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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도 생각 해야지요<24>
나이도 생각 해야지요<24>
  • 의사신문
  • 승인 2009.09.0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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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초 여름휴가를 이용해 교회 수련회에 주치의로 참가하게 되었다. 집회와 예배 시간 틈틈이 원고도 쓰고 책도 읽으려고 노트북과 책, 비상 의약품까지 트렁크를 가득 채워 떠난 것이다. 올 여름은 소나기도 자주 쏟아지고 태양빛도 뜨거워서 가까운 양평이지만 마치 동남아시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련회 둘째 날 오전 집회를 마치고 낮 시간에 운동회가 열리게 되었다. 초등학교 학생에서 어른들까지 모두 섞여서 3팀으로 나누어서 치르는 운동 경기로 종목은 피구, 발야구, 이어달리기, 줄다리기였다. 뜨겁고 덥기는 했지만 내 나이의 여자가 참가하면 한 종목당 10점 추가점을 준다고 해 점수라도 벌어주자는 마음과 주변의 열렬한 추천으로 4종목 모두 참가하게 되었다.

피구는 그래도 중간 정도까지 살아남아서 평균은 했고, 발야구에서는 날아오는 공을 가슴으로 받아서 뜨거운 환호를 받았지만 받는 순간 어깨와 가슴에 화끈한 충격과 통증을 느꼈다. 줄다리기에서는 팔로만 하면 안 되고 다리로 버티면서 온 몸을 다해 잡아당겨야 한다는 지시에 따라 얼굴이 벌개 질 정도로 열심히 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이어 달리기에서 질풍같이 달려오는 어떤 청년의 몸과 부딪치면서 넘어졌다. 순간적으로 앞이 캄캄해지면서 우측 늑골의 통증 때문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무튼 간신히 일어나서 다음 주자에게 연결은 해 주었지만 우리 팀은 한 바퀴가 늦어져서 종합 순위 꼴찌를 하게 되었다. 졸지에 수련회 주치의가 부상자가 되어 위로와 사랑을 받았지만 나로 인해 꼴찌를 해서 미안했고 아쉬운 마음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늑골의 통증이 심해지고 잊혀졌던 온몸의 근육이 한꺼번에 아파오는 것이었다. 평소 운동이라고는 공원이나 런닝 머신에서 걷거나 가끔 골프 친 것 밖에 없었으니 무리를 한 것이다.

나머지 하루는 누워서 뒤척이기도 어려울 정도로 끙끙 앓았으며 겨우 예배만 참석했을 뿐 꺼내보지도 못한 노트북과 책들을 갖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진료실을 떠나서 환자를 안 보면 굉장히 뭔가를 많이 할 것 같았는데 결국 밥 세끼 찾아 먹다 보면 금방 하루가 지나는 것이다. 그래도 3일간 환자 안 보고 컴퓨터와 책도 안 읽고 잡다한 생각도 안하고, 머리 아래 근육과 관절만을 움직여서인지 평소 혹사당했던 눈이 맑아지고 목의 뻣뻣함과 어깨 통증도 덜해진 것 같았다. 그 이후 3주가 지난 지금까지 재채기나 기침을 하면 통증이 있는 부위를 손으로 누르고 있어야 했다. 늑골 사진을 찍어 볼까 하다가 혹시 골절이 있다 해도 특별한 방법이 없다 하니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고 있다.

내 말을 들은 친지들은 모두 내 나이에 달리기가 가당치 않다고 그 정도로 끝난 것을 감사해야 한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나 자신도 스스로의 체력을 과대평가한 것은 확실했다. 운동을 할 때 느낀 것인데 마음은 이미 저만큼 앞서고 있는데 다리나 팔이 내 의지를 따라주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때 달리기를 잘하고 배구도 잘 했던 내 이미지를 버릴 수가 없었다.

1년 동안 체력 단련을 잘해서 내년 운동회에 다시 선수로 뛰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요즘 밥도 많이 먹고 틈나는 대로 운동을 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나이를 생각해야 한다고 겁을 주니 내년에는 앞뒤 가리면서 좀 살살 뛰어야겠다. 벌써 전력을 다해서 해야 하는 모든 일들의 조절이 필요한 나이인가 보다.

김숙희<관악구의사회장ㆍ김숙희산부인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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