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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 의사신문
  • 승인 2016.06.1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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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40〉

 

우리가 일생을 사는 동안 행운도 만나고, 불행도 만난다. 내 경우 운이 좋아 비교적 평탄하게 살고 있지만, 어릴 때 중학교 입학시험에 실패도 해 보았고, 나이 들어 병치레도 하고 있다. 물론 전 생애를 괴로운 일 없이 살기는 어렵지만, 이런 고난을 준 하느님 또는 운명을 원망도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보다 더 특별한 인생길을 걷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 때에는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까지 각 단계마다 입학시험이 있었고 경쟁으로 아주 치열했다, 모든 학교와 학생은 입시 성적순에 따라 소위 일류, 이류, 삼류 식으로 서열화 되었고, 공부를 나름대로 했지만 시험에 떨어진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마음고생을 하였다. 은퇴를 앞둔 지금 나는 주위 사람들의 일생을 통한 활동, 사회 기여도를 학생시절의 학습 성적과 비교하여 본다. 일류 학교의 명문 브랜드로 부러움과 기대를 받던 수재들이 실제 사회에서 이에 부합되는 큰 역할을 하였을까?

꼭 그렇지 만은 아닌 것 같다. 전문직인 교수, 법관, 의사 중에는 일류 학교 출신이 많다. 그러나 각 분야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위급(?) 인물 중에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 대한민국 십여 명의 역대 대통령 중 일류 고등학교나 일류 대학교 출신은 1/3도 안 된다. 문화계, 예술계, 종교계, 정치계에서도 소수이다. 경제계에서도 창업자 중에는 거의 없고 주로 그 아래에 있는 전문 경영인들이다. 즉, 일류 학교 졸업생이 사회 상류층의 일부를 이루고는 있으나, 최고 지도자 중에는 예상보다 드문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똑똑하고 공부를 잘해서 실패 없이 살아온 사람은 지능과 능력은 뛰어나지만 이에 따라 약점도 있기 마련이다. 우선 인생의 쓴맛을 몰라 세상 일을 쉽게 생각한다. 갖가지 원인에 의해 사람의 삶이 어려워지고 고통을 겪는 현실을 모르니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실수를 용납하기 어렵다. 또, 고속도로 같은 인생길을 달려 온 자신이 특수하다고 착각하여 행동하니 민심을 얻기가 힘든 경우도 있다.

삶에서 만나는 고통은 그 사람을 다시 일어서게 자극하는 계기도 된다. 입시에서 실패한 학생은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어려서 깨닫는다. 이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다. 물론 젊어서 입시 말고도 다른 어려움으로 달굼질을 받은 사람이 나중에 큰 인물이 되고는 한다. 오죽하면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을까.

더 중요한 점은 실패와 고통은 사람이 자만심을 버리고 좀 더 성숙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겸허하게 자기를 낮추고 마음을 비우니 다른 사람의 실수와 고통을 감싸 안는 아량과 포용력이 생긴다. 지도자가 꼭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다.

 사랑의 체험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 위해 필요하고
 고통의 체험은
 그 말의 깊이를 느끼기 위해 필요합니다.
 한 곡의 노래가 울리기 위해서도
 우리 마음속엔 그 노래가 울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 〈마음의 여백이 소중한 이유〉 중에서
 
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니, 많은 환자는 사실 너무 억울(?)하다. 일부 환자는 자기가 잘못해 병이 생기고 진행되지만, 대부분에서는 안 그렇기 때문이다. 예로 원인 불명의 질환이나 선천성 질환은 그들의 과오가 아니다. 또한 설사 본인의 잘못이 있더라도 평소에 의료진이 주의를 강조하지 않았던 경우도 있다.

심한 병인 경우 육체적 통증도 오지만, 환자는 중병에 걸린 현실과 앞으로의 예후에 정신적 갈등과 고통을 겪는다. 보통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예를 들어 암환자의 경우, 처음에는 병을 부인하고 의사가 오진했다고 다른 의사나 병원을 찾는다. 진단이 확실해지면, 왜 하필 내가 이유 없이 암에 걸려야 하는지 분노한다. 그 다음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슬픔과 우울한 시간도 지나 운명을 수용한다. 신체적 고통은 요즘 발달한 치료법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환자는 우울증과 허탈감에 빠진다.

그러나 모든 환자가 이렇게 수동적으로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까운 예로 은사이신 H 선생님은 폐로 전이된 진행성 간암으로 회생할 확률이 5%밖에 안 된다고 진단 받았다. 선생님은 그 5% 안에 들어가겠다고 결심하고 열심히 치료받아 완치되었다. 내 지도교수이신 고창순 선생님은 25세, 50세, 65세에 3번 암이 생겨 고생하셨으나 굳은 의지로 이겨내고, 평생 정상적으로 교수생활을 했다. 이 두 분은 “암에 기죽지 말고 친구처럼 지내라”는 투병의 지혜를 전하면서 많은 환자의 모범과 희망이 되었다.

특히 고 선생님 경우는 어떻게 보면 기구한 운명이나 본인은 오히려 하느님께서 주신 특별한 배려라고 위안하였다. 젊은 날부터 죽음과 삶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면서 세상을 보는 남다른 눈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하찮은 재물이나 명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모두가 공생하는 화합을 우선으로 하였다. 이런 성숙한 생각과 행동으로 선생님은 우리나라 의학계에 큰 획을 긋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숙명적인 병과 죽음의 사슬에서 우리 인류는 무엇을 얻었을까? 부처님은 인생을 생로병사(生老病死)인 고통의 바다로 표현하셨다. 태어나면 누구나 저절로 늙고, 병들고, 죽는다. 한정된 시간을 그것도 힘들게 살고 간다는 기막힌 현실을 인식하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는 반작용으로 영원한 진리와 진선미를 추구하여 종교, 인문학, 예술, 과학을 비롯한 찬란한 인류 문명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하듯이 “경험한 만큼 느끼고 안다”도 맞는 말이다. 인생길에서 마주치는 불운이나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자! 좀 더 진실하고 풍요로운 삶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오르기 어려운 높은 산이 있으면 물과 나무가 우거진 계곡이 깊듯이, 운명적 고난은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를 좀더 성숙하고 가치 있게 만들려는 하느님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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