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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진칼럼]진상 환자
[임원진칼럼]진상 환자
  • 의사신문
  • 승인 2016.04.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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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협 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

아침 첫 환자가 소란을 피우기 시작한다. 몇 개월 전 유방초음파에서 혹이 발견되어 조직검사까지 했는데 새로 보험 가입이 안된다며 검사 기록을 삭제해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다. 이미 심평원 청구 기록이 남아 있고 본인도 실비보험 청구를 했기 때문에 어차피 들통난다고 설명했지만 막무가내다. 다른 병원에서는 잘도 기록 삭제해 줬는데 이 병원은 왜 안되냐고 하길래 `그 병원 가지 왜 여기 오셨냐?'고 쏘아 붙이고 싶었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소견서 쓰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보험설계사 친구에게 조종 당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침 첫 환자로 진상 환자를 만나면 진이 빠져 하루 진료를 망치기 십상이고 애꿎은 다음 환자는 이유 없이 구박 당하기 일쑤다. 게다가 무슨 진상 연락망이 있는지 진상 환자는 날 잡아서 한꺼번에 몰려온다. 친구들과 만나면 누가 더 쎈 진상 환자를 만났는지 무용담을 자랑하기 바쁘다. 요새는 대학병원 외래 진상 환자들의 내공도 만만치 않아 진상 자랑대회를 하면 개원가에 견줄 만 하다고 한다.

비율로 따져보면 훌륭한 환자가 30%, 보통 환자가 50%, 그리고 진상 환자가 20% 정도를 차지하는데 진상 비율은 해가 갈수록 더 높아지는 것 같다. 최근에는 진상의 방법도 다양해지고 지능화되어 대처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말이 많은 환자, 내 말 똑똑 끊어먹는 환자, 방금 한 말 또 하는 환자, 진료 받다가 전화 받는 환자, 5분 기다리고 짜증내는 환자, 진료비 비싸다고 항의하는 환자, 곧 죽어도 서울대병원 가야한다는 환자는 차라리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진료 내용을 그 자리에서 모두 외우고 이해해야 직성이 풀리는 환자, 인터넷에서 찾은 잘못된 의료 정보를 내가 인정할 때까지 논쟁하는 환자, 어떤 설명을 해도 묵비권을 행사하는 환자, 다른 사람 많이 소개할 테니 보험 하나 가입하라고 딜을 시도하는 환자 등등 진상의 방법은 무한대로 늘어나는 느낌이다. 얼마 전에는 갑상선에 모양이 좋지 않은 결절이 발견되어 조직검사를 하자고 했더니 이미 다른 병원에서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고 이실직고하는 환자도 있었다. 어디 한 번 맞춰보라는 식이었다.

개원 초기, 의사는 진료 무대에 서는 배우이고 환자라는 관객 앞에 서서 열심히 연기(진료)를 하면 감동하고 박수 쳐 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배우와 관객의 관계가 비교적 잘 유지되던 대학병원 외래 진료와 달리, 개원 후에는 관객이 나의 연기에 간섭하고 무대에 난입하는 당황스런 상황이 발생했다.

이겨본 적은 없지만 진상 환자들과 말싸움도 많이 했고 특이사항 란에 진상의 정도에 따라 골뱅이(@)표시 개수로 기록하여 직원들과 공유하기도 하였다. 진상의 종류를 좀 더 세분화 하여 알파벳으로 표시하는 방식은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개원 후 3년쯤 지나고 진상 환자들에 대한 적개심이 극에 다다랐을 무렵, 말이 아주아주 많은 골뱅이 3개짜리 진상 환자가 왔다. 유방에 혹이 만져져 온 40대 환자였는데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쉬지 않고 말을 해 대는 것이었다. `나도 말 좀 합시다' 하고 핀잔을 주려는 순간 환자의 눈동자가 살짝 떨리는 것을 보았고 그 안에 두려움과 서글픔을 보게 되었다. 유방에 혹이 만져진 이후 며칠 동안 유방암에 대한 걱정으로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태였고 공포심을 애써 감추기 위해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수다를 떨었던 것이었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며 골뱅이 3개 진상 환자가 한없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환자를 안정시키고 검사를 한 후 최대한 편안하게 설명하였다.

며칠 후 예상대로 유방암 진단이 나왔지만 환자는 큰 충격 없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대학병원으로 갔다. 수술 잘 받고 방사선치료, 항암치료, 호르몬치료 잘 받아서 지금은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지금도 대학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검사를 하면서도 이상이 있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제일 먼저 나를 찾는다. 게다가 나에게 보낸 주변 친구와 지인이 1개 소대는 될 것이다. 첫 대면하는 날 핀잔주고 짜증내고 화를 냈었다면 그 환자에게 큰 상처를 주었을 것이고 나는 `진상 의사'로 낙인 찍혔을 것이다.

부처가 아닌 이상 깨달음을 얻었다고 당장 천사 의사가 될 수는 없었지만 그 날 이후 진상 환자에 대한 접근을 달리하였다.

첫째, 왜 진상을 부리는지 이해해 보기로 했다. 많은 진상 환자가 `rule out' 되었는데 병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기 위한 방어기전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둘째, 스스로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진상 환자도 내 환자다.' `나 아니면 진상 환자는 갈 데 없다.' `이 분들 때문에 내가 먹고 산다.' 이렇게 되뇌이며 진료를 하니 나중에는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셋째,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했다. 목소리 높이지 않고 끝까지 논리적으로 설명 하니 수긍하는 환자가 많아졌다. 이제는 늙었는지 큰 소리 내기도 힘들고 감정적으로 흥분할 기운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넷째, 내가 `진상 의사'가 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내가 진상 환자로 보듯이 환자도 나를 진상 의사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공포심까지 들었다.

개원 초기 설계했던 완벽한 진료실 연극무대를 지금은 고집하지 않는다. 환자가 무대에 난입하면 함께 어울려 마당놀이를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만든 원칙을 지키기 위해 환자와 싸우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고 수명도 깎여 나가는 느낌이다. 의사는 의사답고 환자는 환자답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면 의사가 조금 손해보고 들어가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최소한의 의사 자존심만 지킬 수 있다면 진상 환자들과 타협하며 평화롭게 살고 싶다. 적어도 `진상 의사' 소리는 듣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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