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55 (금)
부조리함에 대한 `시선' 의사의 숙명과 연결
부조리함에 대한 `시선' 의사의 숙명과 연결
  • 의사신문
  • 승인 2017.01.17 08: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1회 의학문인회 독후감 공모전 수상작 〈5〉 : 장려상 -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을 읽고
정재호 프로필 성형외과의원

완벽한 진단·치료 존재할 수 없지만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
최고의 노고와 함께 변호사 역할까지 맡아야 하는 현실 공감

■의사가 쓰는 `소송'

의사 자격증을 부여 받는 순간부터 의사라는 이유로 체포 되어, 소송 직전에 들어가 있는 상태가 된다. 부모님이 기대 하는 눈길, 친구들이 바라보는 시선, 환자가 쳐다 보는 애원과 적개심의 태도는 의사로서 살아야 하는 그물망을 형성한다. 오진을 했거나, 수술에 불만족인 환자가 어느날 외래를 방문하는 순간, 의사의 손에는 보이지 않는 수갑이 채워지고, 병원을 떠나 어느 곳이던 구속된 병원 공간이란 느낌을 버릴 수 없다. 의사가 읽은 `소송'이란 소설은 이런 실존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가끔은 블랙 코메디와 같이 전혀 연결되지 않는 듯한 혼돈스러운 구성으로 보여준다.

10장의 챕터로 구성되어있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솔문고, 이주동 옮김, 2006년 출간〉은 카프카 생전에 전작이 발표 된 것이 아니고,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태워버리라는 유언을 했으나 브로트가 편집하여 세상에 나옴으로써 현재까지 인간이 겪는 공통적 분모의 틀을 유지하는 소설로써 존재한다. K(카)가 아침에 체포되는 장면인 챕터를 첫 편으로 보는 것은 맞겠지만, 각 챕터는 독립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 어떤 쪽을 펴더라도 각각이 시작도 끝도 없는 얼개의 소설이다. 그러므로, 줄거리 보다는, 삶의 혼동과 우연을 어떻게 카프카가 구성했는지를 찾아보고, 의사가 K(카)라면 어떠했을지를 각색해 보는 것이 카프카와 친구가 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실체도 없이 구속된 K가 본인의 은행 업무를 하면서 소송을 진행해 가는 동안 해결책을 강구하려고 변호사, 화가와 상담하고, 대성당에서 신부님과 만나 `법 앞에서'라는 카프카의 우화를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법 속에 진입하는 과정을 의사로서 음미해 보려 한다. 꿈속과 같은 곳에서 K가 끌려가서 살해 당하는 장면을 마지막에 `심판'으로 보기도 한다지만, 어떤 종말적 예시가 없는 삶의 과정으로 이해했다.

K가 의뢰한 변호사는 변론의 진행을 진전시키지 못한다. 한가지를 해결하려면 그에 따르는 다른 해결이 필요하고, 이같은 가지 치기는 변론은 고사하고 재판이 이루어지지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딴전만 피우는 변호사의 모습은 지금을 사는 우리가 얽히는 사건을 변호사에게 의뢰할 경우 사건의 해결이 지연되거나, 서류 작업의 대부분도 의뢰인이 직접하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의료 사고나 과실과 같은 경우, 근본적인 의사의 동기에는 환자에게 해를 가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전제하에, 설명의 의무와 주의의 의무에 대한 태만 여부를 가지고 판단한다. 그래서 의료 기록이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해결 방안이 된다. 어찌 보면, 의사의 변호사는 자신이 직접 기록한 진료 기록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히 준비한다 해도, 완벽한 검사, 진단, 수술, 치료 후 관리와 기록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도 의사는 항상 부족한 진료 기록으로 변호사의 역할을 해야 한다. 

화가와의 면담은 모든 사람이 무죄 입증을 할 수 없고, 어떤 공간에서도 존재자는 체포된 상태의 법원 공간 안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무죄를 입증하려면 유죄의 가정하에 재판하여 무죄를 판결 받아야 하는데, 무죄를 판결 받는 순간 또 다시 체포의 과정을 겪고, 같은 재판의 준비 과정이 반복되게 된다.

