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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신문 창간 55주년 기념수필 - 원격 진료를 하다니요?
의사신문 창간 55주년 기념수필 - 원격 진료를 하다니요?
  • 의사신문
  • 승인 2015.04.1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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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서울시의사회 고문, 전 서울시의사회 감사, 의협 대의원)

“원격 의료, 의사·환자 전자기기 노예로 만들 것”

“청진기와 타진기도 없이 진찰하는가. 학생은?”
 내과 병동 실습 때 입원 환자를 진찰해 보라며 곁에서 지도하던 교수님은 “학생은 의사가 될 기본이 되어 있지 않아!”라고도 했다.
 옆구리가 결리며 기침을 간간히 하던 20대 여자 환자에게 진찰 후 진단을 내려 보라는 지시에 동료의 청진기를 집어 들자, 주위 스텝과 전공의 선배들에게 “의사가 되겠다는 의대생 교육을 어떻게 시킨거냐!”라며 질책이 쏟아졌다.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는데 교수님 교육은 점입가경 철저하셨다. “`아담스' 진단학을 펼쳐 봐! 진단의 기본이 뭐라고 되어 있는가?”


그 환자는 그 당시 흔했던 `결핵성 늑막염'으로 의사가 직접 체크해야 하는 폐호흡음의 부위 별 청진 소견과 폐장 상하 좌우에 고인 늑막액 여부의 타진음 성상이 진단의 결정적 요소였다.
 “의사가 배운 대로 정확하고 기본적인 진찰만 하였다면 이 환자는 이렇게 고생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또 합병증의 위험으로부터 일찍 구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며 감기 정도로 단순 진찰하여 생긴 의사의 무지를 질타하셨다. `진단의 기본이 무엇인가' 라는 사실을 의대생인 우리들과 전공의들에게 철저히 일깨워 주셨던 것이다. 그 후 45년을 의사로서 지나면서 그 때의 진찰 자세가 의사직의 생명이라 여기며, 그 가르침이 뼈 속 깊이 박혀 있다.

 “이젠 폐업해야 할 것 같아!”
 신설 대단위 아파트 단지 대로변에 30년 넘게 나와 같이 개원 한 정형외과 전문 선배가 점식을 먹던 중 퉁명스레 말했다. S의대를 졸업, 석·박사까지 취득하고 교수생활을 하다가 개원하여 그 동안 수많은 환자의 고통을 치유, 지역의 명의로 소문난 분이었기에 뜬금없이 폐업이라니 난 황당했다.
 “의료사고가 생겼다네…! 지난 목요일에 우측 고관절부위 통증으로 온 35세 여자 환자였는데 진찰 후나, X선 촬영 상이나 특이 병변 사인이 없었기에 `바이러스 건초염'으로 진단하고 소염제 정도 처방하였지. 토요일 퇴근 무렵 다시 내원하였는데 증상도 완화되었고 진찰 상 호전되었기에 그대로 처방하고 경과를 보자고 하였는데 그 환자가 일요일 고열이 나서 대학병원 응급실을 통해 입원… 글쎄 `패혈증'으로 그 날 밤 사망했다지 않은가.”

 환자의 남편은 “왜 바로 대학병원으로 전원 시키지 않았느냐. 당신의 부주의로 죽었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며 소송하겠다고 진료실을 떠들썩해 놓고 갔다는 것이다. 우울한 표정으로 일그러진 선배의사의 설명을 들으며 “이건 아닌데…, 정말 이건 아니야…”하며 덩달아 황당해 하며 흥분했었는데 다음 날 말한 것대로 폐업계를 내 버리고 은퇴하셨다. 의술로는 최고의 경지까지 도달한 경륜이 백지가 된 것이다.
 “두통 때문에 갔는데, 머리 CT 촬영, MRA, 경동맥 초음파를 검사하라고 하는데 이것 어떡하면 되우?” 한동안 소식이 없던 친척 여동생으로부터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나는 “인근 내과에서 진찰받고 처방약 복용해보고 그래도 호전 안 될 때나 가보지, 뭘 머리 좀 아프다고 큰 병원을 갔냐?” 매정하듯 쏴 부쳤다. 대학 졸업 후 기업체에 스카우트 된 재원이었기에 더 화가 났다.

