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4:15 (금)
(임원진 칼럼) 전공의 주당 근로시간 80시간 상한제에 대한 단상
(임원진 칼럼) 전공의 주당 근로시간 80시간 상한제에 대한 단상
  • 의사신문
  • 승인 2015.02.02 13: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 문 배(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

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
2013년도 전공의 근로시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주당 80시간 이상 일하는 전공의들이 50%가 넘어 이전의 설문조사 결과와 비교할 때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그동안 실제 근로시간에 대한 개선은 없었던 것으로 분석되었다.

 1984년 미국에 한 병원에서 리비지온이라는 여대생이 과중한 연속 근무를 하던 의료진의 실수로 사망하였고, 그 부모가 주정부를 상대로 살인적인 근로환경을 방치한 것에 대해 의료사고의 원인을 제공하였다며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03년도에 미국 ACGME(전공의 수련평가 위원회)에서는 전공의들이 주당 80시간 이하로만 근무하도록 근로시간을 제한하는 법령을 제정하였다. 이런 미국의 사례에서 보면 근로시간 단축의 의미는 단순히 업무의 양이 줄어든다는 사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더 크게는 환자의 안전 및 진료의 질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는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왔다.

 대한민국의 전공의 제도에서도 `근로시간 제한'이라는 부분은 그동안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를 비롯하여 다양한 기관과 단체에서 그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그리고, 대한병원협회는 대전협 등 각계의 의견을 바탕으로 2009년도에 최초로 `전공의 표준 수련지침'을 제정하였다.
 하지만 지침에 대한 강제성이 반영되지 않아 실제로는 유명무실한 지침으로 전락하였다. 이후 2012년 하반기부터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유관단체들이 모여 전공의 수련환경 모니터링 평가단 회의를 진행하였고, 2013년 상반기에 회의 결과를 토대로 주당 최대 근로시간 80시간(최대 88시간)으로 제한하는 방안이 공표되었다.

 그렇다면, 현재 주당 80시간 상한제는 현재 잘 지켜지고 있는가? 얼마 전 의학전문지에서 정부와 대전협에서 전국 수련병원의 수련환경 모니터링을 실시했으나 서로 눈치만 보고 아직 발표하지 않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분명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기에 그 결과가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므로 조심스러운 눈치이다. 일각에서 전공의들은 가짜 당직표를 만들어 놓을 뿐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수련병원에서 80시간으로 제한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현재 100시간 이상을 근로하고 있는 전공의의 업무를 대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당 근로시간 80시간 상한제에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부분은 “80시간으로 제한하니까 80시간을 넘으면 안된다“는 한계기준을 만든 것이지 80시간을 채워서 일하라는 뜻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저년차의 업무를 고년차가 대신 맡아서 하는 것으로서 80시간 상한제를 끼워 맞추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도 아니며 잘못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근로시간의 단축은 수련교육의 질적 향상과 맞물려져야 한다. 연차별로 업무를 돌려막는 것이 아니라 선행적으로 수련교육목표에 맞는 수련과정의 내실화를 통하여 연차별 적정수련이 구축되어야 한다. 따라서, 근로시간 상한제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수련교육과정의 정비를 통하여 연차별 적정수련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의사 대체인력을 통하여 전공의 업무 공백을 해소해야 할 것이다.

 의사 대체인력의 고용은 크게 전공의 업무 공백을 해소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현재 포화되어 있는 개원가 및 봉직 시장에 새로운 고용창출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실제로 수련병원에 봉직의사를 고용함으로써 입원전담전문의(외국에서 말하는 hospitalist의 개념)로서의 역할을 해주면 환자의 입장에서도 전문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결국 전공의 수련제도 개선 뿐만 아니라 고용창출과 질높은 의료서비스 제공이라는 서로 win-win이 될 수 있는 제도인 것이다.

 사실 의료법 시행규칙 제 38조를 보면 병원급과 의원급 동일하게 `연평균 1일 입원 환자 수를 20으로 나눈 수' 및 `외래 환자 3명은 입원 환자 1명으로 환산함.'으로 의사인력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즉, 의료기관에서는 적절한 의사인력을 고용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수련병원들의 경우 전공의라는 값싼 노동력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며, 그동안 의사인력기준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루어진 적은 없으므로 제시되는 기준도, 시행 유무도 확인하지는 못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의료기관에 의사의 인력기준을 두는 이유는 병상 또는 환자 수에 따라서 진료하는 의사 인력의 기준을 정하여 환자에게 보다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현재 병원의사인력 구조가 왜곡되어 있고, 병원의 대형화에 따른 의료공급체계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노동 강도의 증가, 병원 진료의 정체 현상, 파행 근무 및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병상별 의사인력실태조사를 통하여 그 문제점을 파악하고, 병상이 급증한 상급종합병원의 의사 정원 기준을 규정에 맞게 상향 조정해야 한다.

 또한, 환자 수에 따른 획일화된 인력 기준을 벗어나 흉부외과, 비뇨기과, 외과 및 산부인과 등 1차 의료에서 점차 감소하고 있는 전문 과목의 인력을 확보하고, 의사 인력 유지 관리에 대한 법적 강제력을 높이는 등의 강화된 병원의사 인력 기준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의사인력기준의 도입을 통하여 수련병원에 입원전담전문의의 고용을 확대하고, 적절한 보상이 보장된다면, 전공의 제도는 보다 교육적인 목표를 가지고 적절한 근로시간 속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PA와 같은 진료보조인력의 활용은 전공의의 진료 외 업무를 감소시켜주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전공의 근로시간의 근본적인 해결은 진료보조인력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대체인력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전공의의 과중한 업무의 핵심은 잡일이 아니라 의사 고유의 업무가 많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PA(진료보조인력)에 의한 불법 의료행위 들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며, 특히나 전공의 수련교육을 저해하는 일로서 크나큰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어 실제로는 불법 행위에 대한 감시와 규제가 더욱더 필요한 실정이다.

 마지막으로, 전공의 주당 근로시간 80시간 상한제는 근로시간을 제한하여 그 기준을 만들었다는 데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이제 첫걸음일 뿐 많은 보완점들이 필요하다. 단계적인 보완을 통해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되어야 하는 것이 큰 과제이다.
 분명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지만 시대의 흐름과 함께 정부와 병원 이기주의적인 생각은 철저하게 깨져야 함이 선행되어야 하겠다. 대한민국 의료계의 꿈나무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그리고 고통스런 현재에 힘겨워하고 있다.

 가정교육을 잘 받아야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커갈 수 있는 것처럼 아낌없는 지원과 사랑으로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가 올바로 커갈 수 있게 정부도, 병원도, 동료 의사들도 책임을 가지고, 그 역할을 다하였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