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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 다녀온 봉평 〈1〉
메밀꽃 필 무렵 다녀온 봉평 〈1〉
  • 의사신문
  • 승인 2013.12.0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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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 있는 정담 〈104〉

9월의 봉평 메밀꽃 너머로 보이는 이효석 생가. 실제 생가는 멀지 않은 다른 곳에 있다.
이효석문학관과 생가

봉평은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가산 이효석이 태어난 곳입니다. 이효석은 이곳에서 평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가 현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는 함경도 경성의 경성농업학교 교사, 평양의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우리나이로 36세 되던 1942년 결핵성뇌막염으로 사망해 고향에 묻혔다가 다시 고향을 떠나 파주로 옮겼습니다.

작품을 발표하던 초기 그는 사회주의 이념이 반영된 작품들을 발표하였으나 30년대에 들어서며 순수문학을 지향했습니다.

소금을 뿌린 듯 허옇게 메및꽃이 피어나고 그 위로 흐붓한 달빛이 비치는 9월이 봉평을 찾아 이효석의 향기를 더듬기에는 안성맞춤인 때입니다. 봉평읍내의 가산공원은 소박합니다. 흥정천을 넘어가면 길 양 옆으로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언덕 위 봉평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이효석문학관이 있습니다.

메밀밭 사이의 길을 조금 걸어 들어가면 이효석 생가와 평양에서 살던 `푸른집'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면 복원된 생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그의 생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효석문학의 숲'까지 다녀온다면 봉평에 있는 이효석의 자취를 다 보는 셈입니다.

이효석문학관은 기왕 봉평에 왔다면 들러볼 곳입니다. 문학관 안에서 읽고 볼 수 있는 대용이야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 정도이니 어찌 생각하면 굳이 입장료까지 내면서 여길 와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만가만 이곳저곳을 두리번 거리다보면 아기자기한 즐거움이 깨알처럼 나타납니다.

그러나 여기 이효석문학관의 백미는 탁트인 경관입니다. 이 깊은 산골 어디에서 이리 시원하게 펼쳐진 벌판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듭니다. 먼 산마저도 새롭게 보이는 곳입니다.

이효석문학관을 내려오면 복원해 둔 생가와 평양에서 살던 기와집이 있는데 조금은 공허합니다. 사람들은 그냥 가볍게 돌아보고는 메밀꽃을 배경삼아 사진찍기에 열중합니다. 그리고는 조금 더 떨어져 있는 생가로 걸음을 옮깁니다.

그의 생가는 산자락 끝에 편안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집 구조는 바뀌지 않았지만 지붕에 기와를 올렸습니다.

마당 앞에 출입을 금하는 줄이 쳐져 있고 부속 건물 벽에 안내문과 집의 평면도가 붙어 있습니다. 지금의 집주인이 붙여 둔 것입니다.

이효석 선생의 부친으로부터 이집을 사서 살고 있는 터라 내부는 공개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본래 초가였으나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함석지붕으로 바꾸었고 몇 년 전 지붕 누수로 인해 지금의 가벼운 기와로 교체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70년대 새마을운동이 불 붙었을 때 지붕개량사업을 했습니다.

울며 겨자 먹는다고 큰길에서 보이는 모든 초가집의 지붕을 걷어내고 기와, 함석, 슬레이트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대부분 오래된 집이다보니 무거운 기와를 얹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함석이나 슬레이트로 바꾸고 페인트칠을 했습니다.

전국 곳곳에 빨갛고 파란 지붕이 생겨났습니다. 함석지붕 아래서 사람들은 여름의 불볕과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그대로 받아 견뎌야 했고, 슬레이트 속에 섞인 석면은 사람들의 건강을 조금씩 갉아먹었습니다. 이효석 생가도 그 지붕개량사업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나 봅니다.

그런데 비록 지붕이 달라지긴 했지만 이 생가를 두고 엉뚱한 곳에 다시 초가로 생가를 복원한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어쩔 수 없었다지만 이효석의 묘는 또 왜 파주로 옮겨야 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있어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잠시 걸었습니다.

길 옆 햇빛이 잘 드는 밭에서는 메밀꽃이 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택시가 멈추어서더니 무어라 말을 합니다.

뜻밖이라 처음엔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가 다시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저 위로 더 올라가시면 아직 메밀 꽃이 좋습니다.”

“아!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봉평이 가슴에 한 가득 안겨들었습니다.

오근식 <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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