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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 오페라 〈팔스타프〉
베르디 오페라 〈팔스타프〉
  • 의사신문
  • 승인 2015.05.1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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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309〉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장난일 뿐

 베르디는 평생 26편의 오페라를 작곡하면서도 희극은 〈왕국의 하루〉 한 편뿐이었다. 그가 쓴 오페라들은 하나같이 비극이었다. 팔십 노인이었던 그는 마지막 작품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장난일 뿐”이라는 대사로 끝맺는 또 하나의 희극 오페라 〈팔스타프〉를 쓰게 된다.

 1871년 카이로에서 〈아이다〉를 초연한 베르디는 오페라에서 손을 뗄 결심을 하고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러다 평소 셰익스피어를 가장 이상적인 극작가로 믿어온 그는 1887년 〈오텔로〉를 작곡했다. 〈오텔로〉를 본 사람들은 말년의 베르디가 다시 한 번 기적적인 오페라를 써 줄 것을 바랬다. 라 스칼라 극장은 이번엔 희극이 되기를 원했고 베르디에게 `돈키호테'를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농장의 전원적인 생활을 원했던 베르디는 작곡을 거절했다. 이때 대본가 보이토가 〈팔스타프〉의 대본 줄거리를 보내왔고 이를 읽는 순간 베르디는 매혹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희극 오페라의 적절한 대본을 찾은 것이었다. 대본을 읽고 난 베르디가 “나는 훌륭하다는 소리만을 연발할 수밖에 없소”라고 편지를 보내자 보이토는 즉시 대본에 착수했다. 곧바로 작곡에 들어간 베르디도 처음 몇 달 동안은 〈팔스타프〉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쳤다. 출판사 사장 리코르디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베르디는 아무런 계획이 없이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작곡한다는 말만을 했다. 작곡하던 중 제자이자 헌신적인 친구였던 에마뉴엘 무치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슬픔에 잠겨 작곡을 중단했다가 마침내 1892년 9월 〈팔스타프〉를 완성한다.

베르디는 마지막 원고를 리코르디에게 보내면서 `팔스타프'에게 보내는 작별인사를 적어 보낸다. “모든 것은 끝났다. 잘 가게, 정든 존. 언제까지 자네의 길을 가게. 장난스러운 악당이여, 때와 장소가 바뀔 때마다 쓰는 가면 밑에서 영원히 진실이기를 바라는 네 길을 가게, 안녕히.”
 〈팔스타프〉는 내용뿐만 아니라 음악에서도 베르디의 이전 작품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극일색의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스타일로 쓴 희극으로 전통적인 이탈리아 오페라의 보수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등장인물도 이전처럼 주역과 조역으로 나눠지지 않는다. 모든 등장인물이 거의 같은 비중으로 배역을 맡고 있다. 아리아도 찾기 어렵고 몇 가지 아리오소와 독백만이 있을 뿐이다. 줄거리는 셰익스피어의 `윈저의 유쾌한 여인들'을 바탕으로 하고 팔스타프의 성격묘사는 `헨리4세'를 따랐다.

 △제1막 '양말대님'이라는 이름의 주막 늙고 술에 절은 뚱뚱보 기사 존 팔스타프는 두 통의 편지를 마무리 짓고 있다. 한 통은 포드 부인에게, 다른 한 통은 페이지 부인에게 보내려는 것. 재정이 불안한 팔스타프는 부자 남편을 둔 이 유부녀들과 연애를 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때 갑자기 프랑스인 의사 카유스가 들이닥치며 팔스타프의 하인들인 바르돌포와 피스톨라를 도둑으로 몰아 부친다. 하인들은 딱 잡아뗀다. 카유스를 물리친 다음 편지 심부름을 시키려하나 놀랍게도 두 하인은 명예를 들먹이며 거절한다. 그러자 시동에게 편지를 주어 보낸 후 한바탕 헛된 명예에 대한 자기견해를 밝히고 하인들을 내쫓아 버린다. 포드의 집 정원에서 편지를 받은 두 유부녀는 각기 팔스타프에게서 받은 편지를 서로 공개한다. 두 편지가 글자 한자 틀리지 않다니! 두 사람은 뚱뚱보에게 복수할 결심을 한다. 한편 쫓겨난 팔스타프의 하인들에게서 정보를 얻어들은 포드와 카유스, 펜튼도 팔스타프를 골탕 먹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 포드는 직접 팔스타프에게 가서 그의 계획을 탐지하기로 한다. 여자들은 그들대로 친구인 퀴클리 부인을 팔스타프에게 보내 데이트를 청하려 한다. 이 와중에 펜튼은 사랑하는 나네타를 그녀의 아버지인 포드 몰래 만나고 있다. 그러나 포드는 돈 많고 멍청한 카유스를 사윗감으로 정하고 있다.

△제2막 '양말대님'주막 팔스타프가 소식을 기다리며 술을 마시고 있다. 그 때 먼저 퀴클리 부인이 여자들의 소식을 가지고 온다. 남편이 없는 오후에 만나자는 것. 그녀가 나가자마자 이번에는 포드가 나타난다. 포드의 얼굴을 모르는 팔스타프는 폰타나라는 이름으로 자기소개를 한 이 낯선 사람이 술값을 선뜻 내어놓는 것만 반가워한다. 폰타나는 아름다운 포드 부인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녀를 손에 넣을 수 있는지 비결을 묻는다. 그까짓 것쯤이야 별 것도 아니라면서 팔스타프가 몸치장을 하러가자 폰타나로 가장한 포드는 분통을 터뜨리지만 곧 벌어질 복수전을 위하여 태연해 한다. 한편 포드의 집에서 여자들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다. 팔스타프는 나타나자마자 곧바로 포옹과 키스를 서두른다. 이때 퀴클리 부인이 나타나 포드가 습격하려 한다고 하자 피신할 곳을 찾다가 커다란 세탁물 바구니 속으로 들어간다. 여인들은 하인들을 시켜 세탁물 바구니 속에 든 것을 창밖 시내에 버린다.

△제3막 주막 앞 물에 빠져 죽을 뻔한 팔스타프가 앉아 있다. 한심한 생각도 들었지만 술은 곧 그에게 힘을 더해준다. 이때 퀴클리 부인이 또 다른 약속을 전하자 팔스타프는 신이 났다. 이번에는 한밤중 윈저 공원에서 사슴뿔이 달린 전설의 기사로 변장하고 만나자는 공동계략을 세웠다. 포드는 이 가장놀이 계획을 이용해 나네타와 카유스를 결혼시키려 하고 이를 역이용해 퀴클리 부인은 펜튼과 나네타에게 유리하도록 또 다른 계획을 짠다. 그날 밤 공원에 나타난 팔스타프는 포드 부인과 페이지 부인을 동시에 차지할 희망에 부푼다. 그러나 곧 뒤따라 나타난 변장한 요정들 때문에 물거품이 되고 곤욕을 한참 치르고 용서를 빌고 나서야 그것이 장난이었음을 팔스타프는 알게 된다. 포드 역시 여자들에게 속아 카유스를 사위로 맞는 대신 나네타와 펜튼의 사랑을 인정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모두 함께 노래를 부른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장난일 뿐.”

 ■들을만한 음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Columbia, 1958) - 티토 고비(팔스타프), 엘리사코프 슈바르츠코프(앨리스), 안나 모포(나네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80) - 주세페 타데이(팔스타프), 라리나 카베리반스카(앨리스), 크리스타 루드비히(나네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82) - 레나토 브루손(팔스타프), 카티아 리치렐리(앨리스), 바바라 핸드릭스(나네타), 레오 누치(포드),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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