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야 한다'에서 `피해야 한다'로 사기 저하
`살려야 한다'에서 `피해야 한다'로 사기 저하
  • 의사신문
  • 승인 2017.01.0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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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협, 우리는 왜 반대하는가?

의료분쟁 최일선 전공의 보호대책도 없어 `기피과' 가속
환자를 살리려는 진정성·사명감 믿어주는 의료환경 소원

조승국 대한전공의협의회 정책이사

“걸어들어오신 분이 왜 이렇게 되신 거죠?”

내과 전공의로 많은 환자를 보다 보면 보호자분들께 간혹 듣게 되는 말이다. 어두운 밤 등불을 찾는 심정으로, 환자를 살려내고자 잠 못 자며 고민한 시간들의 피로가 이런 질문으로 더욱 더 무겁게 느껴진다. 

2016년 11월 30일부로 흔히 `신해철법' 으로 알려진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이하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시행되었다. 의료사고로 사망하거나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장애등급 1등급(지적장애·자폐성 장애 제외) 에 해당하는 중증 상해를 입었을 경우 환자나 보호자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의료분쟁 조정을 신청하면 피신청인의 동의 없이 조정절차가 자동으로 개시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법이다.

의료분쟁조정법은 최초 제정 시 의료분쟁이 원만하게 해결되고 환자와 의료기관 간 신뢰형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바람으로 제정되었으나, 이번 개정된 법률안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의료계 내에서조차 충분한 논의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법안이 시행된 지금, 의료계, 특히 전공의들의 우려는 깊어졌고, 그 우려는 중환자를 보는 핵심과에 대한 기피를 시작으로 현실화 되고 있다. 

많은 전공의들은 단 5% 의 생존확률만 있어도 환자를 살려내겠다는 사명감과 보람으로 중환자를 보는 길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중환자를 살피는 길을 택한 전공의들은 입을 모아 환자에게 이롭다는 이 법에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미래 우리나라의 중환자들을 돌보게 될 의대생들과 인턴선생님들도 이러한 `길'을 `기피과' 라고 부르고 있다. 

이런 사태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 법은 어떤 문제점들이 있길래 `중환자기피법' 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일까?

먼저 의료분쟁조정법은 의사들이 중환자를 피해야만 하는 의료환경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이 법은 `의료사고'로 환자가 사망하거나,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장애등급 1등급이 되었을 경우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된다.

그러나 환자 및 그 지인들은 `의료사고와 관계없는' 병의 진행에 의한 사망,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장애등급 1등급이 되었을 경우도 이 법이 적용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이에 따른 소모적인 의료분쟁이 크게 늘 것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고령화에 따라 동반질환의 종류도 많고 환자의 중증도도 높아진 요즘, 의사가 모든 질병의 진행을 막을 수도 없고 시술과 수술에 있어서 위험성과 합병증은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치료의 결과를 가지고 책임을 묻고 법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아질 경우 의료기관에 대한 환자의 불신은 깊어지고 환자의 불신과 불안감속에 중환자를 보게 된 의사는 적절한 치료보다는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 (소극적인 치료, 전원)을 찾는 것에 자신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애초에 중환자를 보는 의사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겠고 이것은 `기피과' 를 통해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중환자 진료를 대부분 3차 의료기관에서 담당하고, 3차 의료기관의 전공의들이 주치의로서 중환자진료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법의 실행에 따른 가장 큰 피해를 전공의들이 입을 것도 우려된다.

전공의들은 현재도 각종 의무기록으로 인한 업무 과중이 상당하다. 조정이 이루어지게 되면 이러한 의무기록이 증거 자료로 채택될 것인데 현재 전공의들은 자신을 충분히 보호할 만한 진료의 세세한 부분을 기록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증가된 의료분쟁에 노출된 전공의들은 실제로 현장에서 많은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으며 충분치 못한 의무기록으로 전공의들은 적절한 진료를 입증하지 못하고 의료사고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환자 보호자들이 취약한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소송이 늘고있으며, 일부 병원에서는 분쟁이 생겨도 전공의들을 보호하지 않고 전공의 개인의 문제로 다루는 사례도 확인한 바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의료분쟁조정법 시행뿐만 아니라 전공의 특별법, 당직비 소송 등 다양한 의료현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지난해부터 법무법인과의 업무협약을 맺고 회원들을 대상으로 자문 및 실제 소송에 도움을 드리고 있다. 

