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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슈베르트 피아노삼중주 제2번, Eb 장조 D.929, 작품번호 100
프란츠 슈베르트 피아노삼중주 제2번, Eb 장조 D.929, 작품번호 100
  • 의사신문
  • 승인 2014.06.0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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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268〉

■죽음을 목전에 둔 슈베르트의 비장함과 체념이 농도 짙게 투영되어

슈베르트의 피아노삼중주 제2번은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완성된 작품으로 여러 후기작품에서 풍기는 불안감을 느낄 수 있는데 그는 그 해에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를 썼고 이듬해인 1828년에는 〈백조의 노래〉를 썼다. 이 만년의 시기는 슈베르트가 자신이 꼭 쓰고 싶은 곡만을 썼던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 피아노삼중주곡은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정열이 대담한 노래가 되어 흘러넘치고 있다.

슈베르트는 생애 마지막 해인 1828년 일생 처음으로 열린 연주회에서 오직 본인의 작품들만을 선보이게 되었는데, 슈베르트 자신이 피아노 연주를 맡아 초연하게 된다. 이 음악회에서 대표작으로 내놓을 정도로 슈베르트는 이 작품을 마음에 들어 했고 연주회에서도 대단한 호평을 얻었다. 슈베르트는 연주회 후에도 이 작품을 적극적으로 출판 교섭에 나섰고 라이프치히의 출판사 프로스트에서 출판하게 된다. 이로서 슈베르트는 비로소 대중적 명성과 경제적인 소득을 얻게 된다. 그의 작품이 빈을 벗어나 국외에서 출판되기는 이 작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제 막 작곡가로서 성공하려는 순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그해 가을 31세의 나이에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다.

작곡가 슈만은 이 작품을 가리켜 `세계 음악계에 혜성같이 나타난 작품'이라 극찬하였다. 슈베르트가 처음 작곡한 실내악 작품은 그의 초기작품에 `소나타'라고 이름을 붙인, 한 악장으로 된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B플랫 장조였다. 그 후 가곡들과 현악사중주에 주로 관심을 보였던 슈베르트는 말년에 이르러 만나게 된 실내악을 같이 연주하던 친구들 덕분에 피아노삼중주에 다시 흥미를 갖게 되어 두 곡의 피아노삼중주 걸작과 야상곡을 탄생시킨다. 그 중 이 작품은 악장들 간에 긴밀한 연관성을 느낄 수 있는 걸작이다. 특히 제2악장은 죽음을 예감하고 있는 슈베르트의 체념이 농도 짙게 투영되어 듣는 이의 가슴을 세차게 흔든다.

슈베르트는 독특한 작곡가였다. 그에게선 언제나 끊임없이 샘물처럼 멜로디가 흘러나왔고 단숨에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로 작곡을 했다. 길을 걸으면서도 끊임없이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슈베르트 작품들의 가장 큰 특징은 아름다운 멜로디다. 그러나 슈베르트의 작품들은 엄격한 형식이나 구조와는 좀 거리가 있다. 형식적으로는 좀 느슨하지만 아름다운 선율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그의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아있다. 또한 슈베르트의 음악은 서민적이고 평범한 빈 사람들이 가진 `빈 기질'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스탠리 큐브릭의 1975년 영화 〈배리 린든〉은 18세기 중엽을 배경으로, 사기도박을 일삼으며 상류사회를 기웃거리던 아일랜드 출신의 한 청년이 아름다운 여백작과 결혼해 꿈을 이루는 듯 보이지만 결국 몰락하고 내용을 그리고 있다. 린든 여백작과 처음 마주 앉은 배리가 촛불 조명 속에서 도박을 벌이는 장면에서 슈베르트의 피아노삼중주 제2번의 제2악장이 잔잔히 흐르고 있다. 별도의 조명장치 없이 촬영한 것으로 유명한 이 장면에서 이 피아노삼중주는 그 신비스러운 효과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제1악장 Allegro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하이든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대담한 화성진행의 음형으로 시작하여 만화경처럼 반복되는 주제는 슈베르트의 눈부신 음악적 기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활기찬 코다는 부드럽게 시작했다가 다채로운 형식으로 발전한 후 놀랍게도 즉흥곡과 유사한 음형을 사용하고 있다. 제2주제의 리듬을 부드럽게 메아리치면서 끝을 맺는다

△제2악장 Andante con moto 스웨덴 민요 `해가 진다'에서 따온 악상으로 우수에 젖은 첼로의 선율과 긴장감이 느껴지는 피아노의 잔잔한 반주는 고독감과 함께 진한 감동이 밀려온다. 마치 31세의 짧은 생애를 목전에 둔 슈베르트의 우울한 비장함이 한껏 녹아있는 듯하다. △제3악장 Scherzando 풍부하게 펼쳐지는 캐논 풍의 명랑한 선율은 하이든에게 유쾌하게 경의를 표하고 있는 듯하다. △제4악장 Allegro moderato 순환 형식을 사용하여 제2악장의 첼로 주제를 절제된 기법으로 노래한 후 서서히 열정적이고 극적인 태도로 제시하면서 막을 내린다.

■들을만한 음반: 아르투르 루빈스타인(피아노), 헨릭 쉐링(바이올린), 피에르 푸르니에(첼로)(RCA, 1976); 보자르 트리오(Philips, 2001); 반더러 트리오(Harmonia mundi, 2008); 부슈 트리오(EMI, 1935)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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