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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산악회, 2014년 명성산 시산제
서울시의사산악회, 2014년 명성산 시산제
  • 의사신문
  • 승인 2014.03.0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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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민관 <서울시의사산악회 총무>

시산제 전경.
노민관 서울시의사산악회 총무
네차례 답사한 첫 산행…`새 집행부 성원'에 감사

해마다 절 한 번 하고 음복주 한 잔 마시면, 그것으로 무사 산행을 약속받았다는 흐믓함에 기분 좋았던 시산제!

올해는 명성산에서 시산제를 올리기로 이미 작년부터 계획되어 있었다. 다른 산악회보다 회원수가 많고 규모도 커, 서울시의사산악회의 시산제는 제례도 제법 그럴싸하게 치르는 나름 원조 시산제라 할 수 있고 참여하는 재미도 쏠쏠한 터라, 매년 시산제마다 조상님 기일 참여하듯 빠짐없이 참석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산악회 총무로 시산제를 준비하고 행사를 주관하는 집행진의 일원으로 참여하려니 곁에서 보던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은…. 의미도 깊고 재밌기도 하고, 남들 보기에 별로 하는 것도 없이 속으로는 엄청 힘든 그런 시산제를 치뤘다 !

연재성 회장님은 이번 시산제를 준비하느라 답사를 네 번이나 다녀오셨다. 산정호수가 있고 가족들 단위의 행락객들이 많아, 음악소리와 놀이동산에서 들리는 소음으로 경건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는 시산제 장소를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운영난으로 문이 닫힌 산정호수 가족호텔 앞에서 시산제를 갖기로 결정하고 본격적인 시산제 준비를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하차후 사진촬영하고 자인사 쪽으로 걸어가다가 시산제 장소를 알려주고, 하산 후 다시 시산제 장소로 돌아오게 하는 약간은 중복된 동선이지만, 산행 전 준비 운동을 겸할 수 있고 하산 후엔 평지에서 다리도 풀면서 산정호수 둘레길도 만끽할 수 있어 회원들에게 소풍 분위기까지 선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산제에 쓰일 현수막과, 돼지머리와 떡을 포함한 제상부터 유인물과 지도, 그 동안 해보지 못한 사회까지 맡아야하니 애로사항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회원들을 위한 선물과 회비 입금과 명단 파악, 여행자 보험에 배차까지.

160명이 참여하는 산행이라 여간 긴장되는 것이 아니었다. 시산제가 임박한 3일 동안은 머릿속이 멍한 것이, 무엇 하나 빠뜨리면 모든 것이 도루묵이라, 진료를 하면서도 머리는 딴 생각을 하고 있어, 재차 증세를 물어보기도 하고 뭔가 고민에 빠져있는 것도 같아, 상당히 성의 있게 진료하는 줄 알고 흡족해하는 환자분들도 계신 듯했다.

막상 160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할 것으로 기대하고, 선물과 식당을 예약해놓았으나, 마감 전날까지 50명 정도 밖에 등록하지 않아 나름 고민에 빠져있을 즈음, 각 구 의사회에서 단체로 접수가 들어와 금방 예상 인원에 도달했다. 통계라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년간의 통계상 인원이 어찌 그렇게도 정확한지!

구의사회나 시의사회에서 같이 등록한 회원들은 별 문제가 없으나, 동반인을 지정해주지 않은 분들은 버스 안에서 무료할 수도 있을 듯하여, 동승을 원하는 분들을 알려달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약 먼저 하신 분, 송금부터 하신 분, 인원과 송금액이 일치되지 않다가 마지막 날에 모두 입금이 완료된 것을 확인하면서, “아! 대한민국 의사들 아직 살아있네!” 의사들의 양식에 흐믓한 마음이 들면서 재삼 동료의식과 함께 나 자신도 그 일원이라는 자존감마저 생겨 기분 좋은 오후를 보냈다.

시산제 당일! 밤새 눈이 내려, 날씨 걱정에 12시가 넘도록 회장님과 등반대장님은 계속 문자를 보내며, 미비점이 없는 지 잠도 못자게 해 약간 피곤한 느낌이다. 오늘은 사진을 찍겠다고 같이 동행하겠다며 새벽부터 부스럭거리는 집사람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다. 모처럼 푹 잘 수 있는 날인데.

집을 나서니 눈은 그쳤고, 산행하기 딱 알맞은 만큼만 쌓여있어 느낌이 좋다. 전철을 타고 압구정 현대백화점 주차장에 도착하니, 각 버스의 조장들이 이미 도착하여 선물과 김밥, 물 등을 이미 버스마다 옮겨 실어 놓았다. 나만 긴장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보다.

조장들이 저 정도면 총무인 나는 더 긴장해야 되나 싶어 살짝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여러 사람 덕분에 인생 편하게 살고 있다고 고마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버스가 출발하고, 나는 차 뒤편에 앉아 느긋하게 눈을 감았다.

명성산으로 가는 동안 내내 창밖은 눈 세상이다. 한참을 눈 쌓인 국도를 달려 명성산 주차장에 도착하니, 열흘 전에 답사 왔던 곳이 아닌 듯, 새하얀 광경이 아주 낯설다. 아차!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내가 총무지.

