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44 (금)
바위고개, 극락정사 그리고 할아버지… 
바위고개, 극락정사 그리고 할아버지… 
  • 의사신문
  • 승인 2015.12.08 08: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28〉

내가 불교와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5학년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이다. 상도동에 있는 조그마한 절에서 49제를 지냈기 때문이다. 생전에 할아버지, 할머니는 첫 손녀인 누나와 장손인 나를 아주 예뻐하셔서 주말이면 상도동 할아버지 댁까지 다녀오곤 했다.

우리 집이 있는 영등포에서 전차를 타고 노량진에서 내리면 걸어서 큰 언덕 두 개를 넘어야 했다. 올라가다가 힘이 들면 쉬면서 학교에서 배운 〈바위고개〉 노래를 누나와 함께 화음에 맞추어 불렀다. 한 번은 이 고개로 퇴근하는 할아버지 회사 승용차를 만나 행운을 기뻐하며 차로 쉽게 언덕을 넘어 간 기억도 있다.

부자인 할아버지는 나와 누나를 무척 사랑했다. 할아버지 집 다락에는 우리 장난감이 가득하였고 식탁에는 당시로는 희귀한 바나나까지 준비해 놓았다. 유명한 외국영화가 상영되면 우리와 함께 관람하였고, 미국에서 온 아이스 쇼를 얼린 덕수궁 연못에서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구경한 적도 있다. 겨울에 방안에만 머물러있는 나를 위해 백화점에서 값비싼 스케이트도 사주셨다.

우리가 자주 멈추어 쉬던 둘째 고개 중간에 `극락정사'라는 작은 사찰이 있었다. 평소에는 관심 없이 지나쳤으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사를 드리기 위해 수시로 다니게 되었다. 할아버지 죽음으로 만난 사찰의 낯선 풍경이 어린 나에게는 불편하고 두렵기도 하였다. 황금색의 부처님, 까까머리에 무채색 복장의 스님, 색이 바랜 병풍과 얼룩진 멍석, 목탁 소리에 따라 수없이 하는 절, 고기 반찬 없는 식사 등등.

그 후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치열한 학교공부 때문에 불교는 나의 관심 밖이었다. 신입생이 되어 학교생활에 익숙해 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때 나는 종교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다. 그 나이로 보아 당연한 일이었다. 불교의 경전과 〈신약성서〉, 심지어는 〈코란〉까지 들추어 보았다. 그 중에서 불교에 가장 친근감을 느꼈다. 아마도 교리보다 철학에 가까운 불교 사상 때문이리라. 그 당시 `현암사'라는 출판사에서 일본 학자와 스님이 쓴 불교 서적을 연속해 발간하고 있었다. 여기에 재미를 느껴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에서 밤 늦게 까지 탐독하곤 했다.

그러나 부처님이 깨달았다는 연기론이나 경전의 내용이 너무 원리적이어서 마음에 닿지 않았다. 심정적으로 받아드리게 된 것이 30대 후반의 나이에서 였다. 그 당시 IAEA(국제원자력기구) 핵의학 담당관이 스리랑카 사람인 피아세나 박사였다. 한번은 불교에 해박한 그 분에게 연기론과 업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는 자기 나름대로 이해한 내용을 들려주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이 사건이 과거의 수많은 원인에 대해 생긴 결과라는 것이다. 즉, 내가 의사가 된 사연, 핵의학을 전공하게 된 사연, 그가 IAEA에 근무하게 된 인연 등 과거의 여러 원인들이 얽혀져 이 순간이 이루어 졌고, 또 지금의 대화나 행동이 미래에 수많은 결과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이 말에 나는 새로 맞춘 안경을 쓰고 세상을 선명하게 다시 보는 것 같았다. 그의 설명은 아주 합리적이어서 설득력이 있었다.

업(業)이라는 것은 자기 삶의 테두리에 해당된다. 즉 과거의 인연에 따라 형성된 어떤 인생 윤곽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일정한 신체적·정신적 조건을 가지게 되고 부모님 삶의 결과물, 예를 들면 신분, 재력 등을 이어받는다. 그러나 이 또한 고정되어 있지 않고 현재의 처신에 따라 미래와 자식의 업보는 끝없이 변한다고 해석하였다.

그 후 업과 연기론은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세상사가 생기고, 나타나고, 작동하고, 없어지는 원리를 깨닫게 된 셈이다. 지금 내 생각과 행동에 따라 미래의 결과(사건)가 결정된다. 현재를 선한 의지로 열심히 생활하면 앞으로의 인연과 업, 다시 말해 미래의 삶은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 인연과 업은 수동적이고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기가 선택하여 만드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할아버지가 만든 인연과 업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 데에 크게 작용하였다. 무엇보다도 농사꾼이던 할아버지가 서울로 올라와 고학으로 공기업 고위직까지 출세를 해서 자손들이 화이트 칼라가 되게 하였다. 즉, 나의 `업'을 업그레이드 시킨 것이다. 또 내가 후에 문화, 예술, 체육을 좋아하고 불교에 관심을 가지는 데에 일조하였다.

처음에 낯설고 두려웠던 사찰의 풍경과 행사는 60대 나이가 된 지금은 익숙해지고 정겹기까지 하다. 부처님 눈길은 인자하시고, 목탁 소리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 절 밥 나물은 입맛을 돋군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극락정사와 상도동 언덕은, 52세에 아깝게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추모하는 공간이다. 고개를 넘어 할아버지 댁에 찾아가고, 고개 위에서 할아버지를 만나고, 고개에 있는 극락정사에서 할아버지와 이별했다.

지금도 〈바위고개〉 노래를 들으면 할아버지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함께 애잔한 그리움이 여름밤의 은하수처럼 반짝이며 내 마음 속으로 쏟아진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님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 납니다

 바위고개 피인 꽃 진달래꽃은
 우리 님이 즐겨 즐겨 꺾어주던 꽃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