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사회 창립 101주년 새 출발, 의료계에 길을 묻다 ③ 〔원로〕 창립 101주년 서울시의사회에 기대한다
■'서울시의사회 창립 101주년 새 출발, 의료계에 길을 묻다 ③ 〔원로〕 창립 101주년 서울시의사회에 기대한다
  • 의사신문
  • 승인 2016.01.0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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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한국의약평론가회 회장

“내적 성장 이루며 격높은 의사단체로 거듭”

이성낙 회장.

국민의 건강증진과 대한민국 보건의료의 발전을 위해 끝없는 노력을 경주해온 서울특별시의사회가 창립 100주년이란 역사적인 높은 산을 넘었다. 서울시의사회가 의료계 대표 단체로 성장하며 우리 모두가 새삼 기억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할 대한민국 현대 의학사에 큰 이정표를 마련했다는 것은 참으로 크게 축하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근·현대 의학사에서 독일 면역학 학자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 1854∼1915)가 `살바르산(Salvarsan, 일명 606)'을 개발해 매독(Syphilis) 치료의 길을 연 해가 1909년이고, 영국(스코틀랜드)인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1955)이 항생 물질 페니실린(Penicillin)을 처음 개발한 해가 1928년(주: 약품 제조, 1942)이다. 의학의 발전이 인류의 역사에까지 영향을 크게 미칠 정도로 크게 공헌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면 국내 현대 의학은 서양의학의 근현대사 흐름과 호흡을 같이하며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우리 서울시의사회가 지난 1915년에 창립해 지금까지 의료 발전에 기여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의학이 세계 현대 의학사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위대한 역사적 의미를 결코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는 뜻이다.

오늘날 의과대학 교수, 개원의사, 봉직의, 전공의 등 3만3000명이 넘는 모든 의사 직역 회원으로 구성된 서울시의사회는 지난 1915년, 43명의 선배 의사들이 뜻을 모아 창립한 `한성의사회'를 모태로 하고 있다. 당시 선배의사들은 역사의 첫발을 내딛으면서 “뭉치면 이루고 흩어지면 그르친다”라고 외쳤다. 오늘날 우리는 선배 의사들이 왜 이런 문구를 창립 슬로건으로 남기며 결연한 의지를 다졌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시의사회가 겪어온 지난 역사 100년은 한반도 역사의 가장 격동기이기도 하다. 의사회 창립 당시 암울했던 한반도의 시대적 배경을 돌아보면, 선배 의사들은 1895년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들의 칼날에 무참히 살해된 사실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가운데 1910년 다시 조국이 일본에 송두리째 강탈당하는 뼈아픈 역사적 과정을 몸소 겪었다. 선배 의사들 역시 숭고한 의업을 행하는 전문가이자 지식인으로서 이러한 민족의 역사적 비극을 또렷이 지켜보며 슬픈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를 간접적으로 표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담했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새삼 그들의 피맺힌 절규가 생생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분들의 처절한 메아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선배 의사들은 일제에 빼앗긴 조국을 위해 무엇이라도 서둘러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이 있었을 것이고 이러한 배경에서 `한성의사회'를 창립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당시 서울에서 활동하는 조선인 의사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창립한 한성의사회도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치욕과 설움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창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19년 일제는 총독부 조선의사회규칙을 제정하여 한성의사회로 하여금 경성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의사들의 어용의사단체인 경성의사회에 통합할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한성의사회는 긴급 총회를 열고 경성의사회와의 통합 반대를 결의하면서까지 맹렬히 저항했다.
 
일제에 맞서 전문가적 자존심 지킨 선배들의 의지 계승
새로운 100년 밝히는 위상 제고·사회적 책무 충실 이행

이후에도 일제는 한성의사회에 대해 수차례에 걸쳐 자신들의 입김이 미치는 어용의사단체와 통합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성의사회는 이러한 폭압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거부하며 전문가적 자존심을 지켰다. 하지만 한성의사회는 계속되는 일제의 폭압을 이기지 못하여 결국 1940년 강제 해산 당하고 말았다. 창립 26년 만의 일이었다. 이후 1945년 드디어 우리나라는 꿈에 그리던 광복을 맞았고 이에 맞춰 한성의사회는 서울시의사회로 다시 태어났다. 이듬해인 1946년에는 서울시의사회 첫 임시총회를 개최했다.

이제 서울시의사회는 3만3000명이 넘는 회원으로 구성된 엘리트 단체로 성장해 우리 사회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단체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따라서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더불어 사는 공동체 사회에서 최고의 의료 전문가단체인 서울시의사회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가 높은 것 또한 자연스러운 귀결점이기도 하다.

즉, 서울시의사회가 지금까지 보여준 다양한 봉사 활동을 통한 사회적 책무를 소홀히 해서는 결코 아니 된다는 뜻이다.

서울시의사회를 비롯한 의료계가 국민건강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현재 서울시민을 비롯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건강지표는 세계최고수준을 달리고 있다.

서울시의사회 101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의사회의 더 큰 발전을 바라는 필자의 절실한 소망이 있다면, 서울시의사회가 내적 성장을 이루며 더욱 격 높은 사회단체로 거듭나길 바라는 것이다. 그래야 `뒤에서 밀어주고, 옆에서 부축하며, 앞에서 선도하는' 서울시의사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01년 전 질병의 고통과 가난에 시달리던 조선 땅에서 피어난 한줄기 꽃처럼, 선배 의사들의 “뭉치면 이루고 흩어지면 그르친다”는 피맺힌 절규를 진심으로 아로새기는 보은의 아름다움으로 승화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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