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따라 하지 않기
의사 따라 하지 않기
  • 의사신문
  • 승인 2015.02.1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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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8〉

 


 *독자 여러분, 설날 연휴에 잘 쉬셨지요. 혹시 과식이나 과음은 안 하셨는지요? 우리 건강은 우리가 지킵시다.

 일전에 W대학의 교수가 직업별 평균수명을 조사한 적이 있다. 종교인과 정치인, 교수 등이 장수 직업군인 반면 언론인, 체육인, 문화인 등은 단명(短命)하는 직업군이었다. 뜻밖에도 의사의 수명이 우리 국민의 평균 수명보다 짧아 언론에서 대서특필했다. 나에게는 놀랍지 않은 결과였다. 우리 병원 건강진단센터의 통계에서도 의대 교수의 암 발병률이 일반 검진자보다 3배나 높았기 때문이다.

 왜 이러한 결과가 나올까? 의료 전문가인 의사가 자기 건강에 대해서는 소홀한 것일까? 짐작하다시피 다른 원인이 있다. 우선, 의사들은 어느 누구보다 심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생활 자체가 과도한 업무의 연속인데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쉴 때도 중환자실이나 병실 환자 걱정이 머리 한구석에 남아 있고, 수련을 마친 전문의도 밤이나 주말에 수시로 불려나간다. 외과 의사인 경우 응급수술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어 항상 긴장된 상태에서 집도한다.

 근본적으로, 의료라는 환경 자체가 종사자의 건강에는 나쁘다. 이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사람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진료에서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의사도 신이 아닌 이상 할 수 있고, 실수하게 마련이다.
 당위와 현실 사이의 간극, 이것을 메꾸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다 보면 자연히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사소한 환자의 상태 변화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확인해야 한다. 수시로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고 응급상황이기 터지기 때문에 항상 마음이 조급하다. 점점 소심해지고 내성적이 되어 간다. 이런 유형은 특히 심혈관질환에 가장 해로운 성격이다.

 직업에서 생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또한 마땅치 않다. 대개는 술과 담배에 기대게 된다. 건강에 나쁘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쉽게 헤어나지 못한다. 운동으로 해소하는 사람도 있지만 골프가 고작이다. 음악, 미술 같은 예술로 승화시키는 경우도 많다. 의과대학마다 오케스트라가 있고, 문화계 인사와 어울리는 의료인도 적지 않다. 수필을 쓰는 의사 모임이 몇 개나 있는데, 그중에는 50년 이상 계속되는 모임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의사들이 이러한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술과 담배가 특별히 해가 되는 질병을 전문으로 진료하는 의사일수록 과음을 하고 담배를 끊지 못한다. 간 전문가가 주당이고, 폐암 권위자가 애연가인 역설적인 경우이다. 나는 일종의 항공포(anti-phobia)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심리적으로 건강에 나쁘다는 것을 부정하는 한편 본인은 예외적인 존재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의사가 아프면 진료과정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아주 좋은 환자가 되거나 아주 고약한 환자가 된다. 주로 후자인 경우가 많다. 복잡한 진단과 치료법 중에서 가능하면 편하고 빠른 길을 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VIP 증후군도 한 몫을 한다. 병이란 대개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생기기 때문에 후배 의사가 진료하게 된다. 보수적인 의료계에서는 선배 환자와 의견이 다르면 주관을 가지고 진료하기가 쉽지 않다. 환자 뜻에 따라 꼭 필요한 진단과 치료과정을 생략했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는 의사의 인간관계, 사회생활도 병의 치료에 나쁘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의료인은 항상 베푸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병원이라는 온실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비정한 세상사를 이해하고 견디는 힘이 약하다. 막상 환자가 되고 나면 겪게 되는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또 많은 의사들이 환자에게 따뜻한 정을 주지 않는다. 암이나 뇌졸중 같이 중환자를 다루는 의사는 더 냉정하다. 환자와 따뜻한 정을 주고 받다가 눈앞에서 악화되어 사망에 이르는 모습을 보면 마음에 큰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기 방어인 셈이다. 그러나 환자나 보호자는 이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섭섭한 감정을 가지기 일쑤다. 아무튼 다른 사람과의 소통과 감정 교류가 원활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물론, 의료인이 병에 걸렸을 때 장점도 있다. 우선, 질병의 정확한 경과나 예후를 알고 있으므로 소통이 잘 되고 쉽게 협조를 얻을 수 있다. 예방책이 있다면 제대로 적용할 수가 있다. 설혹 의료진의 실수가 있어도 쉽게 용납한다. 따라서 여느 환자보다 편하게 진료하고 환자의 협조 속에 새로운 치료법을 적용하기도 쉽다. 때때로 이러한 시도가 성공하여 극적인 효과를 보기도 한다.

 의사도 평범한 인간이다. 단지 직업상 사람을 치료하고 생명을 다루는 지고한 업무를 수행할 뿐이다. 보통 사람이 성(聖)스러운 일을 하다보니 스트레스로 자기 건강을 해치기도 하는 불쌍한 전문가다. 의사가 아닌 사람들과 어울릴 때 우리는 먼저 이렇게 양해를 구한다.

 “의사 선생님의 말만 따라 하세요.  행동을 쫓아서 하지는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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