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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병원
내가 바라는 병원
  • 의사신문
  • 승인 2016.03.1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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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

우리 집안에는 의료인이 없다.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로 의과대학에 진학했으나 나는 의사라는 직업과 병원이라는 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이 없었다. 심지어 병치레조차 별로 해 본 기억이 없다. 그저 의술은 인술이고 슈바이처 박사가 가장 바람직한 의사일 거라는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었다.

의과대학 본과 3학년이 되어 처음 병원에서 임상 실습을 하게 되었다. 대학병원에서 받은 첫 인상은 실망 그 자체였다.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전혀 달랐다. 병원은 환자가 아닌 의료진 중심으로 돌아갔고 특히 교수님의 영향력이 막강했다. 한번은 내과 병동에서 퇴원 직전의 환자가 의학집담회의 케이스로 선정되었다. 그러자 환자의 퇴원을 미루고 교과서에 맞추어 진단과 치료를 다시 하는 것이었다. 내심 지금은 학생이니까 여기서 공부하지만 의사가 되면 내 생각에 맞는 의료 환경에서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졸업 후 전공의(레지던트) 과정을 다른 병원에서 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어떻게든 대학병원에 남으려고 치열하게 경쟁하였다. 대학병원에서 수련 받으면 배우는 것도 많지만 취업이나 장래 활동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병원의 상황은 여전했다. 환자는 주인이 아니라 의학 교육의 대상인 경우가 많았다. 다시 한 번 레지던트만 마치면 내 뜻대로 하리라 생각했다. 봉사정신에 충실한 의료진이 환자 위주로 운영하는 따뜻한 병원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뿐 같은 대학병원에서 교직을 얻어 63세가 넘은 지금까지 계속 근무하고 있다. 처음 교수가 되었을 때도 나는 영향력이 적어 진료 환경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으로 여전히 수동적이었다. 그러나 과장이 되고 원로 교수가 되어서도 크게 애쓰지 않았다. 조금 노력은 했으나 큰 틀을 바꾸기에는 불가항력이라고 자위하곤 했다. 계속 핑계만 대고 지낸 셈이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병원은 일반 종합병원과는 확실히 다르기는 하다. 환자 진료가 의학 교육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환자와 질병을 교재로 삼아 학생과 레지던트를 교육시키는 것이 대학병원의 원래 목적이다. 의학발전을 위해 연구활동도 필수적이다. 실제로 우리 병원 업무의 우선순위가 교육, 연구, 진료이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이러한 목적에 더 충실했다. 외래 환자는 학생이 먼저 진찰한 후 교수님과 일대일로 검토하며 교육을 받았다. 교수님 지도하에 레지던트가 수술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특히 응급 수술은 으레 외과 수석 레지던트 몫이었다.

당시는 의과대학의 부속병원이어서 환자나 가족도 묵시적으로 이러한 관행에 동의했다. 의사가 적은 시절이라 수련 중인 레지던트가 주치의로서 진료를 주도하고 교수님은 뒤에서 자문 역할을 했다. 지금은 인권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전공의가 주도적으로 진료를 하지 못한다. 인간의 생명을 어설픈 수련의사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일리는 있지만 학생과 초보 의사에게 의학과 의술을 가르쳐야 하는 대학병원에서는 환자 측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

나도 병원 분위기를 바꾸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조금은 했다. 레지던트 시절 회진 때에는 담당 환자에게 친밀감과 안도감을 주기 위해 가능한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핵의학과 의무장 시절에는 이명철 과장님과 상의해 직원 공모를 통해 “친절한 진료, 앞서가는 연구, 화목한 생활”이라고 과훈을 정했다. 이 글을 적은 액자를 곳곳에 걸어놓고 워크숍, 망년회 등 행사 때마다 모든 사람이 마음을 새로이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의료 환경을 크게 호전 시키지 못했다. 39년간 의사 생활을 하면서 핑계만 대고 진정으로 노력하지 않은 것이다. 대부분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지내왔으니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아쉽다.

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처음 생각하던 이상적 의료에 대한 개념이 다소 달라졌다. 의료 행위는 일상 상거래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소비자 격인 환자의 입장과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면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환자와 상의는 하지만 판단과 선택은 의료진이 해야 한다.

바람직한 모습은 무엇일까? 의료진은 환자를 사랑하는 따뜻한 감성과 전문가의 냉철한 이성을 함께 가지고 진료해야 한다. 환자의 편의와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학문적, 과학적 지식으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다. 때로는 환자의 요구에 반하여 진료 방침을 강요할 수도 있다. 혹은 윗사람 같은 태도로 환자를 이끌 수 있어야 한다.

의학 교육 또한 달라져야 한다. 의학 지식과 기술 교육과 인성 교육이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의사가 되기 이전에 인간이 되라는 말이다.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의학을 배우는 자세이다. 귀중한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의업을 최우선으로 하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철저한 생활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실력 없이 친절 만으로 가장한 진료는 일종의 사기에 가까운 범죄 행위이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별도로 교양 교육을 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의학 교육과 함께 꾸준히 시행해야 효과가 크다.

처음 의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 가졌던 순수했던 이상을 돌이켜, 의사 생활도 근 40년이 지난 지금과 비교해 본다. 이제 의술은 의료인의 일방적인 인본주의적 봉사 활동이 아니라 양측의 현실적인 거래 행위가 되었고,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현대의술을 효과적으로 이용해야 좋은 병원이다. 슈바이처 박사의 따뜻하고 인자한 웃음 뒤에는 아프리카에서 병원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준비했던 기나긴 세월의 치열했던 준비과정이 숨어 있는 것이다. 화려한 병원 건물에서 `고객은 왕'이라고 환자의 의견에 좌우되는 진료가 아니라, 완벽한 의료기자재와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진료를 제공해야 한다.

생각해보니 내가 근무하기를 바라는 병원이 이 세상 어딘가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의료진의 수준은 최상급이고, 대형 병원에는 최첨단 각종 의료장비들이 경쟁적으로 설치되어 있다. 여기에 인적 자원과 의료제도 같은 소프트웨어만 개선하면 된다. 의료진은 오로지 환자를 위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며 환자와 가족 또한 전문가를 믿고 존중하는 분위기와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따뜻한 환자 중심의 병원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소망이 이루어지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의사에게 경제사회적으로 일정 수준을 보장해 주어 환자 진료가 의료진 이익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또 병원은 이런 조건에서도 재투자할 여력을 가지도록 의료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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