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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첼로소나타 C장조 작품번호 119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첼로소나타 C장조 작품번호 119
  • 의사신문
  • 승인 2017.03.2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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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389〉

■단순하면서도 풍부한 선율로 엮어가는 진솔한 내면의 이야기

처음 이 첼로소나타를 듣는다면 순간 좀 난해해서 편안하게 음악을 감상하기에는 왠지 거부감이 든다. 그러나 몇 번 듣다 보면 이내 친숙해질 뿐만 아니라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적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첼로의 최저음과 최고음을 사용하여 극단적인 음향대비가 시도되고 있는 이 첼로소나타에는 거대한 고목 같은 음악적 면모에서 번쩍이는 칼날 같은 예리함까지 매우 다양한 음악적 느낌들이 표현되고 있다. 악보 앞머리에는 “인류-얼마나 당당하게 들리는 말인가!”라는 러시아 대문호 막심 고리키의 희곡 `밑바닥에서'에서 나오는 말을 인용하였다. 등장인물 중 하나인 밑바닥 인생 `사틴'의 입을 빌려 사람보다 귀중한 것은 없다는 고리키의 메시지에 프로코피예프도 동감을 나타낸 것이다. 서슬 퍼렇던 스탈린 정권에서 프로코피예프가 `형식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어 시달림을 받던 때였다. 그는 공산당 혁명을 피해 서방으로 망명하였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를 위한 사랑〉, 관현악모음곡 〈키제 중위〉, 〈피터와 늑대〉 등을 작곡하며 연주활동을 하였지만 향수병에 시달리다 18년간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1936년 다시 귀국하였다. 그 후 공산당이 요구하는 노선에 충실하고자 노력하였으나 그의 곡들은 여전히 심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거부를 당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연주허가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수정을 해야만 했다. 

프로코피에프는 1948년부터 사망하기 전 5년 동안 거의 병상에서 생활하면서 말년을 보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걸작인 교향곡 제7번과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그리고 이 첼로소나타를 완성하였다. 사실 그는 1940년대 중반에 이 곡의 초고를 스케치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압력의 조짐이 보이자 그 초고는 서랍 속으로 밀어 넣어졌다. 공산당 문화담당서기인 주다노프는 1948년 초 작곡한 교향곡 제6번의 작곡과 관련하여 대중에게 난해한 형식주의적인 음악을 강요하였다는 죄목으로 그를 고발하였고 그의 부인은 스파이라며 체포 구금하였다. 그 사건 이후 프로코피에프는 첼리스트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로부터 받은 새로운 영감을 새로운 형식으로 작곡하여 이 작품을 완성하였다. 

작곡자의 특징인 극도의 단순성과 형식의 고전적 연속성 속에서 풍부한 선율에 의한 서술을 엮어나가는 모습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첼로의 따뜻한 음색과 넓은 음역에 걸친 풍부한 색채, 비르투오소적인 기교가 표현되고 있으며 특히 피아노와 첼로가 대화하듯이 쓰여 있는 것도 이 곡의 특징이다. 1949년 초연되었을 때 공산당은 교화된 형식주의자가 회개한 후 내놓은 작품이라며 열광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곡을 잘 들여다보면 그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을 정화하기 위함을 인지할 수 있다.

△제1악장 Andante Grave - Moderato animato 서주 부분의 느리고 곰삭은 듯한 무거운 선율은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는 `사틴'의 대사를 나타내고 있다. 묵직한 도입부에 나오는 첼로주법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는다. 이 부분을 얼핏 들으면 도입부처럼 들리지만, 이어지는 짜임새를 보면 이것이 제1주제이고 이 선율을 이루는 조각들이 곡 전체에 걸쳐 다양하게 변형되어 발전하고 있다. 활대로 현을 강하게 때리듯 매우 둔탁한 두드림은 돌처럼 굳어가는 현대인의 심장을 사정없이 두드려 일깨우는 것 같다. 서늘한 피아노 선율로 시작하는 경과구와 귀에 쏙 들어오는 제2주제, 갑자기 빨라진 음형으로 나타나는 발전부와 `인류' 주제가 피아노로 나오는 재현부 등으로 조금 꼬여 있는 소나타 형식이다. 

△제2악장 Moderato - Andante Animato 복선과 암시로 깊이 파인 제1악장을 극복하면 밝게 찰랑거리는 제2악장을 만난다. 가볍게 춤추듯 시작하면서 해학 속에 때로는 냉소가 흐르는 듯하다. 힘차게 도약하려는 두 악기의 조화가 매우 인상적이다. 첼로가 내는 소린가 싶은 정도의 높은 음이 나오면서 특유의 발랄함과 우스꽝스러운 몸짓이 잘 드러나 있다.

△제3악장 Allegro ma non troppo 제1악장에 나온 활대로 때리는 주법이 다시 나온다. 그러나 앞선 것과는 달리 좀 더 활달한 느낌을 주는 두드림과 함께 짧은 시간이 지나면 이내 장중한 마무리로 돌입한다. 프로코피에프가 한때 완강하게 거부하던 전통과 화해하는 한편, 권위주의적 독재 권력에 맞서는 방법으로 비장한 각오가 아닌 웃음을 잃지 않는 희망을 택하겠다고 말하는 듯하다. 곡이 끝날 무렵에는 `인류' 주제가 크게 부풀려 나오고 프로코피에프만의 화려한 기교로 찬란한 빛을 뿌리며 빠르고 거칠게 날아다니며 끝을 맺는다.

■들을 만한 음반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첼로),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피아노)(EMI, 1950)
△다니엘 샤프란(첼로), 안톤 긴스버그(피아노)(Melodiya, 1979)
△나탈리아 구트만(첼로),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피아노)(Live Classic, 1992)
△요요마(첼로), 에마뉘엘 엑스(피아노)(Sony classical,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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