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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문화원과 고양향교, 최영 장군 묘를 품은 대자산
중남미문화원과 고양향교, 최영 장군 묘를 품은 대자산
  • 의사신문
  • 승인 2014.04.2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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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 있는 정담 〈113〉

묘역 위쪽에 부친인 최원직의 묘가 있고 아래에 최영 장군의 묘가 있다. 1975년 경기도 기념물 제23호로 지정돼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으며 묘역은 고려시대 보편적인 사각무덤 양식으로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중남미문화원을 찾아가 주차장에 도착해 보면 고양 향교가 먼저 보입니다. 향교에 대한 호기심에 다가가 보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그제야 고개를 돌려 찾아보면 본래의 목적지인 중남미문화원이 그 오른쪽에 있습니다.

향교는 조선시대 교육에 중추적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교육기능은 거의 사라지고 유교 선현들에 대한 제사 기능만 남아 있습니다.

그저 문화유적 또는 사적으로만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그나마 전국 어디를 가든 향교의 문은 늘 굳게 닫혀 있습니다. 문틈으로 또는 담 너머로 보이는 딴 세상일 뿐입니다.

향교 문이 활짝 열리고 이웃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중남미문화원에서 나와 고양향교를 살피다 보면 담장 옆으로 최영 장군 묘로 가는 작은 안내판이 있습니다. 아직 잘 다듬어진 길이 아니라 다만 향교 담벼락을 따라 그 뒷동산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잠시 걷다보니 향교 뒤쪽에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는 안내문구가 보입니다. 역시 향교는 그냥 기와지붕이 근사한 곳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며 산책로를 따라갑니다. 이 야트막한 흙산이 대자산입니다.

돌이 거의 보이지 않는 산이다 보니 향교 뒤쪽으로 여기 저기 밭이 보입니다. 이것저것 심고 가꾸는 흔적입니다. 대자산을 걷는 산책로 조성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서 몇 년 지나면 걷기 좋은 길이 또 하나 생길 것입니다. 산길이 그리 가파르거나 험하지 않고 순한데다 나무까지 무성하니 이런 길이라면 얼마든지 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양 향교에서 대자산을 올라 최영 장군 묘까지는 1Km가 조금 넘는 거리입니다. 고양 향교에서 산 능선까지 잠깐 걸어 올라가면 거기서부터는 밋밋한 산길이 이어집니다. 산 숲길에는 곳곳에 길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어서 길 찾아가기도 쉽습니다. 아름드리 굴참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 건강한 숲입니다. 아직은 나뭇잎이 자라나지 않은 때여서 숲 속 시원한 나무그늘은 없지만, 햇빛이 흙에 온기를 불어 넣고 있으니 곧 숲은 푸르게 바뀔 것입니다.

참 후덕한 산이라는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길은 아래로 향합니다. 산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만나는 조금 경사가 있는 길, 그 아래에 기와를 얹은 야트막한 담이 보이는 곳에 최영 장군 묘가 있습니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최영(崔瑩, 1316∼1388)은 고려의 마지막 버팀목이었습니다. 그가 쓰러지면서 고려도 무너졌습니다. 어쩌면 그도 고려 왕조를 지키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원나라가 무너지고 명나라가 흥하던 혼란기에 고려는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정치적으로 생각이 달랐던 사람들에 의해 최후를 맞으며 최영은 평생에 있어서 탐욕이 있었다면 자신의 무덤에 풀이 자랄 것이고 결백하다면 무덤에 풀이 자라지 않을 것이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의 말대로 최영 장군의 무덤에는 내내 풀이 자라지 않다가 1976년부터 풀이 돋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대를 이어 사람들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후덕한 산이 최영을 품고 있습니다. 그 후덕한 산길을 걷는 동안 편안함과 나른한 행복이 밀려들었습니다.

오근식 <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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