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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 다녀온 봉평
메밀꽃 필 무렵 다녀온 봉평
  • 의사신문
  • 승인 2013.10.2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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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 있는 정담 〈103〉

봉평읍내에 자리잡은 가산공원의 오래된 산사나무 뒤로 보이는 주막 충주집.
주말이 아니어서 편안한 길이었습니다. 메밀꽃 필 무렵의 주말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불과 두어시간 남짓 운전해 이렇게 도착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도 봉평은 영동고속도로가 근처를 지나고 있어서 한 번 찾아가기에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습니다.

강원도를 가로와 세로로 4등분하는 줄을 그어보면 얼추 그 선이 교차하는 한 가운데에 봉평이 있습니다. 천지사방에 온통 산인데 묘하게도 양쪽 산골짜기들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봉평에서 만나며 그나마 작지 않은 평지를 만들어냈습니다.

봉평은 강원도 깊숙이 자리잡고 있지만 적어도 5일장이 서는 작지 않은 읍내입니다.

봉평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관광상품화 해 크게 성공한 지방입니다. 해마다 주변의 온 밭에 메밀을 심고 눈에 보이는 밭마다 온통 흰 꽃이 가득 피어나면 메밀꽃 축제를 열고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이효석의 호를 따 이름을 붙인 읍내의 가산 공원 옆 공터엔 공연 무대가 설치되고 사람들의 흥을 돋우는 공연이 펼쳐집니다.

흥정천이 바라다 보이는 공터에서부터 오일장이 서던 골목을 이어 길에 색색의 천막이 들어서고 전국에서 모여든 장꾼들이 축제기간 내내 장을 펼칩니다. 학교 운동장은 주차장으로 바뀌고 흥정천 엔 징검다리와 섭다리가 새로 들어섭니다. 이제 보름동안 한바탕 부산 떨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이효석을 추억할 수 있는 가산공원은 아주 작은 규모로 봉평읍내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간단하게나마 가산 이효석을 엿볼 수 있는 자료를 읽을 수 있고, 굳이 볼거리를 찾아본다면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묘사된 충주댁의 주막집 정도입니다. 찾아간 날은 9월 중순이었는데 이 주막집의 야트막한 나무울타리를 타고 자라던 나팔꽃이 마지막 기운을 다해 진한 꽃송이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젠 고목이 된 산사나무는 아직은 힘이 있다고 노익장을 과시하는 듯 꽤 많은 열매를 달고 있었습니다. 작지만 오래된 공원입니다.

서울의 도심에 이런 공원이 있다면 커다란 나무그늘 아래에 노인들이 모여들어 장기를 두거나 우두커니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일 것입니다. 가산공원엔 그렇게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노인은 없었습니다. 걸을 힘이라도 있다면 밭에서 풀이라도 한 포기라도 더 뽑아야 하는 곳이 농촌이니 노인이라고 공원을 어슬렁거리다간 흉잡히기 안성맞춤일 것입니다.

봉평은 그리 넓고 복잡한 곳이 아니어서 가만히 안내 팻말만 보아도 가볼 곳을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흥정천을 건너고 보니 여기 저기 메밀밭이 많이 보입니다. 메밀밭에 약간을 시설물을 설치하고 사람들이 쉽게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해 두었습니다.

이곳의 메밀밭은 더 이상 사람들이 메밀 농사를 짓는 곳이 아닙니다. 다만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제공된 사진 찍는 곳에 불과합니다. 약간의 돈을 내고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메밀 한 대궁 발로 밟아 뭉개는 것쯤은 개의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사진 속의 제 모습 주위로 더 많은 메밀꽃을 담으려 점점 더 밭 깊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잘 자라던 메밀이 꺾여 밟히고 짓이겨지며 밭 가운데로 아예 길이 나버렸습니다. 낱알 하나도 아까운 농부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다면 더 흐뭇하고 편안한 축제가 될 듯합니다.

오근식 <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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