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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엽종은 뿌리도 굵고 짧다는데<12>
단엽종은 뿌리도 굵고 짧다는데<12>
  • 의사신문
  • 승인 2009.11.1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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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엽종 난에 대한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단엽종이란 말 그대로 난 잎의 길이가 짧은 변이종 난을 말합니다. `짜보'라 부르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짤막이'로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난과 관련된 지면에 발표되는 단엽 춘란 사진을 보면 저런 것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잎이 짧은 난도 있습니다. 난 잎의 길이가 기껏해야 1cm 남짓한 극단적인 난도 가끔은 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잎이 짧은 난은 내 취향은 아닙니다. 짧아도 적당히 짧아야 하고 거기에 오십 원짜리 동전만한 꽃이 앙증맞게 핀다면 금상첨화겠지요. 그러나 이런 난은 값이 천정부지라 언감생심 꿈도 못 꿉니다.

가끔 들러서 눈요기를 하던 난 전문점이 있었습니다. 가끔은 남에게 선물할 난을 골라 심기도 하던 곳입니다. 한 촉에 수십만 원하는 고가의 난들도 가끔은 보이는데 이미 품종이 널리 알려져 있는 일본 춘란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른 바 지름신이 강림했던 그날 정말 무엇엔가 홀린 듯 눈에 박혀버린 난이 있었습니다. 1월에 꽃이 피는 중국계 보세란의 변이종이었습니다. 키는 10cm 정도였고 무늬가 화려했습니다. 혜란 중투 단엽종입니다. 잎이 3장씩 달린 두 촉의 난이었는데, 짧지만 잎 선이 참 보기 좋게 벌어져 있었습니다. `달마'라는 품종이라고 하는 주인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면서 한 참을 살폈습니다.

“뿌리 괜찮아요?”

“그럼요. 최상급이죠.”

“쏟아 봐도 될까요?”

“그럼요. 보세요.”

난을 구입할 때는 뿌리 상태를 꼭 확인해야 합니다. 좀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뿌리는 맑고 깨끗했습니다. 그런데 뿌리가 붙어 있는 벌브 부분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해 조금은 약하게 보였습니다.

“벌브가 좀 약하군요.”

“그렇게 보여도 뿌리가 이정도로 튼튼하니 올겨울 넘기고 내년 봄 새 촉 받으면 아주 튼튼하게 자리 잡을 종잡니다. 여기 보이시죠? 새 촉 눈도 달려 있어요.”

“그렇군요.”

뿌리 가까이 쌀 한 톨 만한 눈이 보입니다.

한 시간도 넘게 바라보고 또 보다가 6개월 할부 신용카드로 난 대금을 결제하고 그 두 촉을 분양 받았습니다. 한 달 월급보다도 많은 금액입니다. 외국인이 수업을 진행하는 영어 학원에 아이가 다니고 있었는데 1년도 넘게 다닐 수 있는 돈입니다. 늘 무슨 결정이든 쉽게 내리지 못하고 미적거리던 내가 이렇게 한 순간에 결정을 내린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참 흐뭇했습니다. 행여 지하철에 두고 내릴까 걱정이 되어 자리에 앉아서도 쇼핑백을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가끔 안을 들여다볼 때마다 흐뭇한 웃음이 절로 번졌습니다.

그 때는 아파트 발코니 바닥에 인조 잔디를 깔고 창 쪽에 발을 쳐 반그늘을 만들어 난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녹색이 충분하지 않은 품종이라 햇빛을 많이 보면 잎이 탈 수도 있겠다 싶어 가장 햇빛이 덜 닿을만한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10월이었으니 더위와 추위 때문에 난이 상할 일은 없을 테고 지나치게 건조하지만 않으면 충분할 것입니다. 인조 잔디 위에 물을 흠뻑 뿌려 주었습니다. 이제 되었습니다.

밤에 기온이 내려가고 습도도 다를 테니 아마도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적응하느라 몸살을 앓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곳에 자리 잡고, 난 가게 주인 말 대로, `올 겨울을 잘 넘기면' 내년 봄엔 새로 한 촉 더 올라올 것입니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세심하게 거름을 줘가며 관리를 한다면 두 촉까지는 더 올라올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마음이 들떠 그날 저녁 내내 발코니를 들락거렸습니다.

오근식〈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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