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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진칼럼] 삶의 질에 대한 단상(斷想)
[임원진칼럼] 삶의 질에 대한 단상(斷想)
  • 의사신문
  • 승인 2015.11.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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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종 웅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김종웅 부회장.

근간에 OECD `삶의 질' 보고서가 회자된다. 모든 연령에서 OECD 평균보다 낮고 나이가 들수록 삶의 만족도가 급락한다. 삶의 질이란 행복 지수이다. 전 국민 건강보험 제도를 포함하여 한국의 경제적 성취는 전 세계가 부러워하지만 자살률 부동의 1위, 그것도 OECD 평균의 2.4배, 행복지수 158개국 중 47위 (UN 조사)는 엇박자 삶을 의미한다.

얼마 전 90대의 노교수가 다시 젊어진다면 몇 살로 돌아가고 싶으냐는 질문에 20∼30대가 아닌 60대라고 하였다. 공감한다. 주위 의사들에게 물어보아도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분은 없었다. 비록 체력은 떨어졌지만 학업, 수련의 스트레스는 피하고 싶다는 이유이다. 50대 이상 의사들을 대상으로 동일한 설문조사를 하였다면 삶의 만족도는 어떨까? 10년 전보다는 낮아졌겠지만 OECD 평균보다는 높을 것이다. 젊은 40대 이하 의사는 어떠할까?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어느 복지부 과장은 기고에서 의사들이 불만족인 것은 상대적 박탈감이 높은 연유라 하였다. 국세청, 심평원이 해마다 발표하는 의원당 수입(물론 매출액이지만)과 청구액 등 통계는 속된 말로 기를 죽인다. 어디 의사만 박탈감을 느끼겠는가? 야경에 십자가만 보이고 산마다 사찰이 있으며 다양해진 채널에서 엔돌핀과 감성을 자극하는 개그, 음악, 먹방 프로그램이 만연하지만 왜 불행하다고 느끼며 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을까? 평소 궁금해 하던 것을 손봉호 교수의 강의를 듣고 무릎을 쳤다. 우리나라가 지원받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국가로 변모한데는 높은 교육열, 우수한 인적 자원 때문이다.

대학 수능입시 전에 철야기도, 만배(萬拜)공양에서 보듯이 국민 다수는 천당, 극락의 내세(來世)보다는 현실 중심(차세, 此世)의 세계관을 가졌기에 어떻게 해서든 현세(現世)에서 잘되고 잘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효경(孝經)에서도 효자란 입신양명(立身揚名)한 자식을 일컬으니 급제를 하려면 등수(等數)가 높아야한다. 1등만 알아주는 나라. 그래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인적 자원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착각한다.
 
한국이 미용, 성형 왕국이 된데는 `부끄러움의 문화'가 우월하기 때문이란다. 반대의 `죄의식의 문화'는 없기에 부패지수는 하위이다. 남이 보면 쓰레기를 치우고 보지 않으면 버린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쓰레기 없는 서울이었었다. 외모에 치중하니 신데렐라 드라마가 많고 의학도들 역시 황금만능주의를 쫓아 전공을 선택한다. 보루이던 내과마저 기피하니 누구를 탓하겠으며, 붕괴된 의료전달 체계로 개원가와 병원이 같은 환자를 두고 경쟁하는 가운데 중재해야할 정부나 의협, 병협의 역할은 미미하다. 팍팍해진 주머니와 개인주의 성향이 짙어져 의협 회비 수납율이 갈수록 낮아지고 의협 직원 퇴직금 적립금도 없기에 심히 우려스럽다.

돈으로 어려운 일을 해결하려는 생각은 외국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에서 소개하는 결혼식 축사 대필서비스는 들러리의 축사가 따뜻하고 재미있으면서 품위를 갖추어야 하기에 글쓰기 어려워하는 분을 위한 서비스이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사과(謝過)를 해야 하는데 마주보고 말하기는 영 껄끄러운 사람들을 위한 `대리 사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도 있었다.

IMF 이후 배금주의(拜金主義)가 만연하지만 과연 돈, 권력, 명예가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하는가? 선호하는 직장에 대한 설문 조사에서 월급은 생각보다 덜 중요하고 직장 동료와의 관계, 회사 분위기, 자기 성취감이 더 중요시 되었다.

의사는 `감성노동자'이기에 배려가 필요하다. 병의원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기에 화장실 급한 이, 목마른 이, 한서(寒暑)에 지친 이, 심지어 차나 커피를 탐하는 이가 스쳐간다. 어차피 서비스업이니 용인하더라도 “아직도 토요일에 근무하세요?”라는 환자의 놀라움과 지인들 끼리 농(弄)조로 “여행길 빈방이 없으면 병원에 입원해라” 라는 말에는 속이 상한다. 환자 앞에서 약을 처방하거나 검사를 할 때도 환자 얼굴을 보는 대신 모니터를 보면서 고시에 적합한지를 살피는 내가 한심하지만 현실이다.

메르스 사태 때 모 시장의 의사 매도 발언과 종합병원 앞에 붙었던 격려 플랭카드를 보면서 돈보다 격려, 위로가 더 중요하다고 느꼈고 가끔 듣는 환자의 “원장님 덕분에 이렇게 입원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말로 힘을 얻는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100세 시대, 수많은 질환의 대란을 우려하는 정부가 비록 의사들이 요구하는 수가만큼 인상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의사들이 마음 편하게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면 어떨까? 정책을 수립할 때 진정한 파트너로 여기고 함께 국민의 건강을 논의하고 건강보험 돈주머니를 걱정하면 어떨까? 신문을 포함한 미디어가 의료계와 상의하여 검증된 건강, 의학정보만을 알리며 국민과 의사의 라포(rapport)형성에 저해되는 기사나 보도는 자제하면 어떨까? 건강기능식품, 사이비 치료로 사용되는 돈이 건강보험으로 편입되어 하루에도 4개씩 폐업하는 의원의 숫자가 줄어들면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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