특히 의료분쟁조정법의 당사자인 전공의들은 억울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으나 경험이 없고 당황하여 이러한 상황에서도 적절한 대응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에 △평상시, 특히 위중한 환자의 진료 시 `의무기록'을 신중하게 작성한다 △의료분쟁 발생시 담당 의국, 교실, 교육수련부, 병원법무팀, 병원 등 주변에 적극적인 조언 및 법률적 도움을 요청한다 △상기 대응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경우 대한전공의협의회에 법률자문을 요청한다 등을 골자로 하는 `전공의 대응 가이드라인'을 설정하였으며 이를 구체화하려는 계획에 있다.

의료분쟁조정법 법안 자체에도 문제점이 있다.

법안은 `조정'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이는 적절하지 않다. 조정이란 분쟁을 법원의 판결에 의하지 않고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제3자(조정위원)의 권고에 의하여 양 당사자가 서로 양보하여 당사자의 합의로서 해결하는 대체적 분쟁 해결이다.

하지만 의료분쟁조정법은 양 당사자의 동의가 없어도 강제적으로 조정절차가 개시가 되며 이는 합의에 기반한 조정의 의미를 벗어난다.

법의 집행을 보면 법원의 조정 시 판사 역할을 하는 `조정부' 와 사실조사, 과실유무 및 인과관계 규명, 후유장애 발생여부를 확인하는 `감정부' 를 통해 실행되는데 감정부에는 검사 1명이 포함되게 된다.

검사가 포함된 감정부는 강력한 힘을 갖게 되며 감정위원 또는 조사관은 의료사고가 발생한 보건의료기관에 출입하여 관련 문서 또는 물건을 조사, 열람 또는 복사할 수 있고 정당한 이유가 없으면 의료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정당한 이유' 자체가 모호하여 어떤 경우에 열람 등사가 안되는 것인지 조차 알기 어렵다. 결국 감정부는 증거수집과정에서 위 조항에 근거해 법원의 영장 없는 사실상의 압수수색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의료기관은 이러한 절차를 거친 조정에 의해 심각한 심리적,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조정결정에 불응하여 소를 제기하게 되더라도 이렇게 수집된 증거들은 재판과정에서 의료인에게 불리하게 이용될 수 있다.

조정의 결과와 관련된 법안 규정을 살펴 보면 의료인, 의료기관의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였음에도 환자 혹은 보호자가 금원을 지급받지 못할 경우 조정중재원에 대불을 청구하게 되어 있는데 이 대불에 필요한 금액을 보건의료기관개설자에게 분담하게 하고 있다. 이는 사실 상 보험사의 역할과 같으며 이 보험금을 조정 당사자와는 관련이 없는 타 보건의료기관 개설자들이 `십시일반' 지불하게 되어있다. 이는 공공성이 강한 의료부분의 모든 책임을 의료인이 짊어지게 하는 것으로 불합리하다.

결국 의료분쟁조정법은 의사가 중환자를 기피하게 만들고, 취약한 전공의들을 위협하며, 법적으로 불합리한 부분이 많은 법이다.

처음에는 문제점들이 드러나지 않고 환자들에게 이로움을 주는 법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신뢰관계가 손상된 환자-의사관계, 중환자기피로 인해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많은 보호자들을 보게 될 것이다.

의료의 질 하락이 반드시 동반될 것이며 중소 병원들의 중환자기피는 의료전달체계의 붕괴 또한 더욱 가속화 시킬 것이고 이러한 피해는 결국 우리의 환자들이 볼 것이다. 

의료사고는 분명히 존재한다. 의사가 신이 아닌 이상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공공성이 강조되는 우리나라 의료제도에서 정부와 의료인은 함께 지혜를 모아 의료사고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을 함께 고민하지 않고 `의사들이 잘못했으니 처벌 받아라', `배상금은 의료인들의 잘못이니 혹시 대불이 필요할 경우 동료 의료인들이 부담해라' 는 식의 접근은 옳지 않다. 

우리는 집이 다 타버렸다는 이유로 불을 끄려고 노력한 소방관을 비난하지 않는다. 화재를 진압하고자 하는 마음이 모든 소방관에게 있는 것처럼 환자를 살려내고자 하는 마음은 모든 의사에서 같을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화재현장에 들어가는 소방관처럼 의사들은 오늘도 환자를 살려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진료에 임한다. 환자를 살려낼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적극적으로 `해보겠으니 믿어달라' 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의료환경을 소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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