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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공익신탁; 거창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 마음의 정성이면 충분하다.
[제언]공익신탁; 거창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 마음의 정성이면 충분하다.
  • 의사신문
  • 승인 2015.12.1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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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철 희 분당서울대병원장

100년 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시작된 `서스펜디드 커피'라고 있다. `맡겨둔 커피'라는 뜻의 `서스펜디드 커피'는 아메리카노나 카페라떼와 같은 커피의 종류가 아닌, 일종의 `커피 기부'다.

이철희 원장.

이 서스펜디드 커피는 커피 한 잔 마실 여유조차 없는 노숙인들을 위해 카페 이용자들이 미리 커피값을 지불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두 잔의 커피 값을 지불하고 한 잔을 받아 나오면, 나머지 한 잔은 따뜻한 온기가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남겨진다.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서로 얼굴은 모르지만 커피 한 잔이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나눔을 베푸는 것이다. 비록 커피 한 잔 이지만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이 되고 마음을 녹이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작은 나눔이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과정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이웃을 위한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NGO단체나 사회복지시설에 기부금을 전달하거나 구세군의 자선냄비와 같은 길거리 모금에 동참해 작은 정성을 기부하는 방법도 있고 헌혈을 통해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 또한 무형의 자산인 재능을 나누는 재능기부도 나눔 실천의 한 방법이다.

최근에는 법무부에서 출범한 `공익신탁' 제도가 선진국형 기부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공익신탁이란 기부금을 믿을 만한 기관에 맡기고 기부된 자산을 관리·운용해 기부원금은 물론, 그로부터 나오는 수익금까지 모두 공익사업에 사용하는 기부모델을 말한다. 기부한 돈이 내가 원하는 목적에 맞게 잘 사용되었는지 운용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공익신탁은 신뢰성을 기반으로 선진국형 기부문화 확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도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난치성 질환 어린이 치료를 위한 공익신탁'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들은 치료 기간이 길고 그만큼 치료비도 높을 수밖에 없다.

어려운 환경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이들과 그 가족에게 돈 걱정을 하게 만드는 것은 한 사람의 의사로서, 아버지로서, 손주를 둔 할아버지로서 무척이나 가슴 시린 일이었다.

이 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삶과 건강을 찾아주는 것은 어린아이 한명의 생명을 넘어 한 가정, 한 세대, 나아가 이 사회 전체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더 많은 어린이들의 생명을 지켜주고자 공익신탁을 시작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개원한 이후 난치성 질환 어린이 지원사업으로 800명이 넘는 아이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나눔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고자 열심히 뛰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아이들이 생명의 끈을 잡으며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기부'라고 하면 보통 거창하거나 막막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실 기부도 공익신탁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요즘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는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에게 받을 생일 선물 대신에 어려운 이웃이나 소아암 환자들에게 그 금액을 기부하는 활동을 한다고 한다.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통해 모금하는 방법을 공유하고, 주변 친구들로부터 축하 선물을 받는 대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기부금을 함께 모으는 방식이다. 이러한 이벤트에 동참하는 청년들은 기부에 대해 혼자서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닌, 가족과 또는 친구와 함께할 수 있는 소소하지만 따뜻한 기부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기부는 유명한 사람만 하는 것도, 큰 돈 이여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꼭 무슨 일이 있을 때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날에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이라도 좋고, 나중이라도 좋지만,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에서 기부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식이나 펀드에 자산을 투자하는 사람이 있듯이, 우리는 공익신탁이라는 기부 프로그램에 소중한 정성을 투자하여 대박의 수익률로 더 많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행복을 경험하는 것은 어떨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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