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회복을 위한 의료윤리_맹광호 가톨릭의대 명예교수
신뢰회복을 위한 의료윤리_맹광호 가톨릭의대 명예교수
  • 의사신문
  • 승인 2014.12.0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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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광호 <가톨릭의대 명예교수, 예방의학>

맹광호 가톨릭의대 명예교수
의료윤리 핵심, 환자에 대한 인간적 연민과 관심

얼마 전 `시사저널'이라는 잡지에서, 우리나라 33개 직종 가운데 국민들로부터 가장 신뢰를 받는 직업을 조사해서 발표한 일이 있는데 1위가 소방관이고, 2위가 간호사, 3위가 환경미화원, 그리고 의사가 5위에 올라있었다.

역시 업무상 희생과 봉사 정신이 필요한 직업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조사대상 직업 중 가장 낮은 신뢰도를 보인 것은 정치인이었다.

물론 해당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똑같은 신뢰를 받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자신들에게 주어진 업무에 충실한 사람을 더 신뢰하게 마련이고, 이런 경우 그들로부터 받는 직접 또는 간접적인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가령 의사에 대한 신뢰와 그들로부터 받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를 본 다른 조사 결과를 보면, 환자가 평소 매우 신뢰하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은 사람의 67.3%가 자신이 받은 진료에 대해 만족했다고 대답한 반면, 별로 신뢰감이 안가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은 경우는 단 28.3% 만이 자신이 받은 진료에 대해 만족했다고 했다.

놀라운 사실은, 의사에 대한 환자들의 신뢰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이 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일들이라는 점이다. 즉, 의사가 자신의 질병 상태에 대해 얼마나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는지,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서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고 있는지 정도로 신뢰 여부를 판단하고 있었다.

앞의 조사에서, 진료 의사가 제대로 설명을 해 주지 않는 경우 그 의사의 진료에 대한 만족도가 41.8%인 것에 비해 설명을 충분히 해 준 경우 65.9%의 높은 만족도를 보였으며, 의사와의 상담시간이 부족했다고 생각하는 환자들의 45.3% 정도가 만족했다고 한 반면 의사가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서 진료를 해 주었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68.5%의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결국, 환자는 주로 자신에 대한 의사의 관심 정도를 가지고 그 의사에 대한 신뢰여부를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의학교육 역사 기록으로 남아있는 1917년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들의 주간(週間) 시간표에 보면, 놀랍게도 그 때 모든 학년의 학생들이 매일 첫 시간에 `수신(修身)'이라는 과목을 수강하고 있었다.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예의를 갖춰 환자들을 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도록 자신을 닦는 인성교육이 중심 내용이었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윤리도덕 교육이 해방이후, `과학주의'를 표방한 미국 의학교육의 도입과 함께 의과대학 시간표에서 사라졌다. 그만큼 의과대학생들이 배워야 하는 과학적 지식과 기술의 분량이 많아진 때문이다.


의사의 환자에 대한 관심 여부가 서비스 만족도·신뢰 결정
과학 기술에 의존한 `탈 인간화 현상' 끊임없는 반성 필요


의과대학에서 윤리교육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 된 것은 미국의 경우 1970년대,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의학기술이 피임이나 낙태 등 인간생명의 문제에 개입하게 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윤리문제에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였지만, 그에 못지않게 질병 진단 및 치료 과정에 있어서 지나치게 과학적 기술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환자에 대한 인간적 이해에 소홀하게 되는 소위 탈(脫) 인간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에 대한 반성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몸이나 마음의 고통을 가지고 의사를 찾아오는 환자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관심은 의사들이 갖추어야 할 의료윤리의 핵심이다. 지금 전 세계 모든 나라 의과대학들이 의료윤리를 포함한 다양한 인문학 분야 교과목을 개설하고 학생 때부터 이 분야 소양을 키워주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을 통한 이런 노력에도 불고하고, 오늘날 우리의 진료현장 상황은 의사들에 대한 환자들로부터의 신뢰도를 높이는데 거의 긍정적이지 못하다. 점점 짧아지는 진료시간, 환자들과 눈을 맞추는 대신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의사들의 진료행태는 환자들의 불만을 키우고 있고 이것은 결국 의사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진료현장에서 거의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런 현상에 대한 철저한 점검과 이에 대해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는다면 의사-환자 사이의 신뢰문제는 앞으로 더욱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의사-환자 사이의 신뢰는 의료윤리의 핵심이고 이는 굳이 강의나 실습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런 관계윤리는 매일 매일 계속되는 자신의 진료활동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통해서 `학습'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의과대학이나 전공의 교육과정에서의 의료윤리교육은 바로 평생 의사로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이런 학습을 내재화하도록 하는 훈련인 것이다.

의료윤리야 말로 지금 점점 소원해지고 있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를 개선하고 위기에 처한 의사들의 직업적 만족과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게 하는 `희망'인 것이다.

맹광호 <가톨릭의대 명예교수, 예방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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