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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연구자의 자질과 조건 〈상〉
훌륭한 연구자의 자질과 조건 〈상〉
  • 의사신문
  • 승인 2015.04.2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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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12〉

2008년 노벨 화학상은 녹색형광단백질(Green Fluorescent Protein, GFP)을 발견하고 체내 현상을 영상으로 볼 수 있게 만든 학자들에게 돌아갔다. 미국 매사추세츠 해양생물학 연구소의 시모무라 오사무 박사(80세), 뉴욕 콜롬비아대학의 말틴 챌피 교수(61세)와 UC 샌디에고대학의 로저 치엔 교수(56세)가 공동 수상한 것이다. 이 단백질을 시작으로 여러 광학, 핵의학, 영상의학이 개발되어 분자, 유전자 수준의 생체 변화를 실시간 영상화하여 멀지 않은 장래에 환자 진료에 유용하게 쓰일 전망이다.

 이를 분자영상법이라 하고 우리 과에서도 연구하는 분야이다. 암을 비롯한 대부분의 질병에서 유전자의 이상이 먼저 생기고, 진행하면서 세포와 장기에 대사와 기능 변화가 뒤따른다. 나중에는 눈으로도 보이는 병소가 나타난다. 지금까지는 병소의 형태를 CT, 초음파와 MRI로, 기능과 대사를 SPECT나 PET로 촬영하여 찾아내고 있다. 그러나 가장 먼저 생기는 분자 유전자 이상을 영상화해야 근본적인 진단과 치료가 가능한 것이다. 이 분자유전자영상 개발에 GFP가 유용하다.

 오사무 박사는 1945년 8월 나가사키시 중심부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고등학생으로 근교에 있었다. 부상은 안 당했으나 방사능에 피폭된 오사무는 암울한 상황에서 해파리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초록빛을 우연히 보고, 그 기전을 꾸준히 연구해 1962년 녹색형광단백질(GFP)을 찾아내었다. 1995년에는 챌피 교수가 GFP 유전자를 대장균에서 발현시켜 각종 분자 현상을 영상으로 측정하는 길을 열었다. 치엔 교수는 GFP의 핵심 아미노산을 바꾸어 200여 종의 새로운 형광단백을 만들었다. 초록색 이외에도 빨강, 노란색 등 각종 무지개 색을 방출하는 다양한 변이종을 만들어 연구에 활용하고 있다.

 이 노벨 수상자들이 내 전공과 관계있고 동갑인 치엔 교수와는 여러 번 학술대회에서 만나기도 했다. 평범한 연구자인 나는 이들의 어떤 능력이 찬란한 연구 업적을 만들었는지 무척 궁금하였다. 탁월한 지적 능력 때문일까, 좋은 연구 환경 때문일까? 그동안 알려진 사실을 바탕으로 훌륭하고 성공적인 연구자가 되는 자질과 조건을 나름대로 분석하겠다.

 세 분 모두 우연한 기회에 이런 획기적인 연구에 관여하게 된다. 당시에는 그 가치를 예측하기 어려워 일종의 행운인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준비되어 있었다. 이런 행운의 씨앗이 바람같이 들어와 꽃이 피고 결실이 맺힐 여건이 마련되어 있었다. 치엔과 챌피는 각각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때에 이미 화학실험 기구를 집안에 설치해 사용하였다. 오사무 박사는 이차세계대전 후 극심한 물자부족 와중에서도 대학원생이 되자 지도교수의 허락으로 집에 작은 실험실을 갖춘다. 이렇게 하여 화학과 과학에 대한 타고난 관심과 소질이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특히 이들 모두 신기로운 금속의 발색 반응에 매료되어 나중에 다양한 빛을 내는 형광물질의 개발과 이용에 남다른 집착을 보인다.

 모든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은 자신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을 여러 경험에서 습득하게 된다. 치엔은 청소년 과학경진대회에서 우승을 하여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자신감을 갖게 되고 챌피는 고등학교 과학위원회에서 맹활약한다. 패전 후 일본에서 절박한 환경에 있던 오사무는 과학실험을 통해서 자기 존재의 가치를 찾았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자긍심의 밑바탕에는 공통적으로 가족의 무한한 사랑이 있었다. 오사무는 어릴 때부터 만주에 있는 부모와 떨어져 할머니하고 같이 살았다. 할머니는 정성을 다해 아이를 돌보았다. 원자폭탄 투여 후 생긴 버섯구름으로 며칠 동안 검은 비가 내렸다. 방사능 낙진이 섞인 비에 흠뻑 젖은 오사무를 할머니는 바로 목욕시키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혔다. 결과적으로 방사능 오염을 철저하게 제거시켜 오사무가 살아난 이유가 되었다.

 대학교 입학식 때 궁핍한 상황에서 할머니는 누에를 기르고 길쌈을 매어 직접 비단옷을 만들어 입혔다고 한다. 치엔은 엑손석유회사에 다니던 아버지가 지하실에 초등학생 아들을 위해 화학 실험실을 만들어 주었다. 챌피는 어려서 아버지에게 클래식 기타를 배우고 평생 같이 즐기면서 따뜻한 부자의 정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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