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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곳에서 보는 먼 나라 풍경 - 중남미문화원 〈2〉
가까운 곳에서 보는 먼 나라 풍경 - 중남미문화원 〈2〉
  • 의사신문
  • 승인 2014.04.07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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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 있는 정담 〈112〉

도자벽화: 길이23m, 높이5m의 도자벽화는 멕시코와 중미지역의 아즈테카(AZTECA)와 마야(MAYA) 문명의 상징인 아즈텍 제사년력(祭祀年曆)과 기호, 상형문자와 벽화, 피라미드 속의 생활풍속이 담긴 유물, 그리고 남미 안데스의 잉카문명을 기초로 제작되었다.
중남미문화원은 박물관, 미술관, 종교관, 야외조각공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 들어오면 대부분 온전히 중남미의 이국적 분위기에 몰입하게 됩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이곳이 야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앞 쪽에 도자벽화와 항아리벽 그리고 또 신비하게 보이는 상징을 주제로 한 벽 등 3개의 커다란 벽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외부세계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어디든 낮선 표정의 크고 작은 인물상이 배치되어 있어 이들을 살피느라 바깥세상을 바라볼 겨를이 없습니다.

맨 위에 있는 따꼬하우스에서 따꼬와 커피로 점심을 마치고 문화원의 맨 끝에 자리 잡은 도자벽화〈사진〉를 찾아갔습니다. 멀리서 보면 갈색과 흰색의 커다란 문양이 하나의 추상화입니다. 이 벽화 중심부에 보이는 커다란 두 개의 원은 아스텍의 태양력입니다.

가까이 다가서니 이 벽화를 구성하고 있는 타일마다 가면과 사람과 짐승 그리고 갖가지 기학적 문양들이 가득합니다. 아득히 먼 그 시절의 사람들은 저 그림 하나하나에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한 때 존재했다가 사라진 알 수 없는 흔적입니다.

돌아 나오면 오른 편에 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땅 모양을 살려 언덕 여기저기에 중남미 12개 나라 작가의 현대 조각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작품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 맛일 일품입니다. 어느 작품은 난해하고 어느 작품은 애잔하며 또 어떤 작품은 입가에 잔잔한 웃음을 주기도 합니다. 산책로 여기저기에 벤치가 많으니 아무 때고 앉아 실컷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조각공원을 뒤쪽에서부터 입구 쪽으로 걸어 내려와 돌아서서 다시 한 번 바라봅니다. 많은 작품들이 일제히 배웅을 하는 듯합니다. 조각공원 밖에도 여전히 많은 인물 조각상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지나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물상들의 얼굴 모습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게 보입니다.

먼 옛날 한 조상의 피를 나누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조각공원 입구 근처에 항아리 벽이 있습니다. 다양한 모양의 옹기가 벽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멕시코 북서부 지역에서 제작된 각종 항아리 52개를 소재로 칠레의 한 조각가가 디자인해 세웠다고 합니다. 사람 사는데 필요한 물건은 지구 반대편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종교 전시관 내부는 엄숙한 아름다움이 극에 달해서 발걸음이 조심스럽고 숨소리도 작아집니다. 특히 앞쪽의 주제단은 크지 않아도 장엄해서 선뜻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도 없는데 마치 지금 미사가 진행되고 있고 뒤에서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시관이라고는 하지만 완벽한 성당입니다.

종교관을 나와 보니 벌써 두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미술관과 박물관까지 마음먹고 보려면 두 시간으로는 빠듯할 듯한데 여전히 눈은 벤치 옆에 혹은 잔디밭 가장자리에 자리한 인물상들을 바라봅니다.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만으로도 충분히 흡족한 곳입니다.

박물관과 미술관에 마련되어 있는 많은 이야기를 상상하며 박물관으로 들어섭니다. 박물관 한쪽 벽에 온갖 가면이 가득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서 볼 수 없는 먼 세상에서 오래 전에 살던 사람들의 흔적을 더듬으며 차츰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의 일을 다시 까맣게 잊었습니다.

미술관과 그곳에 마련된 기념품점도 돌아보아야 하고 문화원 밖의 고양향교와 그 옆을 돌아 산길을 걸어야 찾아갈 수 있는 최영 장군 묘는 오늘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이 박물관의 예사롭지 않은 전시품들이 더 중요하게 보입니다. 여기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 있는 낡은 절구까지도.

오근식 <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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