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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법' 통과…이제 누가 중증환자 진료할까? 
`신해철법' 통과…이제 누가 중증환자 진료할까?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6.05.30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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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신해철법’이라 불리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지난 5월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 공포 6개월 후 시행되기 때문에 이르면 올해 12월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은 의료사고로 인해 사망이나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또는 장애 1등급 등 중증상해가 발생할 경우 피신청인이 조정신청에 응하지 않더라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해 지체 없이 개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불가항력에 의한 의료사고로 중증상해가 발생했더라도 환자가 원한다면 의료기관의 동의가 없어도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언제든지 조정이 자동 개시될 수 있게 한 것을 의미한다.

법안이 시행된다면 의료 분쟁 남발을 우려한 의사들의 위험 회피 성향은 더 높아져 방어 진료를 부추길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어떤 의사가 중환자 진료를 맡으려 할까? 중증외상환자도, 고난이도 수술도, 분만도 마찬가지이다.

환자안전을 위한다는 취지로 입법됐지만 오히려 환자안전을 위협하는 악법이라는 지적이다. 당장 전공의들이 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산부인과 등 사망률이 높은 외과계열 전공에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분쟁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진료과목 의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지고 있다.

드라마 골든타임 최인혁 교수와 같은 중증외상 진료 의사들은 이제 더 이상 기대할 수도 없다. 사망한 환자의 유족들이 모두 분쟁을 걸기라도 한다면 진료는 커녕 1년 내내 여기에 끌려 다닐 게 뻔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나서서 의사들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진료과를 멀리하고 미용성형에 매달리게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의사는 신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도, 의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사망하는 환자는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다. 때로는 그런 위험을 안고 불가피하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더 좋은 것이 아닌,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중에 선택해야 하는 게 바로 의사들이다. 전국에서 가장 사망률이 높은 병원 순서가 환자가 많은 병원의 순서와 거의 일치하는 이유다.

법안이 시행되면 전국의 모든 의사들은 너도나도 여차하면 상급종합병원에 전원시키려 할 것이다. 대형병원의 응급실 과밀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즉각 심각성을 파악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정치인들이 인기를 얻기 위해 포퓰리즘 법안을 통과시켰다. 왜곡된 의료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메르스 사태를 목격하고도 깨닫지 못했는가?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과 의료기관, 의료인 모두의 몫이 될 것이다.

멀지 않은 때에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당장 피해를 막을 수 없다면 이로 인한 책임 소재라도 분명히 해놔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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