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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산악회, 하쿠산 기행기
서울시의사산악회, 하쿠산 기행기
  • 의사신문
  • 승인 2013.10.0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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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연 <강서·보아스이비인후과 유승훈 원장 가족>

고젠미네 정상에서 동행했던 서울시의사산악회 선생님들과 함께.
정재연 보아스이비인후과 유승훈 원장 가족
책망·극기 그리고 성취…쓰라리게 아름다운 하얀 산

하쿠산(白山)의 아름다운 절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높고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하얀 구름, 비단 같은 폭포와 화사하게 펼쳐진 야생화 군락. 산 정상부에 남겨져있던 눈(雪)… 그러다 하산 길에서의 고통이 스멀스멀 느껴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프고 쓰렸던 기억은 지워지지 않을 성취감으로 새겨지며, 아름다움의 잔영 때문에 기어코 또 산을 오른다는 것이다. 이러면서 산을 사랑하는가보다!

애초에 원정 산행을 결심한 이유는 해외산행을 꿈꾸는 남편과 요즘 아이들처럼 인내심이 부족한 아들에게 `극기'란 체험의 선물을 주고 싶은 것이었다. 일정이 짧아서 고등학생 아들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았고, 인터넷으로 일본의 하쿠산을 검색해보니 산행을 하기에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북한산 봉우리(5시간 이내)들과 소백산 등반이 산행의 전부인 나로서는 9시간 산행이 겁이 났지만 험하지 않다는 정보에 힘입어 후지산, 다테야마(立山)와 더불어 일본 3대 영산 중 하나인 하쿠산(2702m) 산행을 준비하였다.

일본 혼슈 중부의 도야마현, 이시카와현, 후쿠이현, 기후현 4개현에 걸쳐있는 `하얀 신들의 산-백산'은 1년의 절반 넘게 설산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쿠산의 주봉인 고젠가미네를 중심으로 동서 약 20Km, 남북 약 40Km에 이르는 총면적 약 4만7700백 헥타르의 넓은 지역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일단, 산행을 해발 1200m 정도의 벳토데아이에서 시작하여 1500m 높이 만 오르면 된다는 것을 심적 위안으로 삼으며, 등산센터 앞의 흔들리는 구름다리를 건너면서 본격적이 산행을 시작하였다. 좌우로 들려오는 물소리에 청량감을 느끼며 하산하는 일본인들(이 사람들은 산장에서 1박을 하고 일출을 본 후에 내려오는 분들이었다)과 연신 아침인사를 나누며(사실 몸이 지쳐가는 만큼 인사도 성가스러워졌지만!) 발걸음을 재촉한다. 비교적 완만한 사방신도(砂防新道)는 인공적인 돌길의 연속이었는데 사방을 둘러보니 드문드문 구름에 가리워져서 멀리 산세가 희미하다. 구름이 걷히면 다채로운 초록이 눈에 들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오른다. 진노스케 피난소를 거쳐 구로보코이와까지 오르니 멀리 정상의 눈(雪)이 보인다. 뜨거운 8월의 햇살에도 녹지 않고 있는 눈이라니.

벳토데아이를 출발하여 사방신도의 나카한바(中飯場)에서 1차 휴식 때의 가족 사진.
고도가 높아지는 만큼 뻑뻑해지는 다리와 살짝 지끈거리는 두통, 그리고 가슴의 답답함을 느꼈다면 엄살이었을까? 흡사 소백산 정상이나 대관령을 연상시키는 (산행 경험이 적어 비교 대상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는 넓은 평원에 핀 야생화들에 감탄을 하며 일행을 바짝 쫓아가니 어느덧 해발 2448m의 고지에 빨간 지붕의 무로도 산장이 나타난다. 겨울이 되면 눈에 덮여 폐장을 한다고 하니 좋은 계절에 온 것 같다.

여기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식욕이 너무 없다.

