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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동백꽃
선운사 동백꽃
  • 의사신문
  • 승인 2014.05.0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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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 있는 정담 〈114〉

소가 잘 먹는 식물이라 남부지방에서는 소밥이라고도 하는 송악. 선운사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이 씩씩한 송악은 천연기념물 제367호로 지정되어 있다.
3월 말 이미 남쪽 바다 근처의 동백은 다 졌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몇 해 전 강진에서 영랑생가와 다산이 머물렀던 사의재를 들러 다산초당에 갔다가 마지막에 들렀던 곳이 백련사였는데 산 중턱을 가득 메운 동백은 이미 진지 오래였고, 그나마 땅에 떨어진 꽃송이들도 흙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철 늦은 꽃 몇 송이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올 봄에도 살기 바빠 또 동백꽃 철을 놓쳤습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고창의 선운사였습니다.

철이 지났기는 했지만 이제 막 자라나는 풀잎 위에 떨어진 꽃송이라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미당은 동백꽃을 보러 선운사에 갔다가 아직 일러 보지 못하고 시를 한 수 남겼습니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
작년 껏만 상기도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디다.


고창을 두루 보려면 하루 일정으로는 부족합니다. 선운사 일대의 산과 암자 한 두 곳 보고 미당 생가와 기념관을 보고 나면 그 앞의 안현마을 벽화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고인돌 유적지가 있으니 여기도 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삼월 말 동백꽃 필 때 한 번 이곳에 가면 6월 복분자 익을 때의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구월 선운사 일대를 가득 메울 상사화의 모습도 한 번쯤은 보아야 할 장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상사화가 지고 난 뒤 절정에 이른다는 선운산 단풍은 또 어떤 모습일지 보고 싶어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오후 늦게 고창에 도착해 선운사를 찾아갔습니다. 온 나라 미식가들이 추천하는 고창의 풍천장어 식당들을 못 본체 지나 미리 전화로 연락해 둔 작은 펜션에 짐을 풀었습니다. 은퇴한 노부부가 아래층 방 두 개를 여행객들에게 빌려주고 있는 곳인데 펜션이라기보다는 민박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는 곳입니다.

노부부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길을 나섰습니다. 선운사까지는 5분 거리이고 아직은 해가 지기 전이니 말하자면 탐색 나들이입니다. 이 넓은 주차장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넓은 주차장으로 들어서 왼쪽의 물가를 찾았습니다. 거기 징검다리가 있고 그 너머에 우람한 송악이 바위벽을 온통 뒤덮고 있습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이 송악은 줄기 둘레 80 센티미터 높이가 15 미터로 내륙에 자생하는 송악 중에 가장 크다고 합니다. 이곳이 사철 푸른 덩굴나무인 송악이 자랄 수 있는 내륙의 북방한계선이라는 설명도 읽을 수 있습니다. 종기, 고혈압 등 여러 질환에 민간요법의 약재로 사용되었다는데 이렇게 자라기까지 용케도 수백 년의 긴 세월을 견뎌냈습니다.

미당이 내려올 때마다 묵었다는 동백장여관은 동백호텔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아직 철이 이르고 금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근처엔 인적이 없습니다. 식당과 술집에 불이 하나씩 켜지고 노점 상인들은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초서 전시관과 기념품 상점은 이미 불이 꺼진지 오래입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서둘러 선운사 동백꽃과 저 위쪽의 도솔암을 보고 내려와 새로 조성되고 있는 생태숲을 볼 생각입니다.

오근식 <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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