 두통, 복통 등 단순 증상일 지라도 오진과 드문 악성, 만성질환을 배제하려면 첨단기기로 검사를 하게 된다. 종합병원 의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고 검사결과가 정상이라면 환자나 병원 측 양쪽 다 좋다. 단지 비싼 비 보험 진료비만 쓴 셈이다.

의료보험제도는 병원 문턱을 낮게 했지만 너무 낮은 의료행위 수가로 병원 운영이 힘들어져 있다. 마땅히 대형 병원 형편은 투자된 첨단기기의 원가 보상을 어디선가 보상해야 한다. 왜 `환자의 병원 선택권'을 이렇게 후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있으나 한편 우려스럽다, 한정된 의료보험 재정 때문에 결국 종합병원급 운영은 비 보험 검사의 양과 비례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여보! 지금 무의촌으로 파견되면 영순위 주택 청약도 소용 없어요!”
 내가 전공의 2년차 때 였다. 6개월간 무의촌 파견 진료 제도 때문에 밀양 산외면 보건지소로 떠나야 할 때, 아내가 걱정했었다. 그러나 그 때, 그 곳에서 지난 세월은 군의관 다음으로 자연에 파묻힌 시골의사 생활이었다. 그리고 전국의 무의촌에 발병한 환자들을 젊은 전공의들이 직접 진찰 처치 수술까지 하는 공공의료의 한 축이었다. 의사가 직접 진료를 담당해야 했던 원칙, 그것은 환자나 의사에게 필수고 난 그 때의 기억이 지금도 소중스럽다.
 `원격진료'를 시범적으로 해 본다고 한다.

 원래 오·벽지나 외딴 섬 거주자가 갑자기 아플 때 인근 보건지소로 이송, 혈압 혈당 심전도등을 병원급 인터넷 망으로 전송, 의사와 화상(畵像) 진료 처치한다며 생각해 낸 첨단 의료시스템 이용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요즈음은 도심지 내에서도 환자와 병원간 인터넷 망 진료로 대체하고 팔목에 찬 스마트폰을 이용한 첨단 바이오 데이터 의료, 가히 진료 환경의 대 변혁이다. 의사들의 진료 행태가 근본부터 흔들리는 것 같아 착잡하고 격세지감이 든다.

동대문 시장을 둘러보면 일상에 필요한 상품들이 치수와 용도별로 거의 다 비치되어 있다. 사려고만 하면 무엇이던 바로 살 수 있다. 더욱이 인터넷 쇼핑 몰이나 TV 홈쇼핑은 클릭 한 번에 순간적으로 구매할 수 있다.

 상품의 용도와 위험도는 구글에 잘 정리되어 있어 전문가의 의견을 받을 필요도 없다. 같은 상품이라도 그 종류가 엄청나게 팽창되어 커피 브랜드만 수백 가지가 된다지 않은가. 의료도 이렇듯 진행한다니 미래 의학은 어떻게 될 것인지, `초코렛 한 점 먹어 보았으면…' 하던 6.25 시절에 비하면 상상할 수 없는 시대에 나는 살고 있다.
 세월의 에너지 탓인가, 인간의 경쟁은 이미 신의 작업까지 도전하고 있다. 봄 볕 아래 움 튼 개나리를 보면 자연의 순리는 수천 년이 지나도 어김이 없다. 선배의사의 경륜도 숨겨진 인체의 면역 허약성으로 오진의 늪에 빠져 의사 직을 포기해 버렸는데, 진단학의 기본마저 무시하고 오묘한 인체를 전자기기의 데이터에 맞춰 표준화 시켰을 때 오진의 폐해는 어쩔 셈인가. 이에 따라 원격진료가 된다면 의사나 환자 모두 전자기기의 노예가 될 것이다.

 상상속의 로봇 인간이 현실로 다가 서고, 줄기세포를 이용한 바이오 약제들이 난매되고, 머지않아 생체 복제로 필수 장기를 이식할 것이다. 로봇화로 메모리칩의 진료가 될런지도 모른다. `아담스' 진단학 교과서, 수 없이 진료 치유해 왔던 선배의사의 진료행태도 이제 아날로그 역사로 남게 될 것이다. `과연 미래의학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한 시대를 살아 왔던 난 두렵기까지 하다.

 원격으로 진료를 한다구요?
 사라진 `코닥' 필름처럼, 로봇수술이 확장되는 것을 보면, 바이오산업과 전자의학의 발전은 이제 빅데이터 속으로 잠겨 버릴 시기가 멀지 않은 것 같다.
 의사신문 창간 5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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