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11:13 (일)
의협은 용감했다<17>
의협은 용감했다<17>
  • 의사신문
  • 승인 2009.07.01 14: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사회가 불안하다. 정권이 바뀌면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 여건도 좋아져서 덕분에 의사들도 기 좀 펼까 했는데 연일 흘러나오는 뉴스들은 가슴만 답답하게 한다. 언제나 6월은 전쟁의 상처와 함께 6월 민주항쟁은 물론 노동계의 투쟁으로 이념 대립과 사회 갈등이 표면화 되는 달이다. 올해는 전문가 단체들까지 정부를 규탄하는 시국선언 대열에 동참해 사회를 더욱 혼란케 하고 있다.

지난주 대한의사협회는 일부 보건의료인들의 시국선언을 우려하며 현 정부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몇몇 의료단체와 함께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의료계의 주요 단체인 병원협회와 약사회, 한의사협회가 참여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의협의 이런 충정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중도파를 강화해야 한다는 발표를 해 필자는 물론 국민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좁은 한반도, 그것도 반쪽으로 갈라진 나라에서 이념과 계층 간의 갈등으로 흩어진 국민의 마음을 얻어 보겠다는 고육지책이겠지만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확실한 속내를 알 수 없다.

사자와 독수리 사이에 낀 불쌍한 박쥐 이야기가 있다. 박쥐는 날개가 있는 포유동물이다. 박쥐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양측에 다 끼고 싶지만 결국은 양측으로부터 모두 배척을 받게 된다. 박쥐는 사자와 독수리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는데 기회주의자의 누명을 쓴 것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혹은 가정에서 의견이 팽팽히 맞설 때가 있다. 이때 중도를 선언한 사람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중간에서 화해도 시키고 의견을 조율해 주기도 하며 투표를 할 때 어느 편이 되어서 결정을 주도하기도 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유연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지도자도 주체 세력도 될 수 없다.

국가건 어떤 단체건 지도자가 되려면 색깔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체를 이끌어 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동서고금을 통털어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하지만 성인에게도 무수한 적이 있었다. 하물며 평범한 지도자가 뜻을 하나로 집약시킬 수도 없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도 없다.

단체를 이끌어가는 과정은 같은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한편이 되어 반대편 사람들과 싸워 나가는 것이다. 자신을 중도파라고 하는 사람들을 필요할 때 마다 포용해서 내편을 만드는 것이 리더십이다. 만약 지도자가 내편도 아니고 반대편도 아닌 중도를 선언하는 순간 자신의 지지 기반인 내편을 잃게 된다. 지도자의 입장에서 보면 중도파가 많기 때문에 이들을 끌어들이고 싶은 욕망이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은 그를 위해 희생하지 않으며 그가 어려울 때 협조하지 않는다. 또한 중도를 선언해도 반대편은 절대로 내편이 되지 않는다.

필자도 젊었을 때 비슷한 기억이 있다. 어느 사회건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줄을 잘 서야 장래가 보장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한쪽에 줄을 서서 충성을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정의롭지 못한 것 같았다. 결국 양측으로부터 모두 상대 쪽 편이라고 오해받게 되었다. 그러나 나이 든 지금도 중도파로 살고 싶은 유혹이 항상 존재한다.

이번 의사협회의 `대한민국을 우려한다'는 성명서 발표는 정체성을 분명히 한 것이다. 주요 단체들의 불참에도 불구하고 여기 저기 눈치 보아야 하는 의협으로서는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김숙희<관악구의사회장ㆍ김숙희산부인과의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