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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의 동쪽 〈3〉
북촌의 동쪽 〈3〉
  • 의사신문
  • 승인 2015.06.0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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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 있는 정담 〈137〉

이집을 찾는 이와 지나는 이를 축복하듯 계단 세로 면에 새겨놓은 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로 만들라고 한다.
북촌에 갈 때 어디에 가면 무엇이 있고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면 어떤 것을 볼 수 있는지 미리 알아보고 찾아가려 하면 걷기가 지루해 집니다. 그저 걷다가  문득 어느 시멘트벽에 그려진 위트 있는 그림을 마주하면 빙긋이 한 번 웃고, 낡은 기와지붕 위에 올려놓은 오래된 자전거에 눈길이 가면 고개 한 번 갸웃거리면 그것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래도 아쉬우면 보름우물을 찾아가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고 회자되는 사랑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야기에 따르면 정조 8년 이 우물에서 물이 요동치며 넘쳐흘렀다고 합니다. 내막을 알아보니 천민인 망나니의 딸이 양반댁 도령을 사모하다 우물에 투신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어느 글은 조금 더 구체적인데 망나니의 딸이 병조판서댁 서자에게 반해 상사병을 앓다가, 그를 죽여 우물에 유기하고 자신도 뒤따라 투신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위해 원혼제를 올려주자 범람은 멈췄으나, 이후 우물물이 보름은 맑고 보름은 흐려 `보름우물'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애절한데 한편으론 섬뜩합니다.

 우리나라 천주교 최초의 외국인 사제였던 주문모 신부가 숨어 지내며 이 보름우물의 물로 비밀리에 교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그러나 지금 보름우물은 닫힌 채 초라한 모습입니다. 아직도 물이 솟아나는지 궁금합니다.
 별 생각 없이 걷다가 범상치 않은 대문을 만났습니다. 원파선생구거(圓坡先生舊居)와 인촌선생고거(仁村先生故居)라는 현판이 보입니다. 원파 김기중은 인촌 김성수의 백부이자 양부입니다. 원파는 아우 지산(芝山) 김경중과 함께 1909년 부안군 줄포에 현 줄포초등학교의 전신인 사립 영신학교를 설립했습니다. 후에 현재의 중앙고등학교의 전신인 중앙고보와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 인수에도 관여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경중의 아들로 태어나 큰아버지의 양자가 된 인촌 김성수는 중앙고보와 보성전문 외에 동아일보, 경성방직, 해동은행 등을 경영하며 일제강점기 교육, 언론, 기업과 은행 등을 경영했고 해방 후에는 제2대 부통령을 지냈습니다. 지산의 또 다른 아들이 기업인 김연수입니다.
 북촌에서 만나는 대문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나름의 멋이 풍깁니다. 대문에 걸려 있는 당호의 글씨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서예가들의 작품부터 이름 없는 촌부가 꾸밈도 멋도 부리지 않고 쓴 듯한 글씨까지 다양했지만 나름의 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어떤 대문은 화려하고 웅장합니다. 어떤 문은 소박하고 고졸하며 따뜻합니다. 때로는 함부로 다가서기 꺼려지는 위엄을 갖춘 문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느 말끔하게 단장된 한옥 대문 앞의 화강암 계단에서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봄날 마치 흰 나비가 날개를 팔랑거리며 날 듯, 그러나 지나치게 도드라지지 않게 새겨진 글귀를 보고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해졌습니다.

 일일시호일 (日日是好日). 단순히 생각하면 `날마다 좋은 날'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며 생각하니 이 집 주인의 `좋은 날'은 누가 나를 위해 마련해주는 그런 `좋은 날'이 아닙니다. 출근 했다가, 또는, 출타했다가 집에 돌아와 계단을 오르기 전 눈에 띄도록 계단의 세로 면에 `日日是好日'을 새겼습니다. 오늘도 `좋은 일' 해서 `좋은 날' 만들었는가. 주인은 집에 들어가며 스스로 그것을 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나는 이에게 넌지시 말합니다. 오늘 하루 좋은 날로 만들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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