두하며 자신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프로코피예프는 자신의 집으로 로스트로포비치를 초대하여 소나타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이렇게 완성된 첼로소나타 작품 119는 1950년 3월 그들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곧바로 첼로협주곡의 개작에 착수한 프로코피예프는 매년 여름마다 자신의 별장으로 로스트로포비치를 초대하여 테크닉적인 측면과 표현의 한계에 대한 많은 조언을 얻었다. 로스트로포비치 역시 프로코피예프를 자신의 우상으로 존경하며 그의 절제된 생활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배웠다. 로스트로포비치가 생의 마지막까지 규칙적인 일상과 활발한 음악 활동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프로코피예프로부터 배운 습관 덕분이다. 1952년 그는 첼로협주곡 제2번 작품125로 첼로협주곡 제1번 개정 작업을 끝마쳤다. 1948년 2월 중앙인민회의로부터 `형식주의자'로 낙인찍혔던 프로코피예프는 이를 극복하고 초연하게 된다. 첼로협주곡 제2번은 정확성과 긴장감, 고도의 다이내믹, 유려하면서도 확장력 높은 멜로디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첼로협주곡 제2번을 초연한 뒤 프로코피예프는 마지막 악장 외에는 전혀 새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첼로협주곡 제1번에다가 다시 수정을 가한 뒤 비로소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라는 보다 확장된 개념의 제목을 붙였다. 이 마지막 판본은 1954년 12월 토마스 젠센이 지휘하는 덴마크 왕립 오케스트라와 함께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철권적이고 맹목적인 지배에 대항한 자유로운 예술인의 가장 강력한 저항이자 위대한 표상으로 사랑을 받으며 불멸의 걸작으로 남게 되었다. 긴 연주시간을 요하는 이 대작은 고전적인 3악장으로 이루어졌지만 악장별로 독립된 구성을 갖고 있는 동시에 전혀 새로운 감정 선과 구조를 갖는다. 

△제1악장 Andante 호방한 듯 자유분방한 선율 후 저역 현악기의 피치카토 위에 독주 첼로가 곧바로 등장하는 이 악장은 서정미와 개방감이 넘실거리며, 현격하게 대조되는 두 개의 주제가 화려하지만 엄격하게 발전하고 변형되면서 고도의 긴장감을 유발한다.

△제2악장 Allegro giusto 서정미가 극대화된 첫 부분도 아름답지만, 특히 중간부에 위치한 장대한 카덴차가 20세기의 마지막 비르투오소 작곡가로서의 프로코피예프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조언을 받은 부분으로 순수한 평화로움으로부터 광기어린 열기에 이르기까지 악기의 테크닉과 연주자의 정신력을 극한치까지 고조시킨다. 

△제3악장 Andante con moto-Allegretto-Allegro marcato 점진적으로 빨라지는 템포를 통해 주제와 변주의 화려하면서 우아한 진행이 펼쳐진다.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신랄한 유머와 패러독스가 눈에 띄는 이 악장은 행진곡 풍의 장대한 피날레로 돌진하며 막을 내린다. 

■들을 만한 음반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첼로), 말콤 서전트(지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EMI, 1957) △미샤 마이스키(첼로), 미하일 플레티네프(지휘),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DG, 1997) △툴르스 뫼르크(첼로), 파보 예르비(지휘), 버밍험 시립 심포니 오케스트라(Virgin, 1998) △고티에 카퓌송(첼로), 발레리 게르기예프(지휘),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Virgin, 2008) △장한나(첼로), 안토니오 파파노(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EMI,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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