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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 최상, 최종<22>
최선, 최상, 최종<22>
  • 의사신문
  • 승인 2009.08.1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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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미쳤다고 하고 미쳤기 때문에 지뢰밭을 걷고 있다는 의사가 있다. 고려의대 이비인후과 교수로 20여년 재직하고 두경부외과를 개원한 최종욱 원장 이야기이다.

필자가 전임의를 마치고 대학병원을 떠난 직후 그가 대학에 들어갔기 때문에 직접 알지는 못했으며 굉장히 유능하지만 약간은 괴팍한 교수라는 정도로 그에 대해 듣고 있었다. 그런데 데리고 있던 전공의의 자살로 인해 대학을 떠나 필자가 있는 관악구에 개원했고, 구의사회 모임에서 인사를 나누게 되었으며 개원도 성공했다는 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그 이후 지난 3년간 의협 상임이사를 하면서 이비인후과개원의협의회 회장인 그를 만날 때마다 선후배로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했다. 또 임상보험학회나 라이온스클럽 모임, 의사수필가 모임인 박달회 동인으로 자주 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고, 관악구 의사회장에 출마하면서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최근에 고인(高仁)라이온스클럽 회장을 맡게 되면서 물심양면의 지원까지 받았으니 참으로 깊은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인연을 떠나 그의 지난날들을 담담하게 기록한 수필집 `지뢰밭을 걷는 의사'를 읽고 그의 면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시골에서 자라면서 겪은 가난한 유년기와 두피의 흉터로 인한 외모의 열등감을 극복하는 성장과정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적은 글들, 새벽을 깨우는 우유 배달 아줌마의 발소리를 듣기 위해 알러지가 있는 우유를 마시는 마음이며, 처음으로 주례를 맡았을 때 주례에 대한 책을 세 권이나 읽고 연습했다는 것, 대학에 교수로 들어가서 24시간을 연구와 진료에 매진한 외과 의사로서의 투철한 사명감과 열의, 자신이 진찰하고 수술한 환자들이 사망하면 꼭 문상을 간다거나 향 값이라도 보낸다는 내용, 의료사고에 대처했던 정성과 진심어린 행동들, 개원 후에도 매일 6시에 출근해 직접 수술 환자의 수액을 달아 주고 환의를 덥혀놓는 것, 환자들의 개인 물품들을 집에 갖고 가서 깨끗이 세탁해 갖고 오는 것, 수술한 환자들에게 24시간 휴대전화를 개방하는 것 등 그가 열심히 살아온 삶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는 자녀들과 남한산성에 올라가 산골짜기 하나씩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 유산 상속을 끝냈다고 한다. 사기당할 염려도 없고 상속세나 재산세를 낼 필요도 없는 재산이라고 자녀들도 즐겁게 받았다고 한다. 개원에 성공해 수입이 많은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가 주변에 베풀고 지출하는 돈은 내가 생각해도 걱정이 될 정도이다. 필자도 여러 모임에서 그가 내는 저녁을 몇 번이나 얻어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본인은 항상 단벌옷을 입는 것 같고 언제나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다. 부자보다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마음에 맞아서 가난한 동네에 개원했다는 그는 항상 감사하다는 말이 몸에 배어 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사고 위험이 높고 힘들다는 생각으로 분만을 포기하고 외래 환자만 진료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반성의 기회도 되었고, 의사로서도 환자의 입장에서도 이렇게 훌륭한 선배의사가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관악구의사회장을 맡게 되었을 때 그는 내게 `현명한 바보'가 되라고 하였으며 그 말을 잊지 않고 마음에 담고 있다.

그는 책 말미에 진정한 의료의 본질이란 `최초, 최고, 최대'가 아닌 `최선, 최상, 최종'에 있다고 하였으며 의사의 꿈은 소박할수록 아름답다고 하였다. 지뢰밭을 옥토로 만들고 싶은 젊은 의사들은 그의 수필집을 꼭 읽었으면 한다.

김숙희<관악구의사회장ㆍ김숙희산부인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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