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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히 가버린 '달마 중투'<13>
홀연히 가버린 '달마 중투'<13>
  • 의사신문
  • 승인 2009.11.2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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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 방송 중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발언에 나처럼 키 작은 많은 사람들이 발끈해 시끄러웠습니다. 하지만 난은 키가 작을수록 더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거기다 흰 무늬까지 있으면 더욱 극진해집니다. 거기에 혹시 무늬가 들어 있는 오십 원짜리 동전만한 꽃이라도 핀다면…

중투 단엽종 보세란을 발코니 난실 좋은 자리에 놓고 바라보니 참 보기에 좋았습니다. `달마 중투'라고 하는 품종의 난 한 분 앞에서 몇 천 원 또는 몇 만 원을 주고 사들여 키우던 이런 저런 춘란들이 초라하게 보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수시로 드나들며 살폈던 난들인데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더 자주 들락거리며 난의 아주 작은 변화들을 살피게 되니 값 비싼 난 한 분의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다가오면서 걱정이 생겼습니다. 보세란은 상대적으로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난이라 비록 발코니라 하더라도 한겨울 추위를 견디지는 못할 것입니다. 반면 아파트 실내에서 따뜻하게 월동을 하면 봄에 튼튼한 새 촉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햇빛이 부족해 난은 더 약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춘란은 한 겨울 눈 속에서도 얼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남아 3월을 기다려 소박한 꽃을 피우며 봄을 알립니다. 그래서 보춘화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서울 인근 지역의 한겨울 추위를 보춘화가 견디지는 못합니다.

12월이 되면서 발코니 창에 비닐을 덧씌우고 테이프로 밀봉해 찬바람을 어느 정도 막아주는 것으로 난들의 월동 준비를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보세란이 얼어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불안해 밤엔 거실에 들여놓을 심산입니다.

춘란에겐 밤이 아니라 낮이 문제입니다. 한 낮 발코니 실내 온도가 너무 올라가고 습도가 낮아지면 이제 막 올라오던 춘란 꽃망울이 봄을 맞이하기도 전에 말라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남부지방에서 자라다 고향을 떠나온 보세란과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올라온 보춘화의 동거가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며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거실의 보세란을 발코니에 내 놓고 밤이 되면 문을 닫고 보세란을 거실에 들여놓는 수고를 할 수 밖에요. 이런 수고는 그래도 즐겁습니다.

분에 넘치는 난 한 분을 들여놓고 그해 겨울은 하루하루가 행복하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지독한 추위가 오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아주 매서운 추위가 온다는 예보는 며칠 전부터 있었고 그날 아침 뉴스에서는 한 밤 온도가 영하 십도 아래로 많이 내려간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낮에는 발코니 햇볕이 제법 따뜻하기에 안심하고 보세란을 내어 놓고 출근을 했습니다.

그날 밤엔 무엇에 홀린 듯 편하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한 밤중 잠결에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이런! 보세란 들여 놓는 것을 잊었습니다. 최저기온 영하 17도라는데…. 벌떡 일어나 거실 문을 여니 정말 추위가 매섭습니다. 보세란을 거실로 들여 놓고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큰 문제는 없는 듯 보였습니다. 다시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질 않습니다. 괜찮을까?

그러나 아침에 중투 단엽종 보세란은 화분 위에 누운 채 나를 맞이했습니다. 그렇게 달마 중투는 홀연히 가버렸습니다. 나하고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던 모양입니다. 난에 대한 욕심이 앞서지 않는 다른 사람에게 갔더라면 번식이 되어 여러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을 지도 모를 품종인데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욕심이 화를 부른 것입니다. 제 분수를 알고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근식〈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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