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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의사와 의료분쟁조정법
로봇 의사와 의료분쟁조정법
  • 의사신문
  • 승인 2016.03.07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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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현 서울시의사회 홍보이사

우여곡절 끝에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환자의 사망이나 중상해가 발생한 경우에 의료분쟁조정을 강제 개시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주현 홍보이사.

의료계는 중상해 기준을 마련한 수정안을 요구하였으나 정부가 향후 중상해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 수정안을 제출하여 통과됐다. `신해철 법' 이라고도 불리는 개정안은 한 인기 스타가 겪은 의료사고 처리 과정에서 일어난 국민 여론에 힘입은 바 크다.

개정안 통과를 바라보는 의료계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강제 조정의 기준이 되는 `중상해' 개념이 매우 모호하다는 것이다. 강제 조정법 시행 후 자칫 의료사고에 대비한 과잉 방어 진료가 팽배해짐으로써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될까 하는 우려 섞인 시각도 있다. 무엇보다 강제 조정 절차 자체가 의료진에 대한 징벌적 입법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2000년 전후로 소비자 주권 운동 등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의료계도 환자 권리 장전 및 의사 윤리 헌장 등을 잇따라 제·개정하며 환자 권리 보장에 힘쓰고자 했다.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즉 의료분쟁조정법은 애초에 의료계에서 먼저 주장한 것이다. 법 제 1조에도 본 법이 의료분쟁의 조정 및 중재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를 신속·공정하게 구제하고 보건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 환경을 조성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요컨대 의료사고를 주장하며 진료를 방해하고 의료진을 겁박하는 소위 `브로커' 등의 폐해를 막고 의료사고를 예방하며, 환자 및 대리인, 가족들의 권리를 공적인 절차를 통해 보호하고자 했다.

조정 및 중재에 따른 의료사고 보상을 목적으로 하는 의료배상공제조합 설립 및 분만 등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사고 보상 사업 재원을 둘러싼 마찰이 있었지만, 의료분쟁조정법은 2012년 이래 줄곧 시행되어 왔다.

지금까지는 의료분쟁의 당사자 또는 그 대리인이 조정중재원에 분쟁의 조정을 신청할 수 있었다. 강제 조정 제도가 실시되면 의료사고 발생시 조정 신청 절차 없이 바로 조정위원회와 감정단에 사건이 배당될 것으로 보인다.

감정부는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신청인, 피신청인, 이해 관계인 또는 참고인으로 하여금 출석하게 하여 진술하게 하거나 조사에 필요한 자료 및 물건 등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의료사고가 발생한 보건의료기관의 보건의료인 또는 보건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사고의 원인이 된 행위 당시 환자의 상태 및 그 행위를 선택하게 된 이유 등을 서면 또는 구두로 소명하도록 할 수 있다.

감정위원 또는 조사관은 의료사고가 발생한 보건의료기관에 출입하여 관련 문서 또는 물건을 조사할 수 있다. 조정부는 신청인, 피신청인 또는 분쟁 관련 이해관계인으로 하여금 조정부에 출석, 발언할 수 있게 하는 일련의 과정이 자동 강제 개시된다.

이러한 법적 절차는 시대 흐름에 따라 만들어졌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현재의 법이 우리의 미래 또한 담보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최근 기술의 발전은 인공지능(AI)을 갖춘 로봇 의사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로봇 의사가 의료 사고를 발생시킬 경우 그 책임은 누가 지게 될까? 로봇 의사가 강제 조정에 따른 분쟁 조정 절차를 받을 수 있을까? 로봇의 제작자 또는 제작 업체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이러한 생각은 기우가 아니다.

최근 국내 일간지에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냈을 경우 차량 주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아니면 차량 제작 회사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자율주행차 시험 운행을 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바꾸었다. 자율주행차 시대가 코 앞으로 다가오면서, 인공지능을 갖춘 자율주행차량을 만든 회사가 직접 차량 보험에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논란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손해 배상 보험법에 사고 책임 주체가 `자기를 위하여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로 되어 있으므로, 유권 해석에 따라 차량 제작사가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면 자칫 수 십조 원에 달하는 자동차 보험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정부가 추구하는 의료 관광과 영리 병원이 활성화된다면, 강제 분쟁 조정의 대상은 외국 투자 법인이 될 수도, 외국 의료진이 될 수도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확대와 이에 연계된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S)도 고려 대상이다.

안정적 진료 환경을 원하는 것은 보건의료인들뿐이 아니다. 근시안적 입법은 종래에 풀기 힘든 족쇄가 될 수 있다. 수년간 원격의료 관련 논란을 지켜보며 법이 만사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보았다.

최근 원격진료 확대 시행에 나선다는 일본의 경우 우리의 원격의료법과 달리 의사법 20조에 `의사는 스스로 진찰하지 않고 치료를 하여서는 안된다'는 규정만 두었다. 의료의 본질을 지키며 일찍이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른 재택 만성병 환자와의 원격진료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조정' 과 `강제' 란 단어가 함께 들어간 법안의 이름은 볼수록 어색하기 그지 없다. 포괄적 징벌을 목적으로 한 과잉 입법은 피해를 구제하기는커녕 결국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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