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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갈산(茅葛山)에서
모갈산(茅葛山)에서
  • 의사신문
  • 승인 2017.02.1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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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風書風 〈61〉

현충탑 공원 산자락에서 모갈산을 오른다. 나목(裸木)의 숲에는 시리도록 차가운 햇살이 비치고, 겨울은 지난 계절 동안 숨겨왔던 숲의 민낯을 드러낸다. 세찬 바람은 떡갈나무 숲의 여남은 잎사귀들을 쉼 없이 흔들고, 헝클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새둥지 빈자리가 애처롭기만 하다. 산행길에 쌓인 낙엽은 지나간 사람의 발자취를 지우며 겨울 숲은 빈손으로 또 한 해를 시작한다.

겨울 숲의 주인은 나무가 아니라 새들이다. 산기슭 공터의 퇴색한 관음죽(觀音竹) 수풀과 키 큰 향나무 덤불 속에는 겨울 텃새들의 지저귐이 요란하고, 새들은 먹이를 찾아 숲속을 분주하게 움직인다. 휑하니 뚫린 숲의 천정에는 무리지어 남쪽으로 이동하는 철새들, 산모퉁이 외진 길섶에는 병들고 지친 새의 주검 위에 쓸쓸히 낙엽이 흩날리고 있다. 겨울은 숲을 살아가는 생명들이 겪어야 할 혹독한 시련의 계절이다. 계절은 더없이 냉혹하고 새들은 당장의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어 가며 고통스럽게 하루를 버티어 간다.

겨울은 그동안 울창한 나무 그늘에 가려 알 수 없었던 몇 개의 숨겨진 길을 드러낸다. 길은 길들로 이어지고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가보지 못한 길은 언제나 미련이 남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모갈산의 작은 소롯길 모두를 걸어볼 필요가 있을까. 갈래 길들은 산허리를 한 바퀴 돌아 능선을 향하고, 어떤 길을 가도 이 작은 산에서 주어지는 숲의 모습과 정취가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익숙한 언덕길을 걸어 평활한 능선의 마지막 돌계단을 밟으면 사시사철 외로움과 기다림에 지친 느티나무 한 그루, 산과 바다로 사면팔방(四面八方)이 트인 산정의 벤치에 앉는다.

모갈산은 베란다 창밖으로 지척의 거리에 있지만, 겨울의 춥고 바람 센 바닷가 산을 오르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다. 지난해 늦가을에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생각에서일까. 올겨울은 주말의 여유로운 시간에 모갈산을 찾는다. 황량하고 한적한 숲길을 걸으며, 궁핍했던 시절 자식 뒷바라지에 지난(至難)했던 어머님 생전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되돌아보면 객지 생활로 가까이서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고 마냥 바쁘게만 달려 온 내 자신이 후회스럽기만 하다. 산정에서 마주하는 짙은 남빛의 영일만 바다, 멀리 수평선까지 추억은 그리움으로 빈 잔을 채운다.

아흔다섯을 사셨으니 생에 무슨 미련이 있으셨겠냐만, 돌아가시기 한 달 전, 모처럼 치매 증세가 완화되어 손주들에 대한 간절함을 들어드리지 못한 게 죄송스럽기 그지없다. 가족은 누구에게나 뿌리 깊은 소중함이지만, 명절이 아니면 자식들 얼굴조차 보기 힘든 게 요즈음의 세상사인 걸 어찌하랴. 

노환과 심장병으로 10여 년을 병상에 누워 계시다가 심장병 발작과 폐렴으로 3일 만에 돌아 가셨으니…, 내가 항상 병실에서 마주하는 노년의 환자들처럼 어머니도 그렇게 떠나가셨다. 만추의 포근한 날에 30여 년 기다림에 지친 아버님 옆에 모셨으니, 자식 된 입장으로 슬픔에 앞서 다행스럽고 고맙기조차 하다. 

모갈산에 석양이 지면 바다와 숲은 어둠 속에 가라앉는다. 고단한 새들도 둥지로 돌아가고 산정에는 서쪽 하늘의 별 하나가 밝고 새롭다. 싸늘한 대기 속에 산란(散亂)되어 물방울처럼 일렁이며 반짝이는 별빛, 새벽에는 샛별이 되고 저녁에는 `개밥바라기별'이 되어 우리네 아버지들은 이 별을 바라보며 일터로 갔고, 일터에서 돌아오곤 했다. 고달픈 세상살이에 대한 한탄과 시름은 개밥바라기별의 처연한 빛 속으로 녹아들었을 터이다. 

매서운 밤바람에 가냘픈 나무들은 허리까지 꺾이며 숲은 아픔과 비명으로 가득하다. 초저녁의 어슴푸레한 서쪽 산들의 윤곽, 그 너머 장미공원 산언덕의 아버님과 어머님의 무덤가에도 저 개밥바라기 별빛이 비치고 있을까. 미명(微明)의 새벽에도 샛별을 보고 계실까. 지나온 길의 발자취는 낙엽이 쌓여 흙이 되고 바람이 되고, 순간은 과거가 되어 시간은 기억과 향수를 어슴푸레 지워 나간다. 길 위에 선 고달픈 삶이 어찌 옛사람들만의 몫이랴.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삶은 그렇게 회의적인 것도 아니고,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아니다. `Cogito, ergo sum', 겨울 숲을 살아가는 고단한 생명들에게 이성적 사유의 존재는 숲의 정적을 잠시 스쳐가는 공허하고 사치스러운 메아리일 수도 있다. 

껍질까지 말라버린 나목과 공원의 쓰레기장으로 날아드는 비루(鄙陋)한 모습의 겨울텃새들, 얼음처럼 차가운 바위와 길섶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까지 이제 계절은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모갈산은 생명의 처절함 속에서 나의 삶을 자각해보는 생각의 숲이다. 숲에는 온갖 생명의 희로애락과 생로병사, 우리 모두의 인생살이가 있다. 어디 모갈산 뿐이랴. 사람들로 혼잡한 거리에서나 홀로 어두운 골목길을 가면서도 생각의 숲은 문득 일어나 내 발길을 멈추게 한다.

계곡의 양지바른 언덕에는 매화 꽃망울이 영글고, 겨울 숲에는 봄이 고양이 그림자처럼 스며든다. 모갈산 능선을 걸으며 영일만 물결 위에 부서지는 포근한 햇살을 꿈꾸며, 복사꽃 들판 길에 피어나는 아지랑이 같은 정겹고 애틋한 어머님의 미소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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