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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동구
선운사 동구
  • 의사신문
  • 승인 2014.05.1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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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 있는 정담 〈115〉
미당이 찾아갔다가 시 한 수를 남기게 된 선운사 뒷산의 동백숲.

이튿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천천히 걸어서 선운사를 지나 도솔암과 그 위쪽의 낙조대까지 다녀오면 4시간쯤 소요됩니다. 그런데 민박집 노부부가 함께 나서며 본의 아니게 차로 도솔암까지 올랐습니다. 이른 아침인데다 비까지 조금씩 떨어져 걷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포장되지 않은 산길이지만 먼지도 날리지 않아 걷는 이들에게 미안함은 덜했습니다.

이 길은 걷기에 좋은 길입니다. 봄이 깊어지기 시작해 단풍이 질 때까지 길가엔 시냇물이 흐르고 위로는 나무 그늘이 서늘함을 더해줄 것입니다. 걷다가 장사송이라는 이름을 가진 멋진 자태의 소나무를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것이며 진흥굴에 얽힌 이야기의 여운이 가실 때쯤이면 이윽고 도솔암에 이르게 됩니다.

산비탈을 다듬어 자리를 잡은 도솔암은 꽤 큰 암자입니다. 아침 일찍 그 고즈넉함에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집니다.

암벽을 다듬어 조성한 마애불상은 천년 가까운 풍상을 겪으며 찾아오는 이들의 염원을 듣고 있습니다. 이 마애불상과 함께 이 암벽에 있었다는 동불암은 세월의 풍상을 이기지 못하고 다만 나무기둥의 흔적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마애불 옆의 동백꽃을 지나 몇 걸음 걸으면 마애불 암벽 위쪽에 있는 또 다른 암자로 올라가는 돌계단 입구가 있습니다. 소박한 문 위쪽에 도솔천내원궁이라는 현판이 보입니다. 천상의 세계 중에서도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다는 내원궁을 향해 천천히 삼백예순다섯 계단을 올랐습니다. 마애불 뒤쪽에 또 다른 작은 암자가 보입니다. 이내 인기척이 예불에 방해가 될듯해 되돌아 내려왔습니다. 조용한 산사의 아침 예불소리만 굽이칩니다. 이 길로 쉬엄쉬엄 올라 낙조대에서 서해의 아침 바다를 바라보며 참으로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선운사로 내려오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선운사는 큰 절입니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마당을 가로질러 절이 기대어 있는 산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거기 동백 숲이 울창하고 꽃이 한창이었습니다. 미당이 보고 싶어 찾아왔던 선운사 동백꽃입니다. 울타리가 있어 가까이 다가서지는 못하고 그저 먼발치서 그 무성한 기운을 받았습니다. 어느 결에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다시 숙소로 내려와 간단히 아침을 먹고 선운사 입구로 올라갔습니다.

선운사 입구엔 주차장이 광대하고 각종 식당과 숙박시설과 지역 특산품 홍보관 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도우미 상시대기중이라는 술집 간판을 보며 절집 아래까지 와서 저리 질펀하게 놀아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특히 초서를 잘썼다는 서예가 취운 선생의 초서박물관을 보고는 생태공원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이 생태공원은 아직 조금 더 나이가 들어야 생태공원 다운 모습을 갖출 듯합니다. 그 때가 되면 나무와 풀이 잘 어울리게 자라 멋진 풍경이 펼쳐질 것입니다. 이곳의 동백, 매화, 목련이 그 소박함으로 봄을 알리면 곧이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찾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합니다. 꽃무릇 잎이 생태공원을 비롯해 선운사 일대를 초록으로 덮고 있습니다. 잎이 흙으로 돌아가면 9월말쯤 붉은 꽃이 비단처럼 펼쳐집니다.

역시 이 선운사 일대를 지배하는 꽃은 4월의 동백꽃과 9월의 상사화입니다. 한 여름의 초록빛 숲길과 10월의 붉은 단풍 역시 꼭 기억에 담아 두고 싶은 모습입니다. 한나절을 보냈지만 여전히 이곳을 나서기엔 미련이 남습니다. 이제 미당의 고향을 찾아갑니다.

오근식 <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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