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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작품번호 178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작품번호 178
  • 의사신문
  • 승인 2013.10.2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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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240〉

이 피아노 소나타는 리스트의 숱한 걸작들이 쏟아져 나온 바이마르 시기인 1852∼3년 무렵 완성한 작품이다. 리스트는 슈만으로부터 자신의 `환상곡'을 헌정받은 답례로 이 곡을 슈만에게 헌정하였다.

단일 악장으로 구성되었지만 한편의 오페라처럼 장대한 서사시 같은 리스트의 유일한 피아노 소나타로서 그의 다른 곡들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이렇다 할 멜로디도 없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피아노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1857년 한스 폰 뷜로의 연주로 초연된 이 작품은 고전주의 음악양식인 소나타 양식을 타파한 혁신적인 낭만주의자 리스트의 곡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대단히 큰 이슈였다. 그러나 이 작품에 대해 작곡가 루빈스타인의 혹평과 함께 음악평론가 에두아르드 한슬릭은 신자유신문 기고문에서 “아직까지 이렇게 지리멸렬한 요소들이 엉큼하고 대담무쌍하게 나열된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혹평을 퍼부었고 심지어 브람스는 처음 이 곡을 듣다가 잠이 들기도 하였었다는 비화도 전해진다.

반면 리스트의 사위인 바그너는 이 작품에 대해 “모든 개념을 초월해서 아름답고 거대하며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심오하고 고상한 작품”이라고 격찬했다.

리스트는 이 위대한 소나타를 작곡하기 전에 이미 〈단테를 읽고〉, 〈파우스트교향곡〉을 작곡하였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나타 양식을 갖춘 곡은 이 작품이 유일하다. 리스트는 거기에 `소나타 풍 환상곡'이라는 부제를 붙였는데 소나타 형식에 의한 제시-전개-재현이라는 3부 구성의 원리를 사용하면서 전개 부분에서는 완만한 부분을 삽입하여 마치 느린 악장처럼 다루고 있으나, 형식상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을 벗어난 `환상적 교향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리스트는 인간으로서 그때까지의 자신의 삶을 정의하고 정리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이 작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상반되는 두 자아가 공존하고 있다. 즉, 내면의 선과 악이 몹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데 인간의 아주 지극히 원초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중단되지 않는 음악의 진행은 `집시'스케일로 불리는 하강 모티브에 의해 빛을 발하는데 이를 두고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는 `메피스토펠레스적인 대목'이라고 표현하였다.

소름이 끼칠 정도의 섬뜩한 악마적인 부분과 천국의 느낌을 주는 선율이 한 곡 안에 공존하는데, 흥미롭게도 이들은 같은 모티브이다. 초인적인 비르투오소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리스트는 이 작품에서 4악장의 소나타를 독창적인 구조로 결합하고 있다. 서로 다른 주제들이 만화경같이 서로 재생산하고 변형되면서 단일한 구조적인 통일성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리스트 음악의 특징인 `주제변형기법'으로서 어떤 한 주제가 작품 전체를 통해 변형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다이내믹, 화성, 하모니, 음정 간격 등에 변화를 주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같은 모티브인 것이다. 이는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방랑자' 주제들은 4개 악장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는데 각 악장에서 쉼 없이 연속적으로 연주되며 대칭적인 조성구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얼마 전 발레 `마그리트와 아르망'을 관람하고 받은 감동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전설적인 무용수 마코트 폰테인과 루돌프 누레예프를 위해 안무가 프레드릭 애쉬턴이 안무했으며, 알렉산드르 뒤마 2세의 소설 `카멜리아의 여인'을 원작으로 한 베르디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에서 영감을 얻어 쓴 작품이다. 이 작품의 배경음악으로 바로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를 사용하고 있었다. 마치 이 발레를 위해 작곡된 피아노 소나타처럼 너무도 주인공들의 심리묘사를 적절히 음악으로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 충격으로 이전의 받은 감흥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감동으로 이 작품에 접근하게 되었다.

△제1부(제시부) Lento assai 장대하면서 에너지 넘치는 활발한 제1주제에 이어 당당하면서 화려한 제2주제가 나타나고, △제2부(전개부) Andante sostenuto 열정적인 광란의 주제가 지난 뒤 꿈꾸는 듯 새로운 주제가 나타나면서 서정적인 분위기로 선율이 흐른다. △제3부(재현부) 모든 광란을 잊은 듯 점점 약해지면서 피아노의 최저음 B음으로 풀어지듯 막이 내린다. 마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가 숨을 거두 듯.

■들을만한 음반: 라자르 베르만(피아노)(Melodya, 1975); 마르타 아르게리치(피아노)(DG, 1971); 마우리치오 폴리니(피아노)(DG, 1989)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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