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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도 잊은 채 서울대공원에서 즐긴 `마라톤 소풍'
폭염도 잊은 채 서울대공원에서 즐긴 `마라톤 소풍'
  • 의사신문
  • 승인 2013.10.1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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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승 <동방사회복지회 어린이사랑의원장, 연세의대 명예교수>

이재승 동방사회복지회 어린이사랑의원장
2013 혹서기마라톤대회

지난 12년간 한강변을 얼마나 많이 달렸던가!

60세에 보스톤 대회에 가기 위해, 그리고 65세 정년퇴임 이후로 아름다운 한강변을 주로 밤에 달리면서 한강의 야경이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해외 학회 참가 중 달렸던 어느 도시의 강보다도 한강은 더 넓고 아름답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한강에서의 명품 마라톤대회는 아직 없다.

한강변 대회는 연중 몇 번 있지만 제한된 영역에서 허용되고 있다. 서울마라톤혹서기대회는 서울 대공원에서 열리는 소규모 대회이지만 1300명 모집 정원이 신청과 동시에 마감되는 인기 최고의 명품대회이다. 대공원 코스와 비슷한 산자락 코스로 서울 남산 북측도로 코스가 있긴 하지만 일반인과 장애인의 통행이 많아 큰 대회가 불가한 것이 흠이다.

매년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서울마라톤클럽이 주최하는 혹서기대회가 금년에는 찜통 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말복 전날 8월 11일 진행되었다. 이 대회는 즐기면서 달리자는 일명 `마라톤소풍(마라닉, 마라톤 피크닉)'이라는 배경으로 펼쳐지는 축제의 장이다.

더위로 밤잠을 설치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지하철 4호선 서울대공원역 하차 2번 출구로 나와 동물원 정문을 통해 북문 앞으로 간다. 배번호를 수령하고 개회식과 스트레칭에 이어 오전 8시에 출발한다.

마라톤 코스는 코끼리열차길 2회(4.8km), 동물원내측 1.8회(6.175km), 외곽순환도로 5회 왕복(31.22km)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한시간은 7시간이지만 외곽순환도로 5회째 왕복의 시작이 6시간 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도 뒤쪽에서 대기하다가 출발한다. 호흡이 빠르지 않게 서서히 달린다. 처음 11km까지는 급해서는 안 된다. 나는 워밍업 시간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걸리는 것 같다. 도로 가득한 달림이들의 표정도 밝고 경치도 좋고 공기도 맑다. 비가 오지 않아 좋다고들 한다. 그러나 너무 덥다. 벌써 온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다. 오늘은 34도 이상의 폭염에 89%습도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경사진 길을 돌고 돌며 무거운 몸을 달래다 보니 10.975km 구간을 끝내고 외곽순환도로를 들어선다. 지금부터가 진짜 청계산자락의 오르막 내리막길이다. 왕복 5회로 31.22km를 달려야 한다. 30년 가까운 등산 경력은 오르막을 달릴 때 확실히 도움이 되는걸 알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4일 후 광복절 날에 있을 지리산 화엄사-대원사 종주 마라톤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기에 `서서히 꾸준히 서서히 꾸준히'를 되뇌면서 부상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한다.

같은 코스를 오며가며 만나는 처음처럼의 오장환님은 아들과 함께 달리는 모습이 아름답고, 이대의대 안정자 명예교수님은 꾸준히 잘도 달리신다.

자, 그럼 마라톤소풍을 해봅시다.

3.17km 구간을 5회 왕복하는 코스에는 1km 간격으로 세 곳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생수, 이온음료, 콜라, 얼음조각, 아이스바, 방울토마토, 수박, 바나나, 떡 등이다.

길옆에 작은 폭포가 있고 또 바가지 샤워를 해주는 곳도 있어 땀에 젖은 몸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봉사정신으로 나온 목동마라톤클럽은 우렁찬 목소리로 힘이 뻗치도록 응원하며, 또 다른 곳에서는 요란하고도 화려한 옷으로 치장한 남녀 춤꾼들이 시각을 자극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이 정도면 가히 명품 마라톤소풍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처럼 흥겨운 분위기 속에 젖다보면 나도 모르게 시간은 가고 마라톤을 마치게 된다. 완주 후에는 열무 비빔밥과 시원한 오이 미역 냉국을 받아 뚝딱 먹어치우고, 야외샤워하고, 완주기록증 사진을 찍고 나면 마라톤소풍은 끝나고 즐거움만 남는다.

이로써 나는 오늘 풀코스마라톤 274회 완주를 달성했다. 오늘 마라톤의 우승자는 정석근(남자), 김영아(여자) 선수이다. 뜻밖에도 청계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연세의대 총동창회 산악회 회원들과 마주쳐 이들 반가운 후배님들과 웃음 꽃 피는 즐거운 시간을 늦게까지 가졌다.
오늘은 먼 훗날에 아름다운 추억의 날이 될 것이다.

서울마라톤클럽에 드리는 `혹서기마라톤소풍'의 8행시를 지어본다.

- 시나 모르시나 말씀드리면

- 울 마라톤 혹서기 대회는

- 막히게 인기 좋은 마라톤소풍이랍니다.

- 감이 신청과 동시에 끝나는 명품대회이지요.

- 면은 없어도 먹을 것은 다 있네요.

- 을 높여요 한껏 높여요.

- 리 소리 흥겨운 노랫소리

- 악을 울려라! 얼씨구 좋-다!

이재승 <동방사회복지회 어린이사랑의원장, 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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