다시 고젠가미네 정상까지는 40분. `할 수 있을까?' `욕심을 버리고 여기서 만족할까?' 점심식사를 하는 내내 갈등을 한다. 여기서 포기하자니 아들 볼 염치도 없고, 내 욕심이 나의 체력을 이길 수 있을지? 다행히 아들 녀석이 무릎보호대를 차고 끝까지 가보자 한다. 기특한 녀석!

정상까지의 산행은 아름다움에 취하여 사실 절로 정신없이 올라가졌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화려한 산세, 분화구 주변에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있고 칼데라 호수에 파란 물이 담겨있다. 높이만큼 시원한 바람. 잘했다!

성취했다는 기쁨에 취해 무로도 산장까지는 가볍게 안착(이 부분에서 체력안배 실패). 구로보코이와까지는 같은 길로 내려와서 올라왔던 길과는 반대편의 관광신도로 하산을 시작했다. 구름이 걷히자 멀리 뱃산을 배경으로 가까이에는 각종 고산식물과 야생화가 군락으로 어우러져 동화책의 주인공이 된 듯 즐길 즈음 경사가 다소 급해지면서 오르락내리락 능선을 탄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신앙의 길' 관광신도는 참으로 끝도 없었다.

급경사 계단이 계속되자 도착 1시간을 남겨두고 부터는 저절로 무릎이 꺾이고 아차 하는 순간 주저앉게 되었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말 그대로 나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고소공포증까지 있는 아들 역시 힘겨워하고 그 둘의 뒤를 따르는 남편 마음은 가시방석이었을 게 뻔하니 미안한 마음과 나를 책망하는 마음에 울컥했다.

고젠미네 정상으로 향하다가 돌아본 무로도 산장.
아침에 나누어준 샌드위치도, 점심도시락도, 초콜릿도 잘 먹히지 않아 허기진 것도 날 방전시킨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어쨌든 올라왔으니 내려와야만 하는 산. 자꾸만 뒤처지자 조바심도 났다. 중간에 일본 산삼도 보았고 칡 군락이 있어서 칡 향기에 매료되기도 했지만 그저 내 눈에 그리는 것은 저 아래 주차장이었다.

겨우 벳토데아이까지 와서 끝이구나 하는 순간 다시 주차장까지 400m 더 내려가야 한다는 안내하셨던 여행사 부장님의 말씀에 정신이 아득했다(버스가 못 올라왔다는 사실에 화도 났다) 기다려주신 선생님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할 경황도 없이 버스에 올랐다. 다했다!(이 글을 빌어 힘을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와 더불어 혹 민폐를 끼친 건 아닌지 죄송한 마음 전합니다. 그러나 최선이었습니다.)

나에게 힘을 준건 끝까지 열심히 산행을 해준 아들과 듬직한 남편과 후미를 함께 해주신 친절하신 `서의산' 선생님들이시다. 그리고 양손에 스틱과 무릎보호대. 아! 또 하나! 산행 중간에 마셨던 한번 마시면 죽도록 죽지 않는다는 약수, 연명수!

나고야의 첫 인상, 일본에서 2번째로 긴 터널(10.7Km), 아찔아찔했던 하쿠산 임도, 후쿠베 폭포, 세계 자연유산의 하나인인 합장 건축 양식이 독특한 `시라가와 전통마을', 간단한 투어로 하루. 결국 10시간 코스가 되어버린 하쿠산 산행과 1300년 전통의 호시료칸에서의 일본정식과 피로를 단번에 씻어주던 노천탕과 정원에서의 하루. 일본 3대 정원중 하나인 겐로쿠엔과 가나자와성까지 하루. 총 2박3일의 짧은 일정임에도 모두다 인상이 깊었다.

그러나 그래도 끝까지 여행에서 마음에 남는 것은 추억과 사람인 것 같다. 힘들었던 기억은 마음에 담고 즐거웠던 추억은 가슴에 담는다.

맘껏 배려해주신 여러 선생님들(“어찌 그리도 산을 잘 타십니까?”)과 지겹도록 인사 나눈 일본인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감사합니다”).

정재연 <강서·보아스이비인후과 유승훈 원장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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