다른 방법은 무죄 판결을 지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죄인이지만, 끝없는 기도로써 죄에 대한 판결을 지연 시키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 하는데, 완벽한 진단과 치료는 없다. 단지 확률적인 오류를 가지고 있는 진단과 위험성을 내포한 치료로서 환자를 병의 고통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게 해주고, 죽음을 연장시켜 준다는 측면에서 무죄 판결의 지연이나, 죽음 시기의 연장 등은 같은 구조를 띤 삶의 형태라 하겠다. 화가의 방은 공기가 탁하고, 그 쪽방의 구석문은 법원과 연결된 구조물이다. 사람이 체포된 상태로 어느 곳이든 법원과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는 모습은 의사가 환자로 인한 응급 호출을 집에서 받고, 급히 새벽에 병원 응급실로 뛰어가는 모습을 상기 시킨다. 의사는 어디에 있어도 병원이란 공간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다.  

대성당에서 K는 우연히 신부님과 만나게 되고, `법 앞에서'란 우화를 얘기하게 된다. 그 내용은 시골서 온 어떤 이가 법의 문으로 들어가려는데, 법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있어 입장을 못한다. 시골서 상경한 이는 법의 문 앞에서 통과 허락을 기다리며, 문지기를 회유도 해보고, 온갖 애원을 하며 세월을 보낸다. 문지기는 의뢰인에게 의자도 내어 주며 얘기도 들어 주지만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못하게 한다. 세월이 흘러 의뢰인은 법의 문 앞에서 기다리다 늙어 죽게 되는 때에, 문지기에게 왜 이 문을 들어가려는 다른 사람들은 없냐고  묻자, 문지기는 이 법의 문은 그 의뢰인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이기 때문이라 한다. 대부분은 법의 문 앞에서 의뢰인을 동정 하고, 야박한 문지기로 탓할 수 있다.

그러나, 신부님은 문지기 편에서, 그 의뢰인이 찾아 왔기 때문에 계속 문을 지키는 수고를 해야 했고, 의뢰인에게 의자도 내어 주고, 얘기도 잘 들어 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문지기 편에서의 노고를 언급한다. 법과 진리를 찾으려는 수고는 의사가 환자를 위한 최고의 진단과 치료를 하려는 노력과 다를바 없다. 의뢰인과 같은 입장의 의사도 있을 수 있고, 문지기처럼  환자 옆에서 끝까지 지켜 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사도 환자의 모든 질환을 극복하고 죽음을 건너 뛰게 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를 읽으면서 부분과 전체의 연관성을 생각한다. 의대 시절 모든 과목은 총론과 각론이 있었다. 전체를 이해하려면, `소송' 외 카프카의 다른 책들과 그의 생각 등을 이해해야 하고, 그래야 각 챕터를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부분을 이해해야 전체를 볼 수 있는데, 그 또한 한계가 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열린 구도의 카프카의 소설은 의사로서 가야하는 끝없는 길과 연결되어 있다고 공감된다.

 

【요약】 `소송'(프란츠 카프카 지음, 김재혁 옮김)

`소송'은 `성', `아메리카'와 함께 `고독의 3부작'이라 불리는 카프카의 미완성 장편소설 중 하나이다.

카프카는 이 작품을 1914년에 쓰기 시작했으나 1924년에 폐결핵으로 사망할 때까지 끝내 완성하지 못했고, 사후에 친구이자 카프카 전집 편집자인 막스 브로트에 의해 출간되었다. 미완성작이기는 하지만 `소송'은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카프카의 사상적 깊이와 문학적 천재성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냉소적 풍자, 특히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선에 기초하여 전개된다.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우회적으로 드러나는 이러한 기조는 `소송'을 `현대 관료주의의 광기를 예언한 소설'로 만들었다. K가 법원과 소송에 맞서며 몰락해 가는 과정은, 비대한 현대 관료주의의 폐단과 그로 인해 파괴되는 인간의 실존을 정확히 묘사하기 때문이다.

알베르 카뮈는 `소송'에 대해 “모든 것을 제시하고 아무것도 확증하지 않는 것이 `소송'의 운명이며 위대함이다”라는 평을 남겼다. 카프카는 항상 `부조리에 맞선 인간의 실존'이라는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지만 어떠한 답을 요구하거나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탐구,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냉소적 풍자, 그리고 다의적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열린 구조를 통해 시공을 초월하는 현대성을 지닌 작품을 창조해 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194/김재혁 옮김/값 9800원/2011년 12월20일 출간〉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