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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스포츠에 열광하는가?
우리는 왜 스포츠에 열광하는가?
  • 의사신문
  • 승인 2015.10.26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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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25〉

요즘 가을을 맞아 각종 스포츠 행사가 우리의 눈길을 끌고 있다. 올해를 마감하는 프로야구의 가을시리즈, 프로배구와 프로농구의 개막전에 한국축구의 월드컵 예선전이 화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 외국 팀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뛰어난 활약을 하면서 많은 사람이 유럽축구, 미국야구나 일본야구에 국내경기 못지않은 관심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 위성 TV에 스포츠 전문 채널이 11개나 있어 시청자 확보에 한창이다. 미국과 일본프로야구, 축구에서는 FIFA 월드컵, 프리미어리그(영국), 분데스리가(독일), 프리메라리가(스페인) 중계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다가 결국은 각자 하나씩 계약하여 우리 집 안방에서 세계 유수의 경기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인기 리그에서도 한국 선수들의 성적과 부상 여부에 따라 시청률이 급변하여 방송국 관계자가 노심초사하는 웃지 못할 사태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스포츠에 열광하는가?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내 생각에는 운동경기가 인간의 본성에 맞아 재미있기 때문이다. 원시시대에 모든 시간을 음식을 구하는데 보내던 선조들이 농사를 짓고 가축을 사육하면서, 식량 부족에서 해방되었고 여가를 갖게 되었다. 이 시간에 여러 문화와 함께 스포츠도 만들고 즐기게 되었다. 특히 스포츠는 체력에 지능을 함께 사용해서 사람의 진화 과정과 맞았고, 점차 이 둘의 고차원적 협력작동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경기 규칙과 내용이 발전하였다.

흔히들 운동경기는 인생살이와 비슷하다고 한다. 우리 삶에서 만나는 욕심, 역경, 성취, 기쁨, 슬픔 등이 경기 도중에 나타나고 전개되어 청중을 매혹한다. 이는 활동사진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와 비슷하다.

초창기에는 현장 기록인 다큐멘트 만 제작하다가, 가상적인 스토리를 도입하여 본격적인 영화를 만들면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규정에 맞추어 시합을 하면 본래의 실력과 그날의 운에 따라 여러 가지 줄거리가 만들어지고, 관중들은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스토리 전개에 매료된다.

따라서 경기 내용을 유추하면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초반의 성적이 경기 끝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야구 시합에서 어느 팀이나 세 번의 기회는 있고, 축구는 공이 둥글기 때문에 결과가 항상 실력대로 나오지는 않는다.

어떤 경우는 영웅적 선수가 있어 경기를 주도한다. 대부분의 패배는 사소한 수비 실책에서 시작된다.

운동경기에서는 현실에서 못하는 행동을 마음껏 할 수 있다. 야구에서 타자를 죽이고 축구나 배구에서는 상대방에게 공을 강타한다. 권투와 격투기는 인간의 전투적인 본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프로레슬러의 야만적인 행동과 언사가 인기를 더하여 준다. 일상에서 우리가 하기 힘든 또는 할 수 없는 언행을 경기자가 대신해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또 운동장의 열띤 분위기에서 같이 응원하면서 관중은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어버린다.

때로는 우리의 한을 풀어준다. 약체인 우리 야구팀이 뜻밖의 홈런으로 상황을 단숨에 반전시킨다. 아무리 점수 차이가 있어도 이론적으로는 9회말 3아웃까지 이길 기회가 있고, 드물지만 역전승이 일어난다. 추가시간에 믿기지 않는 골을 넣는 축구경기, 타임아웃과 함께 들어가는 농구의 역전 골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운동경기가 위안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상황이 어려울 때 관중은 경기에서 심리적 보상을 받고 대리만족을 얻어 더 인기가 많다. 1929년 대공황이 미국을 강타했을 때 프로야구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였고, 한국도 1997년 IMF 경제위기 시에 LPGA 박세리 선수가 국민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신기하게도 경기 규칙은 우리 신체 능력의 한계점을 이용한다. 야구에서 투구 공의 스피드와 타자의 반응 시간, 도루하는 선수의 스피드와 포수의 송구 능력, 수비수의 동작시간과 타자가 달리는 시간 같이 한계점에서 생기는 미소한 차이로 승패가 결정된다. 넓은 축구 운동장을 근접방어를 하면서 90분 내내 뛰어다니는 것도 극한상황이다. 이것을 누가 체력강화와 훈련으로 극복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아마도 운동 규칙을 만든 후 실전에서 많은 시행착오와 수정을 거치면서 이런 기준점을 찾았을 것이다.

방망이로 공을 멀리치는 사람, 그물망 안으로 공을 잘 던지거나, 잘 차는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우대를 받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스포츠 세계에서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스타이기에 인기 있는 것이다. 요즘 어린이의 꿈은 탁월한 프로 선수가 되어 명성과 부귀를 함께 얻는 것이다.

옛날에는 현명한 군주, 뛰어난 문인, 나라를 구한 장군이 위인이었으나 지금은 유명 선수가 `신세대의 영웅'이다.

지능과 체력을 겸비한 인류가 여유를 갖게 되자 스스로 창조한 산물이 스포츠이다. 재미를 느껴 즐기기도 하지만, 인생살이의 아픔을 위로 받고 대리 만족을 얻기도 한다.

누구는 편한 생활에 여가가 많아져서, 혹자는 힘든 삶에 꿈이 없어져서. 이런 상반된 까닭 이외에도 다른 많은 이유로 사람들은 더 열광하고 스포츠는 더욱 번성할 것이다.
 
* 필자가 좋아하는 야구를 예로 많이 들은 것을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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