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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용사 
역전의 용사 
  • 의사신문
  • 승인 2015.05.1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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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주변 〈171〉

   과거 고등학교 야구가 인기 있을 적에 군산 상고는 역전의 팀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9회 말 투아웃까지 지고 있다가 역전을 몇 번하고 붙여진 이름이다.

 금년 끝난 프로 농구는 모비스 팀이 우승했지만 4강에서 탈락한 전자랜드농구팀이 더 관심을 끌었다. 시즌 초반 최하위를 달리던 팀이 중반에 들어서면서 치고 올라와 6위로 마감하고 6강전에서 정규리그 3위를 한 S.K를 상대로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던 전문가들의 예측을 보기 좋게 무너뜨리고 3연승으로 4강에 진출했다. 4강전에서도 2위를 한 동부 팀에게 대등한 경기를 했다. 절대적으로 약세로 평가받았지만 승리를 위하여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여 전원 공격 전원 수비를 하며 상대팀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승리한 팀보다 농구팬들로부터 더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고 매스컴에서도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4강전에서 2승3패로 아쉽게 졌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아쉬움보다는 최선을 다했다는 안도감과 행복감이 엿보였다.

 병원에 10년 전 20세 청년이 정관수술을 받고자 방문했다. 당시 결혼하지 않고 정관수술을 받는 비혼(非婚)주의 청년들이 많아 그런 환자인 줄 알았다. 독신주의와 달리 비혼주의는 결혼하지 않고 성관계는 마음대로 하고자 하며 임신 등 책임지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사람을 말한다. 이 청년은 결혼을 하여 자녀 2명을 둔 아버지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여자 친구와 성관계후 임신을 했다. 양쪽 집안에서는 낙태를 하고 학업을 계속하기를 강요했다.

 이들은 가출하여 주유소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이를 낳고 키웠다. 10대에 아버지와 엄마가 된 것이다. 그리고 또 임신을 하게 되고 정관수술을 받으러 온 것이다.
 수술하면서 20살의 눈을 감고 있는 환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침착하고 평안하며 굳은 의지의 전사의 모습이었다.
 “아이가 크는 게 신기해요 태어날 아이와 큰 애를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지요. 아이를 잘 키우는 일 이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이지요.” 묻지도 않았는데 그는 말했다.

 택배 일을 하는데 한 달에 170만 원 정도 번다고 한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20살의 아내는 무엇이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얼마 전 오랜 만에 아들이 피부염이 생겨 병원에 들렀다. 10년 전보다 의젓한 모습이었다.
 요즘 30살이면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는 두 명 모두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의 학부형이 되어 있었다.
 그동안 택배 회사를 차리고 돈도 많이 벌었고 고등학교 검정고시도 합격하여 사이버 대학에 다니면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인생 역전이라는 느낌대신 위대한 스승을 만난 느낌이 들었다. 큰 산이 앞에 있는 것 같았다.
 3년 동안 꼴지를 했던 프로야구 한화이글스팀이 금년에는 역전의 팀으로 자리를 잡고 있어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대부분의 승리가 역전승이다. 수년간 이글스팀은 초반에 점수를 주면 지레 주눅이 들어 게임을 포기하고 패배하고 말았지만 지금은 끝까지 물고 늘어져 기어이 역전을 하고 마는 팀이 되어 팬들도 9회 말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다. 순위도 꼴찌가 아닌 상위권으로 발돋움 하고 있다. 이 팀을 지휘하고 있는 감독은 다른 팀 감독 보다 20살 정도 위인 74세의 김성근 감독이다. 노감독의 눈매는 포기를 모르는 솔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솔개는 40년이 되면 자신의 부리를 바위에 부러뜨리고 자신의 털을 다 뽑아버린다. 그러면 새 부리와 새 날개를 얻은 후 새로운 40년을 산다.

 몇 년 전에 55세의 남자 환자가 내원했었다. 얼굴에는 그 동안 험하게 살아왔다고 쓰여 있었다. 말하는 것과 행동도 그랬다. “내 ○○이 썩어가고 있는데 잘 해줄 수 있소?”
 20년 전에 성기에 바셀린을 집어넣었던 것이 문제가 생겼다. 30년 이상을 도박판에서 돈놀이를 한 일명 `꽁지'라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돈을 갚지 않으면 사람들을 보내 받아오고 술과 여자로 인생이 찌들대로 찌든 사람이다. 성기만이 아니라 마음도 인생도 썩어가고 있는 사람이다. 

 수술하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지나가는 말로 인생의 후반전을 새롭게 살 것을 권유했던 것 같다. 최근에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면서 병원에 들렀다. 얼굴에는 어둠대신 빛이 있었고 기쁨과 평화와 겸손이 느껴졌다. 90도로 깍듯이 인사하며 `꽁지'일을 청산하고 쓰레기 치우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주 먼 옛날 생각이 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초등학교와 중학교시절 나는 무던히도 문제아였던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을 가려할 때 담임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너를 안 보게 되니 이제 살 것 같다.” 꼴통이고 문제아라는 꼬리표는 중학교까지 계속되었다. 생활지도부에 끌려가서 매 맞고 정학을 받기 일쑤였다.

 주위 선생님이나 아이들 심지어 집에서까지 나는 희망이 없는 두통거리일 뿐이었다.
 남은 인생은 낡은 털을 뽑고 새롭게 살아보고 싶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역전의 인생을 보냈다는 소리를 자녀들에게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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