확성기를 찾아 사진촬영을 위해 회원들이 모이도록 목소리를 가다듬어 본다. “삐∼익, 아∼아, 애∼앵”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터라 확성기는 잡음만 내고 소리를 내지 못한다. 어찌어찌 사진촬영을 마치고, A팀은 자인사를 향하여 출발, 나는 B팀을 앞세우고 맨 뒤에서 등룡폭포까지만 올라갔다 내려올 셈으로 집사람과 함께 산행을 시작했다. 날씨는 쾌청, 쌓인 눈은 fresh! 어떤 회원 말대로 갓 구어낸 빵처럼 신선한 눈이다.

아직 발자국도 몇 없어 그야말로 신천지, 아니 눈천지에 내 발자국을 찍어가며 기분좋은 산행 시작! 집사람은 사진을 찍느라 좀체로 발걸음을 떼지 못해 이러다간 시산제 준비할 시간도 없겠다 싶어, 천천히 즐산 하라 하고 앞서 나갔다. 등룡폭포까지만 다녀오겠다고 마음먹었는데, 1시간을 더 가도 등룡폭포가 나오질 않는다. 저번 답사땐 자인사 쪽으로 해서 내려오다 보았던 터라 느낌이 달라서일까. 분명 초입에서 조금만 가면 나와야 하는데….

마음이 급하니 B팀 선두까지 추월하고, 능선까지 보일 즈음! 어! 억새군락지네! 이건 거의 정상부인데. 앗차! 폭포는 지난게 분명하다. 폭포는 못 보았으나, 어쩔 수 없이 하산해야 한다. 회원들보다 1시간은 먼저 도착해야 시산제 준비를 완료할 수 있다 싶어 오던 길을 뛰어 내려갔다.

B팀 후미와 인사를 하고, 늦게 홀로 도착한 채성돈 원장과도 조우하고 집사람은 또 즐산하라 남겨두고. 이젠 천천히 내려가도 되겠다 싶을 즈음, 동그란 얼음구멍이 보였다. 얼고, 눈에 덮여 폭포는 자취를 감추고, 폭포가 떨어져서 만들어진 소에 동그랗게 얼음구멍만 빼꼼 자취를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저러니 폭포를 보았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게로구나!

가족호텔 앞 시산제 자리에 도착하여 자리를 정돈하고, 시산제 현수막을 설치하고 상을 차리니 한 분 두 분씩 회원들이 시산제장에 도착하고. “지금부터 단기 4347년 서울시의사산악회 시산제를 시작하겠습니다 애∼앵”. 시산제 시작을 선포했으나, 제각기 자리잡은 회원들은 가운데로 모일 생각이 영 없으신 듯하다.

`묵념을 해야 하는데. 이런 상태로 해도 될까?' 머릿속은 복잡하나 묵념 때문에 가운데로 모여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군대에서처럼 기준 잡고 헤쳐모이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에라 모르겠다! 순국선열과 유명을 달리한 산악인들에 대한 묵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자리가 정돈되진 못했지만, 일단 못먹어도 Go다!” 그런데, 어라! 10초간 머리 숙여 묵념을 하고나니 다들 자세가 확연히 다르다. 무언가 고민이 있을 땐 산위에 올라 꿍따리샤바라 주문을 외우듯, 그냥 눈감고 10초만 지나면 많은 부분 해결이 될 것 같은 믿음이 생길 정도로, 이후로 시산제는 봄날 눈녹듯 모든 회원들의 협조와 성원 속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등반대장의 선창으로 노산 이은상님의 산악인의 선서를 제창하면서 시산제 분위기는 더욱 경건해진다. 드디어 강신! 박홍구 고문님이 명성산 산신을 청해 부르시고, 연재성 회장님은 바닥에 머리가 닿도록 절한 상태로 술잔을 올리고, 참신, 초헌이 끝나고 독축! 서윤석 고문님께서 명성산 산신께 제문을 올렸다. 아헌, 종헌이 끝나고 헌작! 궂이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앞으로 나오셔서 봉투를 내미시고 같이 머리숙여 절하시는 원로 선배님들, 각 구의사회 회원님들, 경기도 일원의 의사회 회원님들, 그리고 시산제에 참석한 모든 분들게 이 자리를 빌어 큰 절이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제문을 불태우고, 떡과 제상에 올린 음식들로 골고루 음복하였으니, 이제 올 한 해 산신님들의 축복으로 우리 회원들은 안전산행과 한해의 강건한 기운을 얻어 앞으로 다가올 그 어떤 시련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나름 자축해본다.

날씨도 너무 좋아, 답사 때는 전혀 보지 못했던 자인사 코스에서의 산정호수 풍광이 그렇게 좋았다는 말에, 보지 못한 섭섭함이 약간이야 있었지만, 과유불급이라! 너무 많은 욕심은 삼가야 하나니, 이번 산행은 여러 회원들과 눈 내린 겨울산을 좋은 날씨에 충분히 즐긴 것과, 1년간의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성대히 치뤘다는 것으로 대만족!

조류독감 때문에 백숙이나 닭도리탕 대신 메기매운탕을 선택했는데, 의외로 맛이 좋았다는 평까지 해주셔서 회원들께 또 감사… 게다가 서울시의사회 회장님을 비롯한 여러 회원님들이 두둑이 절값까지 챙겨주셔서 산악회 발전을 기원해 주셨으니 더더욱 고마운 날이었다.

노민관 <서울시의사산악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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