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스미스 이야기
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스미스 이야기
  • 의사신문
  • 승인 2016.02.1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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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32〉

한국전쟁의 혼란 중에 부모와 헤어져 10살에 전쟁고아가 된 소년이 있었다. 우연히 미군부대에서 잡일을 하기 시작하여 그 당시 소위 말하는 `슈샤인 보이'가 되었다. 이 구두닦이 아이들은 미군과 같이 생활하면서 병영 주위를 청소하고 잔심부름을 맡아 하였다.

해병부대의 스미스(Smith) 상사가 이 아이를 특히 귀여워하였다.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해병대에 들어와 일곱 번이나 전투를 치룬 역전의 용사였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이 지키고 있는 섬에 미군 21명이 특공대로 들어갔으나 혼자 살아남은 적도 있다고 한다. 일반 사회생활을 전혀 못해보고 군에서 일생을 보낸 그는 상소리 없이는 한마디 말도 할 수 없는 전형적인 야전군인 이었다. 이 소년에서 천기(天氣)를 본 스미스는 부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들로 입양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 중퇴 후 야학공부가 고작인 그 소년은 애리조나 주 투산에서 나이에 맞추어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양부모에게는 이미 1남 1녀의 친자식이 있었다. 한국인 중에서도 작은 편인 그는 백인 동네에서는 난쟁이에 가까운 고등학생이었다. 양어머니는 잠을 잘 자면 키가 커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조건 밤 9시면 취침하도록 하였다. 학교공부가 밀려있는 그는 잠자는 시늉을 하다가 부모님 침실에 불이 꺼지면 밤 세워 이불 속에서 공부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기초 실력이 없고 영어도 부족해 처음에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상황에서 하루는 점심식사 후 학교담 밑에서 쭈그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교장선생님이 그 사유를 알게 되었다. 교장선생님은 생각보다 너무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고 성적 자체보다도 성적이 좋아지는 속도가 기특하다고 하였다.

그 후 교장선생님과 대학 진학과 장래의 일을 상담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에서 어느 대학이 가장 일류 학교인지 여쭈어 보았다. 선생님은 분야에 따라 다르나 전반적으로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 대학이 가장 좋다고 대답하였고 그는 그 자리에서 하버드대 진학을 결심하였다. 아시다시피 미국의 대학 입시에서는 학업 성적뿐 아니라 운동, 예술, 사회봉사 같은 전인적 활동사항을 중요하게 참조한다. 이런 이유로 소년은 테니스를 시작하여 곧 테니스 반장이 되고 2년 만에 백인만 있는 고등학교에서 학생회장으로 선출된다. 가장 키가 작고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동양아이가 학생 투표로 회장이 되었다니 지금도 믿을 수 없다. 실제 사실이 허구인 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것이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그리고 아마도 전쟁고아에 대한 배려로, 그는 하버드 대학에 합격하였다. 이 입지적 주인공은 대단한 화제의 인물이 되어 신문사가 자서전 출판을 권유할 정도였다. 물론 대학 신입생 신분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하였지만 그때부터 자료를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 하버드대학 재학 시 아르바이트로 교내 노점상을 하였다. 경험을 쌓은 그는 노점상 체인점의 사장이 되어 다른 학생들을 직원으로 쓰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넉넉하게 벌었다고 한다. 졸업 후 콜롬비아 대학에서 석사까지 하였으나 그 청년은 학문 보다 실무가 더 적성에 맞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미 공군 장교로 자원입대하고 근무지로 한국을 택하여 15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전쟁 후 미군을 따라간 천애고아가 세계 일류 대학을 졸업한 유망한 인재가 된 것이다. 테니스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여 경기를 관람하던 중 하루는 관중석에서 나오는 훤한 빛을 발견했단다. 그 서광은 충청도 출신의 여대생에게서 나왔고 한 눈에 반한 그는 줄기차게 쫓아다녀 마침내 결혼을 하였다. 하버드 대학을 나왔다고 주장하는 군복도 몸에 맞지 않는 자그마한 청년을 그 미녀가 좋아하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어느 부부 보다도 다정하고 서로 아끼는 사이가 되었다.

인생 초기에는 불행했으나 그에게는 하늘이 내려주고 자신이 노력하여 얻은 능력이 있었다. 퇴역 후 서울에서 외국 회사에 직장을 잡았다. 우리문화와 정서에 갈증을 느끼던 그는 직장생활 중 5년을 제외하고는 서울에서 근무했다. 실력과 업적이 특출하여 마침내 글로벌회사의 회장이 되었다. 아들도 아버지 유전자와 노력을 이어받아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 중국에서 큰 제조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스미스 상사는 노후에 아내와 친아들이 먼저 죽어 홀로 투산 옛집에서 살았다. 고아출신의 회장과 그 아들은 미국에 출장을 올 때마다 노인을 찾아와 정성껏 돌보아 주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아들이 더 좋은 집이나 승용차를 사주려고 했으나 모두 거절하고 옛날 하던 데로 매년 크리스마스카드에 50달러 지폐를 넣어 주었다고 한다. 양 아들과 손자에게 보호자로서의 위치와 자존심을 지키려는 것이다. 물론 출세한 자식에 대한 보람과 자랑은 끝이 없었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 못한 그에게는 양아들과 손자가 충분한 대리만족이 되었다.

말년에 카지노에 재미를 붙인 스미스 상사는 한 번에 몇 십 달러씩 잃어 양아들에게 핀잔을 받았다. 그 소식을 들은 중국에 있는 손자는 죽음을 앞둔 양할아버지에게 만 달러를 현금으로 바꾸어 친구들과 카지노에 가서 재미있게 즐기면서 다 잃으라고 주었다. 이 퇴역상사는 몇 명 절친과 여한 없게 마음껏 슬롯머신을 당겼다고 한다.

장례식장에는 두 남자를 빼고는 모두 백인이었다. 친지와 동네 사람들은 두 동양인이 장례회사에서 나온 일꾼으로 착각하였다. 실제 상주인 회장과 아들은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렀다. 스미스 상사의 부인인 양어머니의 첫 남편이 있었는데 제일 슬퍼하였다. 스미스가 그만큼 인성이 좋아 친구에게 잘 해준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백여 명 참석자 중에서 스미스라는 성을 가진 사람은 고아 회장과 아들뿐이었다고 한다.

두 부자는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만들어 준 미 해병상사의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 한국에서 아직도 그 성을 유지하고 있다. `미스터 스미스' 이름을 듣고 쓸 때마다 그 분의 사랑을 기억하고 타인에게도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실제로 스미스 장학금을 만들어 불우한 처지에 있는 고아나 학생을 도와주고 있다. 지금도 미국에 가면 할아버지 산소에 꼭 들르는 손자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양할아버지를 자랑스럽게 꼽고 있다.

이런 스미스 집안의 진실한 마음과 참된 사랑이 픽션보다 더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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